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8장 묵상 강해설교
무너진 바벨론, 영원히 사라질 세속 권세의 허상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애가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세상의 찬란하고 화려한 권세가 얼마나 덧없고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심판의 선언입니다. 17장에서 큰 음녀로 상징된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 문명의 총체를 대표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타락한 체계에 대해 최종적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눈앞의 부와 세속 권세에 현혹되지 않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성취되며, 모든 세속적 바벨론은 무너집니다. 이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본문을 묵상합시다.
바벨론의 멸망, 하늘의 천사에 의한 선포 (18:1-3)
18장은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고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18:1)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다른 천사’(ἄγγελος ἄλλος)는 17장에서 바벨론의 정체를 보여주었던 천사와는 다른 존재로, 그는 ‘큰 권세’를 가졌고 ‘그의 영광’은 땅을 밝힐 만큼 강력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전하는 위임받은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 천사는 힘 있게 외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18:2). 이는 히브리식 반복법으로, 멸망의 절대성과 긴박함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무너졌다’는 말은 헬라어 ‘ἔπεσεν’(epesen)으로 단번에 완전히 무너졌음을 강조하는 과거 시제입니다. 이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κατοικητήριον δαιμονίων)가 되었고, ‘각종 더러운 영’이 거하는 곳, ‘가증하고 더러운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화려한 도성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타락과 심판의 상징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3절은 바벨론의 영향력을 밝힙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여기서 ‘음행’(πορνεία)은 단순한 성적 문란이 아닌,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시스템과의 결탁을 의미합니다. 왕들은 정치적 권세를,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바벨론과 손잡았으며, 이 구조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합니다.
성경 안에서의 바벨론 상징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하나님 나라의 적대적 존재로 묘사되며, 이는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바벨론의 상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과 집단적 자율성의 상징이었습니다. 이후 구약에서 바벨론은 실제로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하며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간 제국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그 거처에 대한 직접적 공격자의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렘 51:24-25). 이처럼 바벨론은 항상 하나님 통치에 대한 대항 세력, 즉 세속 권세와 우상숭배, 폭력과 타락의 총체적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러한 구약적 이미지가 확장되어, 바벨론은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성도들을 핍박하며 물질과 권력, 쾌락을 숭배하는 세상 체계의 집합체로 그려집니다(계 17:5, 18:3). 따라서 바벨론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대조되는 거짓된 영광과 사치, 교만의 문화적·정치적 시스템을 대표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할 운명을 가진 실체로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 성도들을 향한 명령 (18:4-8)
이어지는 4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긴급한 명령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출출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나오라’(ἐξέλθατε)는 명령형으로,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관과의 단절, 바벨론적 사고와 생활양식에서 벗어나라는 영적 출애굽의 부름입니다.
5절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바벨론의 죄는 이제 하나님의 참으심의 한계를 넘었으며, ‘하늘에 사무쳤다’는 표현은 창 11장에서 바벨탑을 쌓던 인간의 교만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6절부터 8절은 바벨론의 심판의 강도를 선포합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며 그가 섞은 잔에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갑절’(διπλῶσατε)은 하나님 심판의 철저함과 공의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하였으므로, ‘한 날에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18:8). 이 표현은 바벨론이 아무리 스스로를 견고하게 세우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순식간에 임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애가로 들려오는 세상의 애통 (18:9-19)
바벨론이 무너질 때, 그와 결탁했던 자들의 반응은 회개가 아닌 통곡입니다. 땅의 왕들이 그녀를 위해 울고 가슴을 치며 탄식합니다(18:9-10). 그러나 그들의 탄식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회개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 큰 성이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18:10)라는 말은 반복되며, 바벨론의 몰락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완전한지를 강조합니다.
11절부터 17절에는 상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베, 자주 옷, 비단, 붉은 옷’ 등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물품들을 팔던 자들이며,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가치하게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특히 13절 끝에 ‘사람들의 영혼들’(ψυχὰς ἀνθρώπων)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벨론의 경제 시스템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사람 자체를 상품화한 비인간적 체계였음을 지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18:17-19에서는 선박 상인들과 해상 운송업자들도 탄식합니다. “이 큰 성이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라는 구절이 또 반복되며, 바벨론의 경제적 중심성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반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사라질 때, 그들은 회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손해를 탄식합니다.
하늘의 기쁨과 바벨론의 결말 (18:20-24)
이제 분위기는 전환되어, 하늘에서는 반대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18:20). 이는 단순한 보복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다는 신앙적 환호입니다. 천사는 큰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지며 말합니다. “이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18:21). 바벨론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완전한 멸망을 맞이합니다.
이어지는 22-23절은 그녀 안에서 ‘음악도’, ‘등불도’, ‘혼인의 소리도’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생명과 기쁨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묘사합니다. 24절은 바벨론의 죄의 정점을 선언합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이는 바벨론이 단지 부도덕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생명을 무시한 폭력의 중심지였음을 드러냅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18장은 세상 권세의 허무한 끝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바벨론은 찬란하고 화려해 보였지만, 그것은 거짓된 영광이었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단숨에 무너집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세속적인 가치관, 물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돌이켜, 참된 영광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며, 바벨론과 함께 망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나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바벨론에서 나와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요한계시록 장별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