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장 묵상 강해설교
음녀 바벨론의 몰락과 하나님의 숨은 섭리
요한계시록 17장은 상징과 이미지가 매우 강렬한 본문입니다. 바다 위에 앉은 큰 음녀, 붉은 짐승, 일곱 머리와 열 뿔, 그리고 왕들과의 연합 등 복잡한 묵시적 상징들이 교차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환상은 단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됩니다. 바로 “세상 권세는 잠시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선언입니다. 이 장을 묵상하는 우리는 복잡한 정치적 세력, 종교적 타락, 경제적 탐욕을 넘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그분의 공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주권자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를 분명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큰 음녀의 등장과 상징적 묘사 (17:1-6)
17장은 일곱 대접 심판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바벨론 심판의 세부적 묘사로 전환되며, 그 시작은 한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의 말로 시작됩니다. "내가 네게 큰 음녀 곧 많은 물 위에 앉은 자에게 받을 심판을 보이리라"(17:1). 여기서 '큰 음녀'(πόρνη μεγάλη, pornē megalē)는 단순한 성적 타락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 권세와 손잡은 종교적, 정치적 배교의 상징입니다.
‘많은 물’은 17:15에서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으로 해석되며, 이는 음녀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이 본 음녀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것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17:4). 이 모습은 마치 대제사장의 성스러운 복장을 모방한 듯하지만, 실상은 우상숭배와 탐욕의 상징입니다.
그의 이마에는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7:5). 고대 로마 시대의 창녀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소속을 이마에 써 붙였다고 합니다. 요한은 이 음녀를 통해 바벨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바벨론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속 권력과 타락한 종교 체계의 총합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상징입니다. 히에로니무스는 그녀를 “거짓 교회”라 불렀고, 루터는 “세속화된 종교 조직”으로 해석했습니다.
바벨론 음녀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 '큰 음녀'로 묘사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징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맥락 속에서 매우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바벨론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유혹하며 타락하게 만든 세속 권세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름 자체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 유래하며,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이름을 내고 하늘에 닿으려 했던 교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바벨의 영은 시간이 지나 제국 바벨론이라는 실제 세력으로 구현되어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고가고, 성전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의 세력으로 나타납니다(왕하 25장, 시 137편 참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바벨론이 단순히 한 도시를 넘어, 세상 문화, 정치, 경제, 종교의 타락한 총체로 나타납니다. 17장에서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라 불리며, 자줏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음녀'(헬. πόρνη, pornē)라는 단어는 단지 성적 타락을 의미하기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 세상 권세와 결탁하며 그분을 배반한 영적 간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선지자들은 이를 “음행”이라 표현했습니다(호 1:2, 렘 3:6-10). 바벨론이 음녀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약의 언약적 틀 안에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권세와 결탁한 교회의 배교, 혹은 종교적 타락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8장에서 바벨론은 상업과 사치, 권력, 음행의 중심지로 묘사되며, “땅의 왕들과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이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계 18:3)라는 표현은 경제와 정치가 죄의 구조 속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바벨론은 단지 외적인 압제의 세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교회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세상의 모든 가치 체계를 포괄하는 상징입니다.
결국, 바벨론이 음녀로 불리는 이유는 그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져버리고, 세상과 정욕과 권세와 결탁하여 성도들을 핍박하고 유혹하며, 거룩한 공동체를 타락시키는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이든,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탐욕과 세속주의든 시대를 초월한 타락의 본형으로 남아 있으며,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과 공의를 선포합니다.
붉은 짐승과 일곱 머리, 열 뿔의 정체 (17:7-14)
요한이 이 환상에 놀라자 천사가 그 정체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음녀가 앉은 붉은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으며, “모독의 이름들”로 가득 찼습니다(17:3). 이 짐승은 계시록 13장에서 이미 등장한 정치적 짐승으로, 사탄의 권세를 위임받은 세속 제국의 상징입니다. 17:8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짐승”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당시 로마 황제 숭배 사상이나, 네로 황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올 것이라는 민중적 미신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악의 권세가 죽은 듯하다 다시 활동할 것이라는 반복적 패턴을 상징합니다.
일곱 머리는 “음녀가 앉은 일곱 산이며, 일곱 왕이라”(17:9-10)고 해석됩니다. 로마가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도성이라는 점에서, 이는 로마 제국을 지칭하는 상징이기도 하며, 동시에 역사 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권력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열 뿔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짐승과 함께 한동안 권세를 받을 열 왕”으로 해석되며(17:12), 이는 당시 혹은 미래의 세계 정치 세력과 연합된 세속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들은 “어린양과 싸우려 하나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심으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17:14). 여기서 ‘이기다’는 헬라어 nikēsei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를 넘어, 절대적인 궁극적 승리를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의 핵심 메시지는,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다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음녀의 자멸 (17:15-18)
17장의 마지막 절들은 하나님의 심판 방식이 얼마나 정교하고 섭리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음녀를 파괴하는 주체가 바로 그와 함께했던 열 뿔들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그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17:16). 이는 인간의 죄악이 결국 자기 파괴를 불러오는 구조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 자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17:17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 나라를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루기까지 하심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합니다. 헬라어 ‘βαλήναι τὰς καρδίας’는 ‘그들의 마음을 기울이게 하셨다’는 의미로, 하나님이 악인의 마음조차도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놀라운 신학적 통찰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절은 음녀의 정체를 명확히 밝힙니다.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17:18). 이는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이며, 신학적으로는 모든 시대의 바벨론, 즉 타락한 세속 권력의 총체입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17장은 강렬한 상징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권력, 종교적 타락이 결국 어떻게 자멸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큰 음녀 바벨론은 화려하고 강력해 보이지만, 결국 짐승과의 연합 속에서 멸망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분명한 분별력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바벨론의 매혹 앞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어린양을 따르는 길에만 있으며, 세상의 권세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려한 음녀의 유혹보다, 보이지 않는 어린양의 승리를 믿고 따라가는 성도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이들이 결국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화려해 보일지라도,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 마음을 살피고, 세상 권세와 짝하지 않는 거룩한 교회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