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서신서

고린도전서 5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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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거룩함을 위한 영적 분별과 단호함

고린도전서 5장은 교회 공동체 안에 드러난 명백한 죄에 대해 사도 바울이 엄중히 책망하고,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본문입니다. 이 장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겪었던 도덕적 해이와, 그것을 방치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단지 한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죄에 대한 교회의 반응과 태도,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공동체 전체의 영적 상태를 문제 삼습니다. 그는 교회의 거룩함이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청렴성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교회의 영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며, 죄 지은 자를 어떻게 사랑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지를 이 장은 매우 실제적이고도 영적으로 강력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며, 복음 안에서 어떻게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며 배우고자 합니다. 죄를 무시하거나 숨기는 것은 교회의 사명을 위태롭게 하며, 진정한 사랑은 죄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바로잡는 데 있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심각한 음행

바울은 이 장을 매우 충격적인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곧 어떤 자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5:1). 여기서 ‘음행’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πορνεία(포르네이아)’로, 단순한 간음이나 부정행위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성적 타락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적한 구체적인 사건은 단순한 부도덕이 아니라, 레위기 18장 8절과 신명기 22장 30절에서 엄중히 금지한 ‘근친상간’입니다. 이는 고대 유대 사회뿐 아니라 헬라-로마 세계에서도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방관하고 있었고, 오히려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탄히 여기지 아니하고…”(5:2). ‘교만하다’는 헬라어 ‘φυσιόω(퓌시오오)’는 스스로를 과시하거나 자신만족적인 태도를 뜻하며, 죄를 처리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영적 착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교회가 교만한 이유는 단지 자기 의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보다 분위기와 인기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죄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명합니다. “너희 중에서 이런 일을 행한 자를 제하여 버리라”(5:2). ‘제하다’는 헬라어 ‘ἐξαίρω(엑사이로)’는 제거하다, 들어 올려 없애다의 의미로, 죄를 그저 덮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다루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공동체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진리 위에 세워질 때에만 건강한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성도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거룩함을 해치는 고백되지 않은 죄는 반드시 직면되어야 하며, 이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입니다.

 

영적 징계의 목적과 복음적 의미

바울은 교회 공동체가 모인 자리에서 권위 있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을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5:3). 바울은 고린도에 직접 있지 않았지만,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아래에 있음을 인식하고, 영적 권위로서 단호한 입장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모여서 내 영과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5:4-5). 이 말씀은 매우 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본질은 회복입니다.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은 단지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막을 제거함으로써 죄인이 고통 가운데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헬라어 ‘παραδιδῶμι(파라디도미)’는 넘겨주다, 인도하다의 의미로, 교회의 보호권에서 그를 내보내 하나님의 더 깊은 주권적 개입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이 징계의 최종 목적은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신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의 성향이 깨어지고, 복음 앞에 무릎 꿇게 되며,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주의 날에 구원을 얻게 되길 바라는 사랑의 조치입니다. 이는 교회가 단지 '깨끗해 보이는 공동체'가 되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리는 징계, 회복을 위한 고통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중요한 영적 원칙입니다.

 

누룩의 비유와 공동체의 정결

바울은 공동체 안의 죄가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비유를 통해 강조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5:6). 누룩은 작은 양으로도 전체를 부풀게 하는 성질이 있으며, 성경에서는 죄와 위선, 타락한 가르침을 상징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교회 안에서 죄가 방치될 경우, 그것은 빠르게 퍼져 나가 공동체 전체의 영적 민감도를 무디게 만들고 결국은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를 왜곡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말하며 과거의 죄성과 삶의 방식을 철저히 끊어낼 것을 명합니다. “이는 너희가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함이요 우리가 누룩 없는 자인데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음이라”(5:7).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신 것은 단지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개인의 죄를 정결케 할 뿐 아니라, 그 피 아래에 있는 공동체 전체를 새롭게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으로 하자”(5:8). 여기서 '순전함'(εἰλικρίνεια)과 '진실함'(ἀλήθεια)은 단지 정직한 태도만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과 진리 안에 살고자 하는 실천을 포함합니다. 바울은 신앙생활 전체를 하나의 영적 절기처럼 여기며,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영적 제사임을 강조합니다.

 

죄와의 경계: 세상과 교회 안의 분별

바울은 이어서 고린도 교회가 이전 편지를 오해했음을 바로잡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세상에 있는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이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5:9-10).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의 사명을 전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완전히 단절하려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형제라 일컫는 자’입니다. 즉 스스로를 믿음의 사람이라 칭하면서,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악한 삶을 유지하는 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5:11). 이는 교제를 끊음으로써 그에게 충격을 주고,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며, 공동체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는 사랑 없는 배제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영적 치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5:12). 이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교회 안의 거룩함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신명기 율법을 인용하며, “너희 중에서 악한 사람을 내쫓으라”(5:13)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공동체의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최종 조치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5장은 교회가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죄에 대한 영적 분별과 공동체의 거룩함이 왜 중요한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화나 분위기에 따라 진리를 타협해서는 안 되며, 죄를 무시하거나 덮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를 직면하게 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회복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희생을 근거로 하여, 교회가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역시 이 말씀 앞에서, 다시금 거룩함을 회복하고 죄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세워야 하며, 복음 안에서 온전한 공동체로 자라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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