고린도전서 1장 묵상 강해설교
부르심의 자리에서 하나 되라
고린도전서는 분열과 혼란 속에 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절한 권면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1장은 서신 전체의 서론이자,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하는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에 있는 영적 정체성의 혼란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복음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지를 깊이 깨닫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곧 우리의 삶의 방향이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부르심에 응답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되새기며, 하나님의 선택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와 하나님의 부르심
고린도전서 1장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1:1)이라는 서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받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κλητός(클레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초대받았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1:2)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같은 헬라어 "클레토스"가 사용됩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공동체입니다. 이 부르심은 윤리적 완벽함을 전제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해져 가는 여정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은 이 구절을 주석하며, 교회의 영광은 성도들의 현재 상태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1:5). 이는 고린도 교회가 은사적으로 풍성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풍성함이 교회의 성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리라"(1:8)는 말로, 종말론적 소망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고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이란 단순히 시간적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함께 이뤄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이 소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날까지 지속되며, 우리가 끝까지 그 부르심에 붙들려 살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와 세상의 지혜
1장 10절부터 바울은 본격적으로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룹니다. "너희가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10)는 권면은, 교회의 연합이 단순한 조직적 일치를 넘어서 신앙의 본질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교인들은 자신이 바울, 아볼로, 게바, 또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며 서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1:12). 이는 복음을 인격적 헌신이 아닌 파벌적 정체성으로 바꿔버리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1:13)고 반문하면서, 교회의 중심은 인간이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도"에 대해 설명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는 말씀은, 복음의 본질을 단호하게 규정합니다. 헬라어 "μωρία(모리아)"는 '어리석음' 혹은 '광기'를 의미합니다. 당시 헬라철학과 유대인의 표적 사상 속에서는 십자가가 도무지 수용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어리석음 속에 하나님의 능력, 즉 "δύναμις(뒤나미스)"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언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기준으로 진리를 측정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계산을 전복하는 역설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사야 29장 14절을 인용하여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1:19)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무력화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기준을 따라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설명 가능한 논리가 아니라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는 신적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의 은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1:26).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세상 기준에서 비천하고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는 헬라어 "ἀγενής(아게네스)"와 "ἀσθενής(아스테네스)"를 통해 드러나는 개념으로, 낮고 약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역설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이며, 다윗과 같은 목동이 왕이 되고, 이스라엘과 같은 약소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1:27),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이며, 그 목적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29)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자랑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오직 은혜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1:30)고 말하며, 구원의 모든 여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장은 교회가 무엇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닌 십자가의 도,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자랑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부르시고, 약한 자를 들어 쓰시며, 부르신 자들을 끝까지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르심 앞에서 자랑할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뿐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높이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십자가 앞에 서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