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될 수 없는 고통 <흑산>
공유될 수 없는 고통
신평로교회 선교국을 통해 치료받은 캄보디아 롱삐살군
서울 의금부 형틀에 묶여서 심문을 받을 때 곤장 삼십대 중에서 마지막 몇 대가 엉치뼈를 때렸다. 그때,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척추를 따라서 뇌 속으로 치받쳤다. 고통은 벼락처럼 몸에 꽂혔고, 다시 벼락 쳤다. 이 세상과 돌이킬 수 없는 작별로 돌아서는 고통이었다. 모든 말의 길과 생각의 길이 거기서 끊어졌다. 고통은 뒤집히고 또 뒤집히면서도 닥쳐왔다. 정약전은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을 저주했지만 고통은 맹렬히도 생명을 증거하고 있었다. …… 매를 맞을 때, 고통은 번개와 같았고, 매를 맞고 나면 고통은 늪과 같았다.
…… 형틀에 묶이는 순간까지도 매를 알 수는 없었다. 매는 곤장이 몸을 때려야만 무엇인지를 겨우 알 수 있는데, 그 앎은 말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은 읽은 자로부터 전해들을 수나 있고, 책과 책 사이를 사념으로 메워갈 수가 있지만, 매는 말로 전할 수 없었고, 전해 받을 수가 없으며 매와 매 사이를 글이나 생각으로 이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는 책이 아니라 밥에 가까웠다.
…… 함께 묶여서 매를 맞을 때 형제들은 서로 매 맞는 소리와 신음을 들었지만 한마디도 건넬 수는 없었다.
…… 나란히 묶여서 매를 맞을 때도 매는 혼자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매는 공유되지 않았고 소통되지 않았다. 모는 매는 각자의 매였는데, 그랬기 때문에 매는 더욱 육신에 사무쳤다. 그 캄캄한 단절은 신의 부재 증명이었지만, 다시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생명을 증거하는 사태는 신의 존재 증명인 듯도 했다.
-김훈 <흑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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