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독서일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검색해 보면 크라잉넛 5집에OK목장의 젖소가 나온다. 그 앨범 중의 한곡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당연히 신영복교수의 책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의외의 발견이었다. 가사를 잠깐만 보자.
1 바람이 창문을 보며 떠나라고 하네 괴롭다 이 자식아 언제 끝이 나려나 참을성 없이 보낸 거지같은 일기들 내 명함 되어 혓바닥 이라고 웃기고 있구나
2 부슬비 양철지붕에게 죽으라 하네 괴로운 폭풍우야 언제나 그치려나 참을성 없이 보낸 거지같은 일기들 내 명함 되어 그것도 재밌다고 웃기고 있구나
3 사랑이 떠나가고 남은 곳에 폭풍이 괴롭다 이 자식아 언제 끝이 나려나 참기 힘든 세상 거지같은 일기들 내 명함 되어 그것도 재밌다고 웃기고 있구나
4 하늘이 날 잡아 가시기전에 단 한번이라도 깨끗한 눈을 눈을 들어 세상 속에서 내 진짜얼굴을 보고 싶구나 하늘이 날 잡아가는 그곳에 빛나는 한줄기 별빛 떨구는 눈을 들어 하늘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보고 싶구나 맛을 보니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의 특유한 반항기가 잔뜩 묻어 나온다. 뭔가 달관하며 사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삶을 영위하려는 이기적 욕망이 가득하다. 제목에 의거해 가사를 살펴보면 그는 감옥에 있고, 가난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 끝나려나' 투덜거리며 감옥에서 나갈 일만 생각한다. 4절 가사의 첫마디를 보면 아마도 사형수인지도 모르겠다. '참을성 없이 보낸 거기같은 일기'라며 지나온 자신의 과오를 후회한다. 그러나 깊은 반성이나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신영복 교수의 책으로 돌아가 보자.
"수인들은 늘 벽을 만납니다. 통근길의 시민이 'stop'을 만나듯, 사슴이, 수인들은 징역의 도처에서 늘 벽을 만나고 있습니다. 가련한 자유의 시간인 꿈속에서저마저 벽을 만나고 마는 것입니다. 무수한 벽과 벽 사이, 운신도 어려운 각진 공간에서 우리는 부단히 사고의 벽을 헐고자 합니다. 생각의 지붕을 벗고자 합니다."(91쪽)
벽
수인들로 규정하는 경계를 가르는 상징이다. 물리적 경계를 가르고, 생각과 사유의 경계마저 가른다. 각진 네모 안에 갇혀 살아간다. 한계이고, 범주이고, 규정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번호로 불린다. 벽을 너머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 벽은 수인들 안에 갇힌 야수를 갇는 타자들의 억압과 편견이다. 그들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까. 신영복 교수는 사유를 확장한다.
"심동의 빙한, 온기 한 점 없는 냉방에서 우리를 덮어준 것은 동료들의 체온이었습니다. 추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체온을 모으는 동안 우리는 냉방이 가르치는 '벗'의 의미를, 겨울이 가르치는 '이웃의 체온'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입니다."(91쪽)
감옥.
한계지워진 지정학적 장소. 그곳에서 한계지울 수 없는 타자와의 교감을 체득한다. 절제된 교감. 바로 그것이다. 넘을 수 없기에 욕망할 수 없기에 절대 절제만이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절제된 독서
'외풍이 센 방에는 새벽이 읽찍 옵니다 새벽 창 밑에 앉아 고인의 지성을 읽어봅니다.
이우천하지선사위미족 우상론고지인
以友天下之善士(이우천하지선사)로 :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는 것이
爲未足(위미족)하여 : 만족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又尙論古之人(우상론고지인)하나니 : 또 옛 사람을 숭상하여 논한다.
맹자의 일부분이다. 앞선 문장까지 찾아보면 이렇다.
孟子謂萬章曰一鄕之善士(맹자위만장왈일향지선사)라야 : 맹자께서 만장에게 말씀하시기를,
한 고을의 선한 선비일 경우에는
斯友一鄕之善士(사우일향지선사)하고 : 한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고,
一國之善士(일국지선사)라야 : 한 나라의 선한 선비일 경우에는
斯友一國之善士(사우일국지선사)하고 : 한 나라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고,
天下之善士(천하지선사)라야 : 천하의 선한 선비일 경우에는
斯友天下之善士(사우천하지선사)니라 :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고,
以友天下之善士(이우천하지선사)로 :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는 것이
爲未足(위미족)하여 : 만족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又尙論古之人(우상론고지인)하나니 : 또 옛 사람을 숭상하여 논한다.
고을의 선비는 고을의 선비를, 나라의 선비는 나라의 선비를, 천하의 선비는 천하의 선비를 사귄다. 천하의 선비, 현존하는 최고의 선비(학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옛 선비(학자)를 사귀라는 말이다. 신영복 교수는 이 말을 받아 성차한다. "천하의 선비로서 부족하여 고인을 읽는다는 <맹자>의 일절이 상기됩니다."(147쪽) 타자는 나의 고향이다. 일절 자신을 보아야 한다. 스스로 가두는 정식적 감옥을 발견할 때 진정한 자유를 말할 수 있다.
순자의 권학편의 일부다.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 군자의 학문하는 것을 보면
入乎耳(입호이) : 옛 성현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면
箸乎心(저호심) : 이것을 마음에 새겨
布乎四體(포호사체) : 온몸에 퍼지게 되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形乎動靜(형호동정) : 그리하여 일거일동이
端而言(단이언) : 모두다
蝡而動(윤이동) : 그대로
一可以爲法則(일가이위법칙) : 법칙이 되는 것이다.
군자의 학문.
예 성현의 말씀을 귀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 몸으로 퍼쳐 행동으로 나타낸다. 결국 삶의 법칙이 된다. 배움과 행함이 다르지 않다. 스스로 감옥에 가두지 않으면, 타인이 가둘 것이다. 절제는 사유의 불가피함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배우자.
'Book >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읽은 도서 목록 (0) | 2013.12.01 |
---|---|
독서일기 2013년 11월 21일 C. S. Lewis의 [순례자의 귀향] (0) | 2013.11.21 |
독서일기-새벽에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는다. (0) | 2013.11.13 |
독서일기-C. S. Lewis <네 가지 사랑> (0) | 2013.11.09 |
목회자들의 성경 읽기 (0) | 2013.1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