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서신서

고린도후서 3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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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 새긴 언약, 마음에 쓴 편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 인정이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든, 실적으로 입증되든,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놀라운 전환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역자로서 자신의 자격을 추천서나 외적인 성취에서 찾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찾습니다. 바울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면서, 복음의 사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도 능력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편지이며,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 선언은 오늘날 우리 신앙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편지로서의 교회

바울은 3장 첫머리에서 반문합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는 것이겠느냐? 혹은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붙이거나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3:1).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다른 사도들의 추천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신은 사람의 추천서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무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3:2). 바울은 외적인 서류가 아닌, 살아 있는 공동체의 삶을 자신의 추천서로 내세웁니다. 여기서 '편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epistolē'로 실제로 전달되는 문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메시지인 인격적 편지를 의미합니다. 즉, 고린도 교회의 변화된 삶이 바울의 사역이 진실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사람의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고 말합니다(3:3). 이는 예레미야 31:33과 에스겔 36:26-27의 새 언약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돌판에 말씀을 새기지 않으시고, 사람의 심령에 그 말씀을 기록하십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단순히 제도나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통해 변화된 삶의 열매이며,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 복음을 읽고,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하게 됩니다.

새 언약의 직분, 성령의 사역

바울은 자신이 무능한 자가 아님을 말하지만, 그 능력의 출처는 자기 자신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는이라"(3:5). 그는 자신의 자격이 인간적인 능력이나 학식, 배경에서 오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섬기는 직분, 즉 사도직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율법의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3:6)라고 말합니다. 율법의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율법 비판이 아닙니다. 이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대조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정죄합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죄인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죄인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직분이 단지 외적인 계명 전달이 아니라,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복음 사역의 본질입니다. 설교자나 교사의 역할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아 사람의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일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직분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지를 옛 언약과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났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영광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이끄는 새 언약은 점점 더 큰 영광으로 나아갑니다(3:7-11).

바울은 이를 가리켜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느니라"고 말합니다(3:8). 옛 언약의 직분이 사망을 드러냈다면, 새 언약은 생명을 줍니다. 옛 언약이 정죄하였다면, 새 언약은 의롭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려진 얼굴에서 드러난 영광으로

이제 바울은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사건을 해석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썼느니라"(3:13). 모세의 수건은 단지 광채 때문만이 아니라, 그 영광이 사라질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는 그 수건이 제거됩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마음을 덮었도다"(3:15). 이 말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율법에 머물며 복음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진단입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진다고 선언합니다(3:16).

여기서 "주"는 성령을 의미하며, 바울은 성령을 주와 동일한 위격으로 소개합니다. 이는 삼위일체 신학의 뿌리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진술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3:17). 성령이 임하시는 곳, 그곳에는 죄와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 절에서 새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3:18).

이 말씀은 단순히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방향과 근원을 동시에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향해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성령에 의해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이것을 "영광에서 영광으로"(apo doxēs eis doxan)라는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성장과 성화의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결론: 마음에 새겨진 복음으로 사는 삶

고린도후서 3장은 우리에게 신자의 정체성을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새겨진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이 편지는 세상 앞에 공개된 메시지이며,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은 거룩하지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직분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유케 합니다. 우리는 그 직분을 맡은 자들입니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편지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의 태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고, 복음의 빛을 반사하는 그리스도의 얼굴로 살아가야 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손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깁시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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