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 묵상 강해설교
거짓 영광을 이기는 참된 고난의 자랑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에 대한 깊은 염려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정당한 방어를 정서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장은 한 사역자의 고백이자 호소이며, 동시에 성도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위장된 사역자들의 거짓됨을 폭로하며, 참된 사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난을 통해 드러냅니다. 바울은 끝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으로 복음의 진실함을 선포합니다.
순결한 신부로 세우려는 바울의 질투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열심'이라 표현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11:2).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회를 이어주는 중매자, 즉 사도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바울의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으셨던 언약적 관계의 연장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가 순결한 신부로 그리스도 앞에 서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 신앙의 정절이 거짓 복음으로 인해 훼손될까 두려워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11:3).
여기서 ‘부패한다’는 헬라어 ‘phtheirō’는 본래 있던 좋은 상태에서 썩어가고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단순한 교리상의 오류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에서 떠나게 되는 영적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교회 안으로 들어온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11:4) 때문임을 밝힙니다. 이들은 매우 교묘하게 포장되어 들어왔고, 고린도 교회는 그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거짓 사도와 바울의 사도직의 대조
바울은 자신을 낮추어 고린도 교회를 높였다고 말하며, 그것이 오히려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된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다른 교회들에서 재정의 도움을 받으며, 고린도 교회에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 자비량으로 사역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할 수 있느니라”(11:8). 이 고백은 단지 자립의 사역을 넘어, 바울의 사역의 순수성과 희생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사도로서 정당하지 않다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권위와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이 비록 말에 능하지는 않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음을 밝힙니다(11:6). ‘말에 능하다’는 헬라어 ‘logos’가 아닌 ‘logos sophias’, 즉 수사학적 재능을 말하는데, 당시 고린도 교회는 말 잘하는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참된 사도직이 화려한 언변이나 권위 있는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는 중심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에 충실한 인격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거짓 사도들을 "속이는 자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11:13)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한다’는 헬라어 ‘metaschēmatizō’는 본질은 다르지만 외형만 바꾸어 자신을 위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외형은 사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사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11:14). 이는 교회 안에 들어온 가장 큰 위협이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위장된 복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탄은 항상 진리를 가장하여 접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듣는 귀뿐 아니라, 분별하는 눈을 가져야 하며,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약함과 고난을 자랑하는 사도의 진정성
바울은 마침내 자신의 '어리석은 자랑'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의 목록을 하나하나 늘어놓습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나는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11:22–23).
그는 유대인에게는 다섯 번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돌에 맞고, 배가 파선되어 하루 밤낮을 물에서 지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또한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과 이방인의 위험, 도시와 광야, 바다와 거짓 형제들의 위험까지 끊임없는 위협 속에 있었습니다(11:26).
그 고난의 목록은 단순히 바울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진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치러야 했던 대가였습니다. 그는 외적인 성공이나 결과로 자신의 사역을 증명하지 않고,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약함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사도권의 증거를 '능력'이 아닌 '고난'으로 삼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메섹에서 도망했던 사건을 회상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 도망하였노라”(11:32–33). 이 사건은 바울 사역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그 시작부터 그는 낮아져야 했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는 그 기억을 자랑합니다. 세상적 기준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약함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약함으로 증명되는 복음의 진실
고린도후서 11장은 참된 사역이 무엇인지, 참된 복음의 일꾼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고백입니다. 바울은 말 잘하는 자,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 권위를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순결하게 중매하는 자, 복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받는 자, 그리고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도 이 기준 앞에 자신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 뒤에 복음의 본질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짓은 언제나 화려하게 다가오고, 참된 진리는 종종 고난 속에 감춰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처럼 약함을 자랑합시다.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함을 지키며, 거짓 복음에 속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신실한 자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