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읽기] 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
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
토마스 아퀴나스 / 새물결플러스
*이글은 국민일보(마이트웰브)에 기도한 글입니다.
중세는 개신교인들에게 그리 호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종교개혁으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종교개혁 자체가 중세 신학에 뿌리는 두고 있으며, 중세 신학이 추구했던 신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수많은 신학자를 모두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중세 가톨릭 신학 자체가 개신교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고, 굳이 살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안셀무스는 조금 살펴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들은 가톨릭 신학을 대표하면서도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강해를 읽기 전에 먼저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1. 토마스 아퀴나스의 간략한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1224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멀지 않은 로카세카 성(Roccaseca)의 작은 봉건 영주인 아퀴노(Aquino) 백작 가문인 란돌포의 9남매 중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귀족 가문의 관행대로 아들 가운데 한 명을 수도원 원장으로 만들 생각으로 토마스를 인근 몬테카시노에 봉헌합니다. 그때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습니다.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합니다. 그의 부모가 수도원에 보낸 이유는 당시의 베네딕도 수도원장의 직책은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정치권력을 신성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봉건 영주와 맞먹는 권력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토마스가 14쯤 되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를 선도했던 나폴리 대학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면서 철학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족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당시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크 수도회를 알게 됩니다. 나폴리 대학에서 5년의 공부를 마치고 그는 1244초에 토마스 수도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때의 나이가 19세에서 20세 초였습니다. 가족들은 구걸하며 생활하는 탁발 수도회에 토마스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심지어 토마스를 1년 동안 감금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하지만 토마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가 됩니다.
당시 나폴리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흥과 복음주의 운동이 급격하게 일어났습니다. 세속을 떠나 거룩을 추구했던 수도원들은 타락하여 세상의 권력을 탐하여 세상 권력 위에 수도원이 올라서기를 갈망했던 시기였습니다. 토마스의 부모들도 그런 기대로 아들은 수도원에 봉헌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리에서 철학을 접하고, 새로운 수도원 각성 운동인 탁발 수도회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기독교에 자연철학을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적 사변을 통해 신학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어거스틴에게서 시작하여 토마스 아퀴나스, 안셀무스까지 이어집니다.
보수적 관점에서 아퀴나스의 철학을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타락한 교회를 향하여 아퀴나스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변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을 사용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시대와 현대처럼 교리가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발달한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는 철학을 통한 신학 변증과 중세의 연옥설과 같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교리들도 적지 않게 담고 있습니다. 토마스의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처럼 자연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면서 성경의 직접 계시와 접목시키기 위해 발군(拔群)의 수고를 하게 됩니다.
도미니크 수도사가 된 후 토마스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신학과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수차례 파리에 거주하였으며, 독일 쾰른에서 알베르투스의 강의를 듣고 비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도 오르비에토, 로마, 나폴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도 함께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계속하여 <신학대전>을 집필합니다. 그런데 죽기 불과 3개월 전 갑자기 모든 교육과 집필을 중단합니다. 그때 비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본 것에 비교하면 내가 쓴 모든 것을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이 말을 남긴 얼마 후, 1274년 3월 7일 만 오십이 되기도 전에 숨을 거둡니다. 제14차 공의회가 열리는 리옹을 향해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많은 종류를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방대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신학대전>이 번역되어 있는 상태이고, 다른 몇 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철학서적으로는 <자연의 원리들>(철학과현실사) <유와 본질에 대하여>(바오로딸) <인간의 사고>(서광사) 등이 있습니다. 신학 관련 서적으로는 <사도해전 강해>(새물결플러스) <진리론>(책세상) <신학요강>(나남출판)<영혼에 관한 토론문제>(나남출판) <지성단일성><대이교도대전>(분도출판사) <신학대전 전집>(바오로딸) 등이 있습니다. <자연의 원리들>과 <신학 요강>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서적입니다.
2. 책의 구조와 내용 요약
<라틴어 사도신경>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Et in I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Amen.
이 책은 사도신경을 강해한 것으로 사도행전의 구조와 순서를 따릅니다. 아퀴나스는 성도가 믿어야 할 진리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사도신경 강해를 열두 조항으로 나누어 해설합니다.
서문
1항 “나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항 “그리고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항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4항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5항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6항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7항 “그곳으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8항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9항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나는 믿습니다.]”
10항 “성도의 교제와 죄의 용서를 [나는 믿습니다.]”
11항 “육체의 부활을 [나는 믿습니다.]”
12항 “영생을 [나는 믿습니다.] 아멘.”
[요약]
서문
믿음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영혼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합니다. 세례는 믿음에 관한 첫 번째 성례전입니다. 믿음을 통해 영생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현세의 삶을 인도합니다. 믿음으로 유혹을 이깁니다. 믿음으로 지옥이 있음을 압니다.
“이처럼 누구도 믿음에 대해서 의심해서는 안 되며, 보이는 것들보다는 믿음에 속한 것들을 더욱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시각은 속을 수 있지만, 인식은 결코 틀리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1항 “나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만물의 통치자와 섭리자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질서대로 운행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시14:1)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배치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이 여럿이라 믿습니다. 이것은 ‘인간 지식의 연역함’(63쪽) 때문입니다. 또한 ‘아첨’(65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사람에게 돌립니다. ‘육적인 애정’과 ‘악마의 악의’(67쪽)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창조자요 제작자입니다. 세상은 마니교처럼 악마가 창조하지도 않았고, 선재한 어떤 것으로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2항 “그리고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89쪽)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이단들은 예수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요 8:58) 즉 모든 세대 전에 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그분은 항상 성부와 함께 계셨으며, 성자의 위격과 성부의 위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97쪽)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동일한 본질에 속’(99쪽)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묵상하고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3항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성육신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 1:14) 예수는 하나님의 발설된 말씀입니다. 즉 ‘말씀이 육신을 입자 그제야 비로소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습니다.’(107쪽) 오리게네스는 종말에 마귀들까지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109쪽) 성육신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외견상으로 육신을 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는 참 사람입니다. 에비온은 남녀가 관계하여 태어났다고 하지만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장 참되게 가지고 계셨습니다.’(115쪽) 성육신을 우리는 ‘믿음이 견고해’(119쪽)지고, ‘소망이 고양’(119쪽)되며, ‘사랑이 불붙게 됩니다.’(121쪽) 또한 ‘우리의 영혼을 순결하게 지킬 수 있도록 인도됩니다.’(121쪽)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그리스도께 도달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이 불타오르게 됩니다.’(123쪽)
4항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의 신성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인성이 죽는 죽음을’(125쪽) 겪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하나는 죄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행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127쪽) 우리는 다섯 가지 악을 범했습니다. 얼룩(흠), 하나님께 모욕, 연약함,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태’, ‘왕국으로부터의 추방’입니다. 첫 사람들은 죄로 인해 동산에서 추방되었으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범은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당신이 땅에 속한 것들을 경멸하는 것의 모본을 찾고 있다면 왕들의 왕이시며 통치하는 자들의 주이신 그분을 따라가십시오. 그분 안에는 지혜의 보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십자가에서 벌겨 벗겨지고,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셨으며, 매를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고, 쓰고 신 잔을 마시셨고, 그리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143쪽)
5항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신성은 사람이신 그리스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덤 속에서는 육체와 함께 계셨고, 음부에는 영혼과 함께 내려가셨습니다.’(145쪽) 음부에 내려가신 이유는 ‘죄에 대한 벌을 감당하시기’(147쪽) 위해, ‘자신의 모든 친구들을 완전히 돕기’(147쪽) 위해, ‘악마를 완전히 이기기’(149쪽) 위함입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죄를 가지고 음부에 내려간 사람들과 할례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을 그곳에 내버려 두셨습니다.’(153쪽)
[이 부분은 신학적으로 논쟁이 많은 곳이며 개혁주의 전통에서 거부하는 부분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중세였고, 가톨릭 신학자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6항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더불어 승천도 믿어야 합니다. 첫째, ‘물리적인 하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171쪽) 둘째, ‘영적인 하늘’(173쪽)로 올라가셨습니다. 셋째, ‘아버지의 보좌까지 올라가셨습니다.’(173쪽) 오른쪽은 은유적인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173쪽) 하늘은 본성상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며, 승리하심으로 하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분의 겸손으로 인해 합당한 곳입니다. 그리스도는 승천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곳임을 알려 주셨고, 우리의 안전을 위해 올라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우리를 변호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곁에 변호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179쪽)
7항 “그곳으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은 ‘그리스도’(183쪽)입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고, 모든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심판은 곧 성도에게 구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선행과 악행에 대해 심판받을 것입니다.’(187쪽) 또한 ‘생각과 말과 행위’(189쪽)을 아시고 말대로 심판하십니다. 네 가지 치유책을 가져야 합니다. ‘선한 행위’ ‘참회’ ‘자선’ ‘사랑’입니다.(193쪽)
8항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신앙을 살아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히 4:12)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령은 주님입니다.(고후 3:17)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몰아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신 성령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197쪽)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본질에’(199쪽) 속합니다. 성령은 다섯 가지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죄를 정화시킵니다.
-성령은 우리의 지성을 비추어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고 계명을 지키게 하십니다.
-성령은 영생에 대한 희망을 견고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는 확신에 이르게 합니다.
9항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나는 믿습니다.]”
[보편 교회는 영어로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입니다. 개신교는 보편 교회(가톨릭교회)와 로만(로마) 가톨릭교회는 구분하여 부릅니다. -필자 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보편 교회는 하나님입니다. 교회는 곧 회중입니다. 거룩한 교회는 네 가지 조건을 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라는 것, 거룩하다는 것, 카톨릭카(catholica) 곧 보편적이라는 것, 그리고 강하고 견고하다는 것입니다.’(209쪽) 교회의 단일성은 세 가지로부터 연유합니다. ‘신앙의 단일성’(209쪽), ‘소망의 단일성’(211쪽) ‘사랑의 단일성’(211쪽)입니다. 노아의 방주 밖에서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듯 하나의 교회 밖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기름 부음으로, 삼위일체의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의 부름으로 거룩해집니다. 교회는 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상에 있고, 또 하나는 하늘에 있고, 세 번째는 연옥에 있습니다.”(217쪽)
[중세는 연옥설을 지지합니다. 종교개혁은 연옥에 있는 영혼을 땅에 있는 신자들의 연보로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로 유혹한 것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 외도 다양한 이유는 분명 존재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모호하고 분명치 못한 교리를 배제하고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리만을 채택합니다.]
교회는 지역적으로 보편적입니다. 예전에는 유대 땅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곳에 보편적으로 존재합니다. 둘째, 구성하는 사람에게 보편적입니다. 혈통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셋째, 교회는 시간적으로 보편적입니다. 교회는 ‘아벨로부터 시작되었고, 세상 끝 날까지 존속될 것’(217쪽)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영원한 것이며, 든든한 것입니다. 교회는 무너지거나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함으로 든든한 것입니다.
10항 “성도의 교제와 죄의 용서를 [나는 믿습니다.]”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에 각 성도는 지체입니다. 이것은 서로 교제한다는 말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덕이 온몸에 전해집니다. 또한 온 성도가 그 덕을 나눔으로 교제합니다. 오직 사제만이 세례를 주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누구나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227쪽) 그러나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야 하는 형식은 지켜야 합니다. 세례(침례) 받을 때 삼 일 동안 무덤에 계셨기에 ‘물속에 세 번 잠기는 것’(227쪽)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성사인 세례입니다. 두 번째는 ‘견진성사’입니다. 세 번째는 ‘성체성사’이고, 네 번째는 ‘고해성사’입니다. 다섯 번째는 ‘종유성사’입니다. 종유성사는 약 5:14-15에 따라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성품성사’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혼인성사’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오직 세례와 성찬만을 은혜의 수단으로 인정합니다.]
교회는 교제를 통해 두 가지를 얻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모든 지체에게 전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선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11항 “육체의 부활을 [나는 믿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다시 부활합니다. 바울은 우리 몸을 부활을 예언합니다.(롬 4:24, 고전 15:21) 부활을 통해 우리는 슬픔이 사라질 것을 기대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부활로 인해 삶에 열심을 내게 합니다. 또한 부활로 인해 심판을 알기에 악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부활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몸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영이 아닌 몸으로 부활했습니다. 뼈가 있고 살이 있으며, 음식도 같이 드셨습니다.
둘째, 부활의 몸은 현재의 몸과 다릅니다. 썩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셋째, 완전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즉 병이나 장애가 없습니다.
넷째, 완전한 나이, 곧 서른세 살 혹은 서른두 살의 나이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의 나이에 대한 생각은 초대교회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과 죽으신 나이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천사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12항 “영생을 [나는 믿습니다.] 아멘.”
사도신경은 영생을 향합니다. 이것은 몸과 함께 영혼이 죽는다는 소멸설을 부정합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연합이며, 이것은 허무한 곳에 굴복했던 죄있는 육신의 시절에 대한 보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보상이며 상급이라’(창 15: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자체가 신자들의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신국론>에서 이것을 주장했고, 이사야와 계시록도 언급합니다. 또한 영생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사귐이 있습니다.
3. 나가면서
지금까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간략한 생애와 사도신경 강해를 살펴보았습니다.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봅시다. 먼저, 철학자의 논증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이 책은 강해이지만 한 편으로 변증서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주장을 펼침으로 이단들을 공격하며 반론을 제기합니다. 한 가지의 교리 안에 풍성한 내용을 추론하고 끄집어 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가 가지고 있는 연옥설이나 성사의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성사를 통해 거룩하게 살려고 했던 정신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문헌으로부터 중세의 신학으로 넘어오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6세기 중반 이후 교회는 경직되고 세속화되어 교리적으로나 거룩 성에 있어서 내놓을만한 것이 없습니다. 실제로 교회 고전 중에 그레고리 대종 이후와 아퀴나스 이전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퀴나스 이후 종교개혁까지는 교리의 부패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심화되고 마침내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들을 통해 중세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앞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문헌을 몇 권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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