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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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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의 마지막 권면

고린도전서 16장은 긴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실제적이고 따뜻한 권면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앞서 부활의 교리를 깊이 있게 설명한 후, 바울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 곧 연보, 동역자와의 관계, 개인적 방문 계획, 성도 간의 교제와 환대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장은 마치 신학적인 고봉을 넘은 후 일상의 골짜기로 내려오는 듯한 흐름으로, 신앙의 진리가 어떻게 구체적 삶에서 살아나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실무 지시가 아니라, 복음으로 변화된 삶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 공동체도 진리 위에 선 삶을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지를 묵상해 봅시다.

 

고린도전서 16장은 어떤 면에서 바울이 가진 목회자의 진심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입니다. 교리적 엄중함, 교회 내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들을 거친 후, 그는 공동체가 실제로 어떻게 복음에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고도 진지하게 안내합니다.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사역의 실천이 단지 신앙의 보조 행위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연보, 사랑의 실천

바울은 서두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언급합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16:1). 여기서 ‘연보’로 번역된 헬라어 ‘λογεία(로게이아)’는 특별한 헌금, 곧 구제를 위한 자발적 헌금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 기부가 아니라, 연합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와 경제적 고난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바울은 이방 교회들로부터 연보를 모아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을 자신의 중요한 사도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이 헌금은 단지 구제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이 일은 하나의 신학적 상징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었다는 증거이며, 복음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연합의 열매였습니다.

 

바울은 이 연보를 조직적으로 시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16:2). 이 말씀은 성도의 경제 생활이 예배와 분리되지 않으며, 정기적이고 의도적인 헌신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수입에 따라’라는 표현은 자발성과 형편에 맞는 헌신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그는 강요하지 않지만, 공동체가 형제 자매의 고통에 공감하며 실천으로 응답하길 바랐습니다.

 

이 연보는 단순한 물질적 나눔이 아닌, 복음으로 하나 된 공동체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중심이었고, 고린도 교회는 헬라인 중심이었습니다. 이런 문화적, 인종적 차이를 넘어 사랑으로 연결된 행위가 바로 이 연보였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테르툴리안은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의 손을 통해 자신이 부유해짐을 체험한다"고 말하며, 연보의 영적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이 연보를 전달하는 일조차도 공동체 안에서 투명하고 신뢰 있게 진행되기를 원했습니다. “너희가 인정한 자들에게 내가 편지를 주어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연보를 전달하게 하리니”(16:3). 단순히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합의하여 실천하게 함으로써, 교회의 자율성과 영적 책임감을 동시에 세우려는 바울의 목회적 지혜가 드러납니다.

 

공동체를 섬기는 사도와 동역자

바울은 자신의 방문 계획을 나누며, 에베소에 당분간 머물 것이라고 밝힙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16:8-9).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θύρα μεγάλη καὶ ἐνεργής(두라 메갈레 카이 에네르게스)’이며, 이는 복음 전도의 기회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뜻합니다. 바울은 대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붙잡고 사명을 감당하려는 열정을 보입니다.

 

이 구절은 복음 사역의 본질이 항상 편안하고 순탄한 길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사탄의 강한 저항이 있는 곳에 복음의 문도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 바울의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사역의 실패가 아니라, 때로는 오히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펼쳐지고 있는 징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특히 디모데에 대해서는 “그로 너희로 두려움 없이 있게 하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라”(16:10-11)고 권면합니다. 이는 디모데가 젊고 연약한 인상 때문에 고린도 교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바울은 그를 보호하고 격려합니다. 디모데뿐 아니라 아볼로에 대해서도 “그가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기를 많이 권하였으나… 때가 아니므로 가지 아니하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16:12)라고 말하며, 사역자의 결정과 인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바울의 자세는 리더십의 본을 보여줍니다. 그는 사역을 위임하고, 동역자를 세우며, 서로의 약점을 감싸주는 온유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모든 일을 감당하는 곳이 아니라, 은사를 따라 서로를 격려하고 섬기는 동역자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절대 권위로 유지되지 않았고, 다양한 사역자들이 복음의 현장 곳곳에서 서로를 세우며 일구어낸 연합의 열매였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13절과 14절에서 고린도 교회 전체를 향해 직접적인 권면을 전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 네 가지 권면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신앙의 원칙입니다.

 

‘깨어’라는 표현은 헬라어 ‘γρηγορεῖτε(그레고레이테)’로, 영적으로 졸지 않고 항상 경계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는 종말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자의 태도이며, 시험과 유혹 가운데 깨어 있는 경건한 자세를 요구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은 교리적 확신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 안에 뿌리내리는 삶을 뜻합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구절은 공동체가 외적 환경이나 내적 갈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용기를 갖추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동기와 방식이 사랑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과 직접 연결되며, 성숙한 신앙이란 은사나 열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마지막 인사에서 스데바나 집안을 언급하며 그들이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자들”(16:15)이라 칭찬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권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헌신된 자들에게 존중을 표하고 순종하는 문화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자신들의 집을 교회로 내어놓았음을 언급하며, 가정이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는 모델을 제시합니다. 교회는 벽돌로 세워진 장소가 아니라, 헌신된 사람들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문장을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16:22)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다소 강한 어조처럼 들리지만,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최종적 상태에 대한 분명한 경고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마라나타)을 대망하는 성도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사랑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6장은 교리를 넘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이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말씀입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사랑을, 동역자와의 관계를 통해 겸손을, 신앙의 권면을 통해 성숙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단지 이론과 교리를 넘어,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와 교회 안팎에서의 진실한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하기를”(16:23-24)라는 바울의 축복처럼, 오늘도 우리 모두가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복음의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생명력을 잃고, 삶 없는 교리는 무게를 잃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마지막 장처럼,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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