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묵상 강해설교
복음을 위해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자유
고린도전서 9장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 전파 사역에 대한 권리와 자발적 절제를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그는 사도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복음을 위해 그것들을 기꺼이 포기한 자신의 삶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 자체가 복음에 헌신된 증거임을 보여주며, 모든 성도에게 진정한 자유란 자기중심적 권리 행사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자발적 절제임을 가르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복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며, 이를 통해 공동체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복음을 위한 삶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며, 나 자신을 복음에 들이는 삶을 바라며 본문을 나눕니다.
사도의 권리와 정당한 보상
바울은 1절에서 강하게 질문하며 시작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며,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의 사역의 열매임을 강조합니다. ‘사도’는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며, 직접적인 부르심과 권위를 지닌 사역자를 뜻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9:4-5) 이는 단지 물질적 후원을 받는 문제만이 아니라, 복음 사역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정당한 권리입니다. 당시 다른 사도들은 아내와 함께 사역하며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바울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이는 복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함이며, 오해를 줄이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바울은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 그 원칙을 설명합니다. “누가 자비량으로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먹이면서 그 젖을 마시지 않겠느냐?”(9:7) 이는 일하는 자가 그 열매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그는 율법의 권위를 인용합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9:9)는 신명기의 구절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단지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이 말씀을 주셨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역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근거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9:12)고 밝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조금의 오해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보존하기 위한 치열한 결단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삶의 전부였고, 그 어떤 것도 복음을 가로막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그의 행동의 근거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헌신의 열정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부르심’이라는 본질로 설명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9:16).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서 ‘부득불 할 일’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ἀνάγκη(아낭케)’로, 내면의 강한 구속력,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불가피한 책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자, 존재의 이유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맡은 사명을 따라 행할 뿐이라”(9:17)라는 고백은, 바울이 자신의 삶 전체를 복음에 헌신한 자로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보상을 바라기보다는 사명 그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며, 복음의 확장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자리로 들어갑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오늘날 사역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사역과 봉사는 자발적 헌신일 뿐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어야 하며, 거기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종으로 내어줍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9:19). 여기서 ‘종’은 헬라어 ‘δοῦλος(둘로스)’로,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었습니다. 이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타협함이 아니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사랑의 전략이자 선교적 순응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9:22)라는 말씀은 바울의 목적 중심적 사역 철학을 보여줍니다. 그는 구원의 열매를 위해 어떤 불편과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복음의 능력을 통해 사람을 얻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의 방향을 ‘복음에 참여함’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9:23). 그는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이 자신의 삶의 방향이 되게 하였으며,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여겼습니다.
절제와 인내로 달리는 경주자
24절 이하에서 바울은 자신의 헌신을 운동 경기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고린도는 고대 올림픽 못지않은 ‘이스미안 경기’가 열리는 도시로, 스포츠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기에 이 비유는 고린도인들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다름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9:24).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 신앙의 경주에서도 절제와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9:25)에서 ‘절제하다’는 헬라어 ‘ἐγκρατεύεται(엥크라테우타이)’는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고 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기에 임하는 자가 자신의 식습관, 수면, 행동 하나하나를 조절하듯, 신앙인 역시 주어진 사명을 위해 삶을 조절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 운동선수들이 얻는 것은 ‘썩을 면류관’이지만, 우리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위해 달린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영원한 상급, 즉 하나님의 칭찬과 천국의 기업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9:26)라고 말하면서, 목적 없는 삶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전한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이어갑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9:27).
여기서 ‘버림을 당하다’는 헬라어 ‘ἀδόκιμος(아도키모스)’는 자격 없음, 부적합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했다는 의미라기보다, 복음 사역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무능력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며 절제했음을 뜻합니다. 이는 복음을 맡은 자로서 가장 먼저 복음 앞에 서야 한다는 바울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9장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철저히 절제하며 살아간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었고, 다양한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그의 헌신은 자유의 남용이 아닌, 복음의 능력을 세우기 위한 전략적 절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복음에 맞추어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내게 주어진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나의 자유가 복음을 위한 도구가 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에 헌신된 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의 뜻에 맞게 조율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경주하는 자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복음에 복종시키며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복음을 위해 기꺼이 제한할 수 있는 자유이며,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성숙한 제자의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