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서신서

고린도후서 4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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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담긴 보배, 십자가의 빛으로 살아가는 삶

세상은 강하고 화려한 것을 자랑합니다. 능력, 성공, 외모, 학벌, 영향력... 보이는 것들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 기준을 따라 살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복음은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깨어진 그릇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고린도후서 4장은 복음 사역자의 내면을 열어 보이며, 진리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이 장은 진리를 따라 사는 자의 정체성과 고난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복음의 소망을 깊이 담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 보배와 질그릇, 외적인 쇠함과 내적인 새로움의 대비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진실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진리를 숨기지 않는 사역자의 자세

바울은 4장의 서두에서 복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4:1). 여기서 직분이라는 말은 단순한 직무를 넘어, 하나님이 맡기신 복음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이 사명은 공로로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외적인 압력이나 내적인 고난이 있어도, 그는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복음 사역자로서 감춰진 수치스러운 방법을 거부합니다. "이에 우리가 부끄러워 숨기는 일이나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4:2). '혼잡하게 한다'(dolountes)는 헬라어로, 원래 상인이 물건을 팔기 위해 물을 타서 속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진리를 타협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4:3).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4:4).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을 가리키며, 그는 사람의 눈을 가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전쟁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4:5). 바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복음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자신은 그 예수를 위해 성도들을 섬기는 종일 뿐입니다. 복음 전도자의 자세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창조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도 빛을 비추셨다고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4:6).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사건과 연결되며, 복음이야말로 새 창조의 역사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빛을 우리의 마음에 비추사,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십니다. 복음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영광의 빛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

바울은 복음의 영광이 어디에 담겼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4:7).

 

여기서 '보배'(thēsauros)는 복음 자체를 뜻하며, '질그릇'(ostrakinois)이라는 표현은 그 보배가 담긴 사역자의 육체적, 정신적 연약함을 가리킵니다. 고대에는 값싼 토기 그릇에 귀한 문서를 담기도 했습니다. 깨지기 쉬운 그릇에 담긴 값비싼 내용물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복음의 능력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일상적인 고난을 열거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4:8-9). 이는 외부의 억압, 내면의 갈등, 사회적 소외, 그리고 물리적 위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속에서 그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4:10). 예수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감수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 전체가 십자가의 삶으로 재편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이 드러납니다. 복음은 죽음과 생명이 함께 흐르는 길이며, 예수의 생명은 그 죽음을 통과한 자에게 임합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이어서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믄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4:11). 이것은 복음의 역설이며,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으나, 그 속에서 생명이 피어납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짐

바울은 이 고난의 이유를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넘치는 은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4:15). 고난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공동체를 세우며, 다른 이들의 감사를 이끌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4:16). 여기서 '후패한다'(diaphtheiretai)는 말은 썩어 들어간다는 뜻으로, 육체적 쇠퇴를 묘사합니다. '새로워진다'(anakainoutai)는 말은 성령에 의해 매일 다시 창조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신자의 삶은 겉은 무너져 가지만, 속은 매일 새롭게 지어지는 역설의 삶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서 바울은 현재 고난과 장차 영광을 비교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7). 여기서 사용된 '잠시', '경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중한 것'은 모두 히브리적 대조법을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는 비교 불가능한 차이를 통해, 장차 누릴 영광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시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18).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성도는 지금 이 땅에서 영원의 시선으로 사는 자입니다.

 

결론: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복음의 능력

고린도후서 4장은 복음 사역자의 정체성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이유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부서지기 쉽고, 보기에도 초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 안에 복음의 보배를 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도 무너지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만나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으로써, 예수의 생명을 드러냅니다. 죽음을 이겨낸 생명, 부활을 통해 나타난 영광은 연약한 질그릇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무너져 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잠시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믿음은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보배를 담으셨고, 여러분의 고난을 통해 그 보배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질그릇으로 살면서도 낙심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오늘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영광은 지금도 여러분 안에 빛나고 있습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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