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9장 묵상 강해설교
즐거이 심는 자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
믿음은 언제나 현실로 드러나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은 바로 그 믿음이 물질과 헌신의 영역에서도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이 장은 연보에 관한 실질적인 권면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 섭리를 담고 있는 깊은 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헌금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복되며, 그것이 공동체에 어떤 선한 열매를 맺는지를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준비된 헌신, 넘치는 은혜의 시작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가 연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마게도냐에 전해졌고, 그것이 다른 교회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의 열심을 인하여 마게도냐인들을 격동시켰노라”(9:2). 고린도 교회는 전년도부터 연보를 시작했고, 그 소식은 믿음의 공동체 전체에 믿음의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열심이 실제적인 준비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말뿐인 열심이 아니라, 실행되는 순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도와 함께 몇 사람을 먼저 보내어 그들이 약속한 헌금이 준비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9:5). 여기서 ‘참 연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eulogia’로, 단순한 물질이 아닌 ‘축복’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시 말해, 억지나 체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기쁨이 담긴 자발적인 드림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헌신은 늘 준비에서 시작됩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준비되지 않으면 실제가 되지 못합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며, 헌신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결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준비된 손이 축복을 흘려보내는 도구가 되고, 준비된 마음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은혜의 원리
바울은 연보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리라”(9:6). 이 원리는 농사의 원리처럼 단순하면서도 영적 현실을 반영하는 깊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단지 액수나 외형이 아니라 그 마음의 넉넉함과 자발성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9:7). ‘즐겨 내는 자’라는 표현은 헬라어 ‘hilaron’에서 왔습니다. 영어 단어 ‘hilarious’도 여기서 유래한 말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풍성하고 넘치는 웃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헌금은 부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일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은 곧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드리는 자를 결코 빈손으로 두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9:8).
이 말씀은 물질적 보상을 보장하는 번영 신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넘치게 공급하셔서, 선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드림의 목적은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선한 일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은혜는 흘러야 하며, 하나님은 흘려보내는 자에게 더 많이 채워주십니다.
바울은 시편 112편 9절을 인용하면서 의인의 나눔이 영원히 기억된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는이라”(9:9). 여기서 ‘의’는 단지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신자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나눔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 영원한 의의 행위입니다.
공급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
이제 바울은 드리는 자에게 어떤 영적 유익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9:10). 여기서 ‘씨’는 앞으로 심을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의미하고, ‘양식’은 현재 삶에 필요한 공급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다 채우시는 분입니다. 심을 것도 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며, 나아가 그 모든 행위의 열매를 영적으로 더해주십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성도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9:12). 연보는 단지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는 기부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따라 삶을 드리는 신앙의 고백이며,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거룩한 섬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너희가 복음을 진실하게 믿고 고백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연보로 인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며 사모하게 하느니라”(9:13–14). 이 구절은 연보가 단지 물질적 흐름에 그치지 않고, 영적 연합과 기도의 네트워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헌신은 기도를 낳고, 기도는 사랑을 낳으며, 사랑은 공동체를 더 깊이 묶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9:15). 여기서 ‘은사’(도레아)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은 자는 결코 인색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을 소유한 자는 그분처럼 주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 기쁨으로 드리고 넉넉히 나누는 복음의 삶
고린도후서 9장은 신자의 삶이 얼마나 실제적이고도 풍성한 은혜의 길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자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주는 자에게는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그들의 의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나눔은 단지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이며 헌신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그 은혜를 따라, 기쁨으로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손에서 나간 연보는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의로 세워지고, 공동체 안에 기도와 사랑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즐거이 심는 자의 길을 택합시다. 부족한 것에 시선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결코 우리의 드림을 잊지 않으시며, 그것을 통해 더욱 풍성한 은혜로 갚으실 것입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