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기] 글을 쉽게 쓰는 법

샤마임 2018. 11. 24.
반응형

[독서일기] 글을 쉽게 쓰는 법


진즉에 알았지만 결코 인정하기 싫었던, 아니 하지 않았던 것을 하나 실토한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최근에 이름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기발함과 집요함, 천재적 표현에 기겁하고 말았다. 천둥 치듯 '넌 아냐'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야 그것을 알다니 난 정말 바보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난 보다. 그러니 나만의 글을 쓰기로. 천재들은 천재들의 글을 쓰고 범인들은 범인들의 삶을 누리고, 나 같은 둔재는 바보처럼 글을 쓰기로 했다.


"적막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것은 독사처럼 나의 영혼을 칭칭 감고 있었다." 

-루쉰


보라. 루쉰의 글을. 얼마나 평이하고 단조로운가. 그러나 그렇게 쉬운 글은 나는 절대 쓸 수 없다. '적막감'이 어떻게 '독사처럼'과 연결될까? 천재 작가만의 서술법이다. 한때 글을 읽다 좋은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따라 적은 적이 있다. 소위 '필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옮겨 쓴 글을 치우고 나만의 글을 적으니 형편없이 밋밋하고 진부한 글이 나왔다. 미칠 것 같다. 왜 글이 써지지 않을까?


"이 지독히도 낡은 습관이란." 

-수전 손택 <사진에 대하여>


그렇다. 난 나도 모르는 낡은 습관에 얽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다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함에 포로가 된다. 그래서 아내의 글을 볼 때마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글쓰기에 경이를 느낀다. 문장과 문장, 단어와 구절은 상상을 초월하여 천재적 작가성을 드러낸다. 


오늘은 아내의 시험날이다. 그동안 한우리독서지도사를 공부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틈틈이 공부했지만 버거운 모양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시험장을 나온 아내는 씩씩하다 못해 생기발랄하다. 반백살이 다 된 아내는 십 대의 소녀처럼 생기발랄함으로 충만하다. 


태어나 처음 서면 굴다리를 걸었다. 가끔 서면 골목길을 걷거나 지나칠 때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지나보지 않은 터널이다. 서면에는 굴다리가 두 개다. 한 곳은 인쇄골목으로 알려진 곳으로 아랫부분이다. 또 한 곳은 차량이 드나드는 위쪽이다. 철도가 지나면서 길이 막혀 굴다리기 생긴 것이다.



부산에서 가장 번화가 중의 한 곳이라는 서면의 이면. 한 골목만 나가면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장식하지만 이곳은 아직도 70년대 분위기다. 건물을 보니 십 년 이상 버틸 것 같지 않다. 이제 이곳도 현재의 건물들이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리라. 


언제 다시 오겠는가. 아내는 굴다리 아래에 섰다. 아니의 그것은 나의 요청이었다. 사진은 불멸한다. 건물은 사라진다 해도 사진은 담긴 그대로 미래의 누군가에 의해 보여 지리라. 그런 의미에서 사진 찍기는 종교적 사건이 된다.  



굴다리를 지나 낯선 풍경에 들어서니 고양이 한 마리가 손을 들어 환영한다. 아직 밤이 오지 않아서인지 가게 문은 굳게 닫혀있다. 아내는 '마네키네코(招き猫)'라 한다. 행운을 불러온다는 그 고양이다. 그 세계를 잘 모르는 나에게 아내는 차분히 설명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어떤 장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색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하얀 고양이다. 하얀색은 순서성, 적극성을 나타낸다. 


고양이를 요물로 생각하는 한국과 행운을 불러오는 존재로 보는 일본. 한 고양이인데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 하기야 고양이가 언제부터 요물이 되었던가. 한국 고대 전설에서 고양이는 종종 주인의 사랑을 받고 주인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고양이는 좋아하는 아내는 고양이만 보면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서점에 갈 때마다 고양이 서적을 사곤 했으니 벌써 열 권은 족히 넘는다. 



책은 마음의 고향이다. 잠시 팔던 한눈을 다시 알라딘으로 향하는 길 위에 놓았다. 서점에 들어서면 마음은 한없이 평안해지고, 즐거움은 배가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운전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언제나 손을 놓지 않지만, 서점에서 들어서면 약속이나 한 듯 둘은 각자의 길을 간다. 


각자의 길. 그렇다. 책은 전혀 상관없는 이들을 '책'이란 주제로 연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론 '각자' 살게 한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아내, 역사와 신화에 흠뻑 빠진 나. 그렇게 우린 서로의 자리를 찾아 길을 떠났다. 


중고서적이 마음 놓고 책을 골랐다. 루쉰, 김남희, 게이브리얼 와이너, 스에나가 타미오 등등의 작가들. 익숙하거나 낯설거나 그들은 저자들이다. 성경의 상징을 연구하면서 고대 신화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어 신화 관련 책들을 모으고 있다. 신화는 다시 기호학과 상징의 세계로 인도한다. 아내는 새로운 책을 구상한다며 김남희가 쓴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을 선택했다. 오늘도 고양이 책이 세 권이나 보인다. 일반 서점에서 정가로 샀다면 절대 반대했을 책들이지만 착한 가격 때문에 눈감아 주었다. 헉, 눈감아 주다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감히 아내의 선택에 토를 단단 말인가?


그렇게 사서 한곳에 모으니 칠만 원 가까이했지만 중고 할인에, 포인트까지 결제하니 고작 4만 원이다. 역시 알라딘은 진리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전에 보고 찍어둔 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음에서 멀어진 책이다. 아내는 어떻게 발견했는지 꼭 읽어 보고 싶다면 바구니에 담았다. <행복한 길 고양이>는 종이우산이란 저자?가 쓴 것이다. 필명인 것 같아 검색해 들어가니 벌써 고양이 책만 세 권째다. 아마도 본명으로 쓴 책도 있으리라. 짐작일 뿐이지만. 그의 기발함과 언어유희에 기가 막힐 뿐이다. 참으로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왜 '글을 쉽게 쓰는 법'이라고 제목을 삼았냐고? 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오늘의 사소한 일상을 이렇게 길게 적은 글을 본적이 있는가? 글은 이렇게 쉽게 쓰는 것이다. 글에 무게감이 없어 천만다행이다. 오타는 덤이니 편하게 읽어 주시길.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