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장 묵상 강해설교
용서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어떤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관계에서 비롯된 오해와 아픔은 더더욱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고린도후서 2장은 바로 그런 관계의 복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생긴 갈등과 상처를 다루며, 참된 용서와 회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단지 상처를 덮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의 용서가 어떻게 인간 관계를 회복시키는지를 선포합니다. 본장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교회의 참된 모습과,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와 개인의 삶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은혜와 갈등, 회복의 여정에 대한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눈물의 편지와 마음의 아픔
바울은 이 장에서 고린도 교회와의 아픈 기억을 다시 꺼냅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의 고뇌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2:1). 그는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려 하다가 멈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문이 또 다른 상처를 남길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단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철저하게 기도하고 고민하며,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목자입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2:2). 이 말씀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깊은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에게서 기쁨이 사라지면, 바울에게도 기쁨은 없습니다. 이처럼 사도와 교회, 목자와 성도는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한 몸과 같은 존재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회개를 소망하며 '많은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냅니다(2:4). 그는 이 편지를 쓰면서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연민이 아니라, 책임 있는 헌신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아픈 책망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 책망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징계는 복음을 떠난 자를 다시 복음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이 편지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사랑의 깊은 호소였습니다. '많은 눈물'이라는 표현은 바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고통을 상징합니다. 그는 권위로 명령하지 않고, 사랑으로 부탁합니다. 이 장면은 복음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보여줍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며, 권세가 아니라 눈물입니다.
용서의 권면과 공동체의 회복
5절 이후 바울은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던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인물은 공동체 안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켰던 자이며, 많은 이들의 상처를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제 그에게 은혜를 베풀 것을 요청합니다. "이제는 도리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2:7).
용서란 단순히 죄를 덮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신성한 행동입니다. 헬라어 'charizomai'는 은혜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처럼, 우리도 타인에게 조건 없이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특히 회개한 자에게는 비난보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정죄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위로하다'는 말은 'parakaleō'인데, 이는 단지 말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는 행위입니다. 성도는 서로의 상처에 민감해야 합니다. 회개한 자를 계속해서 외면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교회는 치유의 공동체입니다. 상처 입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권면이 단순히 감정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는 "너희를 시험하려 한 것"(2:9)이라고 표현하며, 이 상황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복음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했다고 말합니다. 징계 이후에 회복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한 자를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2:11). 여기서 '계책(noēmata)'은 사단의 전략, 의도를 뜻합니다. 그는 공동체 내의 분열을 조장하며, 용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랑을 파괴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그 계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싸움 속에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단의 계책에 무너진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생명의 편지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사도라고 해서 항상 강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는 복음에 대한 사명감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사역을 우선하여 마게도냐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2:14). '이기게 하시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thriambeuō'이며, 로마의 개선행진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승리의 행진에 동참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승리는 고난 없는 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물과 아픔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승리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복음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 말합니다(2:15). 이 향기는 'osmē'라는 단어로, 제사에 사용된 향기로운 제물의 냄새를 의미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이며,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이 향기는 두 가지 반응을 일으킵니다.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향기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의 냄새입니다(2:16).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전해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생명이고,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질문합니다. "이 일을 감당할 자가 누구리요?" 이것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사도 자신도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복음 사역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복음을 맡은 자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7절, 바울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다시금 귀 기울여야 할 말씀을 던집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kapeleuō'는 상업적인 태도로 복음을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진실함으로 전했습니다. 그는 청중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설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태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은 전략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복음은 메시지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복음은 계산이 아니라 헌신입니다.
결론: 복음은 용서로 완성됩니다
고린도후서 2장은 단순히 한 사건의 정리를 넘어, 복음이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시입니다. 바울은 사랑으로 책망했고, 눈물로 편지를 썼고, 다시 사랑으로 용서를 요청합니다. 이는 복음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은 우리는, 그 은혜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머금은 우리는, 세상을 향해 용서와 회복의 향기를 퍼뜨려야 합니다. 복음은 단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용서와 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혹시 회개한 자를 품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 여전히 낙인찍힌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 복음은 그렇게 역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생명의 편지가 되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