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묵상 강해설교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삶, 거룩함으로 부름받은 자의 자세
복음은 단지 구원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 곧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고린도후서 6장은 바울이 복음을 받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어떠한 태도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장은 사도의 사역, 권면, 그리고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촉구가 밀도 있게 담긴 메시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자 초청입니다.
헛되지 않게 받은 은혜, 지금은 은혜의 때
바울은 앞선 장에서 화목의 사신으로 부름받은 우리의 정체성을 밝힌 후, 이어지는 6장에서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6:1). 복음을 듣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은혜가 삶 속에서 열매 맺어야 한다는 절박한 권면입니다.
바울은 이 권면을 이사야 49장 8절을 인용하며 강조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6:2). 이 말씀은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시간이며,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 때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로서 매일 새롭게 응답해야 할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실제 삶에서 그 은혜를 무기력하게 방치하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이 그 은혜에 응답할 때라고, 지금이 결단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할 때라고 선언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적 표현은 단순히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카이로스'(kairos), 곧 결정적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자천하는 삶: 하나님의 일꾼의 태도
이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 어떤 존재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6:3–4). ‘자천한다’는 말은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사람들의 판단이나 환경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항목들을 나열합니다. 많은 인내, 환난, 궁핍, 곤란, 매 맞음, 옥에 갇힘, 난동, 수고, 자지 못함, 먹지 못함 등입니다(6:4–5). 이는 단순히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목록이 아닙니다. 이는 복음이 진짜임을 입증하는 '삶의 증거'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지고 고난을 통해 입증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깨끗함, 지식, 오래 참음,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의의 병기로 무장한 삶이 하나님의 일꾼에게 있어야 할 영적 품성임을 밝힙니다(6:6–7).
그는 대조적인 표현들을 나열하면서, 외적으로는 낮아졌으나 내적으로는 존귀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6:8–10).
이 말씀은 복음 사역자의 삶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역설’(spiritual paradox)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방식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진리는 힘이 아니라 연약함을 통해 드러나며, 영광은 고난을 통해 나타납니다.
마음을 넓히라, 거룩함을 회복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마음을 넓히라고 호소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은 열렸고 우리의 마음은 넓었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6:11–13). 이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수용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율법주의, 세속적 가치관, 인간적 분열로 인해 복음을 온전히 품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강력한 권면을 이어갑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4). 이는 단순히 혼인 문제나 교제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의 일치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우상과 어둠, 불의와 연합하는 삶에서 떠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여러 수사 질문을 던지며 의도적으로 논리를 강조합니다.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교제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겠느냐고 묻습니다(6:14–15).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구분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분입니다. 복음은 존재의 본질을 바꾸는 능력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권면의 결론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너희는 나의 아들과 딸이 되리라”(6:18).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종이 아니라, 자녀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러운 것에서 나와 따로 구별되어야 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일꾼으로, 거룩함에 이르기까지
고린도후서 6장은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하며, 지금 이 시간은 결단의 때요, 순종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로 자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으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로 서야 합니다. 또한 믿지 않는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지 말고, 거룩함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목적이며, 복음이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하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과 멍에를 함께 메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꾼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겠습니까? 바울의 외침처럼, 이제 우리도 마음을 넓히고, 거룩한 분리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주께서 주신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오늘 이 시간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