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서신서

고린도전서 3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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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집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은 교회의 본질과 성도의 성숙을 주제로 깊은 영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 사람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역의 질을 강조합니다. 이 장은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교회론과 구원론에 대한 심오한 묵상으로 이끕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성숙하지 못한 신앙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는 신앙의 기초가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를 점검하고, 자신이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나눕니다. 교회의 기초가 사람이나 전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연합과 성숙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유아적 신앙에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였노라”(3:1). 여기서 '신령한 자'는 헬라어 'πνευματικοῖς(프뉴마티코이스)'로 성령에 의해 인도받는 자를 의미하며, '육신에 속한 자'는 'σαρκίνοις(사르키노이스)'로서 아직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뜻합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의 조명에 따라 신앙의 판단과 삶의 열매를 맺는 이들인 반면, 육에 속한 자는 감정과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신앙을 이해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로 부릅니다. 이는 헬라어 'νήπιος(네피오스)'로 말과 판단력에서 미숙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단한 음식을 주지 못하고 젖을 먹였다고 말합니다(3:2). 젖은 기본적인 교리를 의미하고, 단단한 음식은 더 깊은 신앙의 원리와 실천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외적으로는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실제 삶에서 분열과 시기,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미성숙한 신앙의 표지입니다.

 

그 증거는 분열과 시기입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3:3). 고린도 교회 안에는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등으로 나뉜 분열이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사람 중심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사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성숙하지 못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교회 분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영적 미성숙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분열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는 커튼과 같아,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근간을 약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3장 5절 이하에서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사역자들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3:5). 여기서 '사역자'라는 단어는 헬라어 'διάκονος(디아코노스)'로, 하인이나 집사라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높이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도구로 묘사합니다. 이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결코 주인이 아님을 선언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3:6). 여기서 '심다'는 복음 전파를, '물을 주다'는 말씀을 양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 곧 'αὔξησιν(아욱세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며,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를 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나 교사가 있을지라도,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3:7). 이 구절은 교회 안에서 역할에 따라 사람을 높이거나 낮추는 태도를 완전히 배격합니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은 도구일 뿐입니다. 이는 현대 교회가 지도자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경향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읽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역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3:9). 여기서 ‘동역자’는 'συνεργοί(쉬네르고이)'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를 뜻하며, ‘밭’과 ‘집’은 교회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이 경작하시는 밭이며, 세우시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위임받은 임무일 뿐, 주인이 되어선 안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두고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사역자들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청지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집만이 견딜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건축의 비유로 넘어갑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았으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3:10). 바울은 자신을 '건축자'로 비유합니다. 여기서 '건축자'는 헬라어 'ἀρχιτέκτων(아르키텍톤)'으로, 오늘날의 ‘건축가’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교회의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역자들이 그 위에 계속 세워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각자 '어떻게' 세우는가입니다. 수단과 목적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하며, 사역의 방식도 복음에 걸맞은 순전함과 거룩함이 요구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을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3:11).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터'라는 단어는 헬라어 'θεμέλιος(테멜리오스)'로, 건물의 기초석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기초로 세워진 교회는 결코 견고할 수 없습니다. 철학, 정치, 도덕, 전통, 경험, 그 어떤 것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위에 무엇으로 세우는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지프로 이 터 위에 세우면”(3:12). 이 여섯 가지 재료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금, 은, 보석은 불에 견디는 재료이며, 나무, 풀, 지푸라기는 쉽게 타버리는 것들입니다. 이는 사역의 질과 동기를 의미합니다. 외형적으로는 화려해 보일지라도 그 내용이 복음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사역은 그 동기와 내용에 따라 시험을 받게 됩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3:13). 여기서 '그 날'은 헬라어 'ἡ ἡμέρα(헤 헤메라)'로 종말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이 날에는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평가됩니다. 이는 사역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신의 신앙과 삶을 점검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있는가? 이 질문은 매일의 삶에서 반복되어야 할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불에 타면 해를 받으리라”(3:14-15)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에 타는 자도 구원은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는 표현은 구원이 있지만 상급은 없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구원에 대한 가볍고 방종한 태도를 경계하게 합니다. 우리는 구원 자체에 안주하지 말고, 날마다 주 앞에서 열매 맺는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선물이고, 상급은 순종의 열매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비유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3:16). 성전은 헬라어로 ‘ναός(나오스)’이며, 단순한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성도는 단지 교회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에 대한 경고도 이어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3:17). 이는 단순한 도덕적 경고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선언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3장은 신앙의 성숙과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교훈을 전해줍니다. 참된 믿음은 유아적인 분열과 시기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위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과 삶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으로서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삶 전체가 거룩하고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의 기초 위에 나의 삶을 세우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붙들고 오늘도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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