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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선물, 바울의 새 관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샤마임 201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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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선물
국내도서
저자 : 존 M. G. 바클레이(John M. G. Barclay) / 송일역
출판 : 새물결플러스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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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을 읽는다. 이번 달 안에 성경 일독을 목표로 지난 단부터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천주교 성경으로 토빗과 유딧을 읽었다. 아직 읽을 외경과 위경이 산을 이루지만 틈 나는 대로 읽고 있다. 처음 읽는 토빗과 유딧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토빗의 경우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암부로시우스가 토빗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책 한 권을 펴낼 정도로 토빗 이야기를 풀고, 해설하고, 설교한 것이 <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다. 

 

토빗은 앗수르에 의해 니느웨에 포로로 잡혀간 납달리 지파 '토빗'의 이야기다.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취급하지만 가톨릭은 느헤미야 바로 뒷편에 넣어 정경으로 인정한다. 유대적 신비주의가 스며있는 토빗은 구제와 선행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7번 결혼을 했지만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에 의해 신랑이 첫날밤에 모두 죽어 과부가 된 사랑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후에 사라는 라파엘의 도움을 받은 토빗의 아들 토비야에 의해 악귀를 쫓아내고 회복된다. 사라와 토비야는 결국 결혼하게 된다.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토빗에는 니느웨에서의 포로 생활과 그들의 애환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성전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속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제를 속죄의 한 방편으로 보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비록 이방인들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고 강조한다. 흥미롭게도 14:3에 나훔에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한 것을 언급하며 토빗은 아들 토비야에게 니느웨를 떠나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중간기 유대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지서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유딧기'는 '토빗'보다 더 흥미로웠다. 남편을 잃은 유딧(Ιουδιθ)이란 유다 여인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침공한 느브갓네살 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를 죽여 앗수르 군대가 패망하여 도망가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지키신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 같다. 유다를 공격 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말한 암몬인 아키오르는 종결부에서 모든 상황을 듣고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집안에 합류'한다. 아키오르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따라 살며 할례를 받는다면 얼마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철두철미하게 이방인을 추방했던 느헤미야의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에서 유대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방인들이 할례와 토라를 통해 유대인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혜문학에 속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에스더서와 사사기에 등장하는 겐 사람 야엘과 섞여 있는 듯하다. 

 

 

어제저녁 아내의 선물이 도착했다. 작년부터 나온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책이다. 천 쪽 가까이 되는 분량을 몇 달만에 번역하고 책으로 엮어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린 만큼 시간은 더디 흘러갔다. 며칠 전 드디어 알라딘 신간에 책이 보였고, 곧바로 블로그에 신간 소개를 올렸다. 아내는 나의 글을 보고 '사줄까요?' 운을 띄운다. 마다할 이유 없으니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오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아직 사야 할 책이 한 두 권이 아닌데 말이다. 중간기 문헌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책도 몇 권을 더 사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괜찮으니 사준다 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아내의 선물이다. 

 

저자인 존 바클레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현재 더럼 대학교 신약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그동안 바울신학계를 요동치게 했던 '바울에 대한 새 관점'에 종지부를 찍을만한 역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관점 주의자들이 어거스틴을 시작으로 이어져온 전통적 바울에 대한 칭의 개념을 뒤집고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동안 전통 주의자들이 믿어온 율법이 구속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단지 유대인들의 정체서를 유지하기 위한 표지, 또는 표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파이퍼 등을 위시로 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반대 입장을 내놓았지만 학문적 근거가 빈약해 그들과 논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주장이 확고하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바울이 말한 율법의 문제를 전통적 관점이나 새 관점과 다르게 '선물'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즉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체제 전복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은혜의 이러한 실천이 단순히 교회의 민족적 통일성이나 아브라함 약속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은혜에 근거한다는 점을 추척한다. '묵시론적 바울'처럼 나는 인간의 상속 조건이나 가치에 상관없이 주어진 그리스도의 선물이 야기한 체제 전복적인 영향력을 강조한다."(11쪽,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의 기본적인 전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관점 자체가 체제 전복적이라는 것이다. 즉  누군가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무조건적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선물이 갖는 역사적 의미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스도 로마 세계에서의 선물과 교회의 의미, 현대적 사회가 갖는 선물의 의미를 탐색한다. 3장에서는 역사적 전통 속에서 바울의 은혜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찾아 나선다. 어거스틴(3,2), 루터(3,3), 칼뱅(3,4), 바르트에서 마틴까지(3,5), 그리고 샌더스와 그 이후의 논쟁까지(3,6-7) 끌고 간다. 

 

만약 여기서 이 책이 마무리되었다면 현재의 논쟁을 좀더 상세하게 풀어놓은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간다. Ⅱ부에서 제2성전 시기에서 '하나님의 선물'이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살펴본다. 이러한 연구를 불가피하게 시도해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선물은 하나의 단일한 현상도 아니고, 고정된 범주를 갖고 있지도 않다. 서로 다른 시대의 다양한 문화 안에서 수많은 대상, 행위, 관계들이 선물로 간주되었다.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선물의 정의는 많은 문환 속에서 변화했다. 바울과 동시대 사람들이 선물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자비나 인간의 자선에 관해 말했다면, 오늘날 선물 관련 용어들을 재현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들의 함의와 함의가 아닌 것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39쪽)

 

그렇다. 바울 당시의 유대주의 사회가 담지했던 '하나님의 선물'이 갖는 의미를 파악해야 바울 신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는 제2성전기 문헌을 주의하여 본 새 관점 주의자들과 맥을 같이한다. 저자는 인류학적 조사에서 선물은 다양한 정황 속에서도 '선물-답례'라는 보편적 의미가 있음에 주목한다. 제2성전기 문헌과 바울 서신을 비교 연구해본 결과 당시 문헌 속에서도 은혜는 적지 않게 나타난다. 그러나 현저히 차이가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일반 유대인이 아니라 바울은 이방인을 선교해야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557쪽) 

 

 

 

 

바클레이는 마지막으로 바울의 문헌들을 살핀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바울의 교회 교리는 그의 은혜 구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은혜 구원론은 또한 인간의 곤경을 우주적.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그의 견해도 형성시키며, 원래의 정황을 훨씬 뛰어넘는 신학적 중요성과 사회적 함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951쪽)

 

저자는  '비상응적 은혜'가 가진 폭발적 힘으로 인해 기존의 가치와 기준을 허물고 혁신적 공동체를 세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결론에 의해 스스로 '새 관점과는 결별'(950쪽)한다. 비 상응적(incongruity)이란 말은 자격이 없음에도 거저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선물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비상응성 선물('은혜'는 동일한 카리스이다)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 말미암은 것들의 전부'이다.  로마서 1:1-5:11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은 그리스도 인들이 행하는 행위는 구원을 위한 수고가 노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신적 능력의 행위'이며, '악한 인류에게 주어진 비상응적 선물'(790쪽)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정확하게 전통적 구원관과 일치한다. 즉 믿음으로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갈라디아서) 성령을 받고, 그 성령으로 선한 행위 또는 성령의 법(노모스)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선물은 받기에 합당한 자로 간주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자에게 가장 깊은 애정과 가장 높은 헌신으로 주어지는 가장 값비싼 선물'(798쪽)이 확실하다. 

 

비상응성의 은혜, 즉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진 선물(은혜)야 말로 기존이 가치와 기준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단 한 명의 사람도 값을 주고 선물을 살 사람도 없고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그 선물이 너무 크기 때문에, 너무가 귀하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도 살 수 없다. 선물은 어쩔 수 없니 공짜로 주어져야만 했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피고 난 후 문득 앞선 중간기 문헌들과 비교해 보았다. 비록 그 문헌들이 유익하고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선물(은혜)'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중간기 문헌들은 대체로 권선징악이나 선의 대가로 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바울의 은혜는 비상응성, 즉 흠 있고 죄 많음에도 불구하고 값 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것도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영생과 생명과 천국의 소망을. 

 

 

그뿐 만이 아니다. 나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상응성의 은혜가 과하도록 많다. 매일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청소와 빨래는 불평 없이 감당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이다. 무엇인가 해야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은혜(선물)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함의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희생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가 자식들에게 베푼 은혜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성에 부어주신 특별한 은혜이다.

 

이 책을 선물한 아내게에게 감사한다. 또한 나에게 '아내'라는 최고의 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나저나 난 언제 착한 남편이 될까? 

 

 

   
저자/역자 : 존 M. G. 바클레이/송일  | 출판사 : 새물결플러스
판매가 : 55,000원49,500원 (10.0%, 5,500↓)
신약학계는 오랜 기간 다음의 두 주제, 1) 바울의 은혜 신학과 2) 바울의 은혜 신학이 유대 전통과 맺고 있는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오고 있다. 바클레이의 『바울과 선물』은 바로 이러한 정황 가운데 등장했다. 바클레이는 이 책에서 “선물” 개념(특히 하나님의 선물)에 집중하면서 은혜와 선물, 이 두 개념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근거로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 바울의 은혜 개념을 조명한다. 이는 바울의 은혜 신학과 관련하여 옛 관점(old perspective)과 새 관점(new perspective) 양 진영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흥미로운 대안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바클레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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