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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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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하나님, 고난의 사도

세상은 고난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삶이 성공이라는 기준처럼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고난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도구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은 사도 바울의 삶 속에 깊이 배어 있는 고난의 현실과 그 가운데 부어지는 하나님의 위로를 진하게 묘사합니다. 바울은 단지 개인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로 이어지며, 교회 공동체 전체의 유익으로 연결되는지를 밝혀줍니다.

고난과 위로, 죽음과 생명, 절망과 소망이 엇갈리는 이 복합적 구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시는지를 목격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위로를 경험하고, 그 위로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되새기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로

바울은 인사말을 마친 후,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찬양하는 하나님의 정체는 놀랍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1:3). 여기서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마음을 다독이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paraklēsis'는 '곁에서 부른다'는 뜻의 'parakaleō'에서 유래한 단어로, 위로자는 단순한 위안자가 아닌 돕는 자, 동행자, 대언자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을 가감 없이 나열합니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은 죽음을 각오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1:8). 바울이 여기서 고백하는 고난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 삶의 의욕과 기대마저 사라지는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고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1:9)입니다. 이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이 고난이 단지 개인적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환난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라"(1:6). 이 말씀은 고난의 목적이 단지 개인의 성숙이나 영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세우고 이끄는 통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신자의 삶은 언제나 공동체적이며, 우리의 고난 또한 교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의 순환과 사도의 정체성

바울은 이 장에서 고난과 위로가 상호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1:5). 여기서 "넘친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perisseuō'인데, 단순한 양적 증가가 아니라, 경계를 넘쳐 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고난도, 위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넘쳐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복제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그의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는 단지 고통받는 신앙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과 위로를 체험하고 나누는 공동체적 신앙의 실천입니다. 바울은 이 신앙을 실제적인 삶으로 증명해냅니다.

그는 자신의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자신의 사역이 사람의 변덕이나 감정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이런 결정에 불신을 품었지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을 잊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진리 안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신앙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고백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1:20).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nai)입니다. 이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아멘(amen)', 곧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진실입니다"라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인치심과 보증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마지막으로 신자의 신분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진술을 덧붙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1:21). 여기서 '굳건하게 하다'(bebaioō)는 단어는 기반을 튼튼히 세우는 건축용어입니다. 신자의 삶은 불확실한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확증 위에 견고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이는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주어진 구별된 부르심을 의미하며, 신약에서는 성령을 통해 모든 신자에게 임하는 거룩한 임명을 가리킵니다. 이는 신자의 사명과 권위를 확증해주는 하나님의 선택과 임재를 뜻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인치다'(sphragizō)는 소유권과 보존을 의미합니다. 고대에는 문서를 밀랍으로 봉하고 주인의 인장을 찍어 소유자와 정체성을 명확히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겨주신 인장입니다.

또한 '보증'(arrabōn)은 상거래에서 계약금을 의미하며, 앞으로 전부를 반드시 지급하겠다는 약속의 담보입니다. 성령은 단순한 은사가 아니라,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미리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우리는 그 보증 안에서 하나님의 소유로서, 확실한 구속의 길 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결론: 고난의 깊이만큼 부어지는 위로의 은혜

고린도후서 1장은 고난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바울은 신앙의 여정을 마치 장밋빛 길처럼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난이 실재하며, 때로는 살 소망마저 끊어지는 극한의 순간까지 인도된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이 고난은 바울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과 연합의 표현이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 위로는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과 위로는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함께 나누어지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지금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입니까? 그곳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자리입니다. 위로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바울처럼 하나님께 아멘으로 응답합시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실하시고, 그의 위로는 반드시 도착합니다. 그 은혜를 신뢰하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장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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