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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으로 삶을 읽다

샤마임 2017.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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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으로 삶을 읽다

2017년 3월 1일 재의 수요일에 씀



삼일절이다. 아니 삼 월이다. 삼일절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운동을 했던 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들이 태극기를 걸지 않는다. 참 마음 아픈 일이다. 속히 가까 뉴스에 휘둘리며 서로를 삿대질하는 나라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화하고 서로를 세워가는 나라 되기를 소망해 본다. 삼일절의 핵심은 독립, 즉 자유가 아닌가. 독립을 외치지 않고 힘의 논리에 함몰되고 그릇된 생각으로 타자를 배제하려는 왜곡된 역사의식을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오늘 새물결플러스에서 세 권의 책이 왔다. 임희국 엮음의 <여교역자로 살다>와 폴 모리스의 <신약성서와 유대인 선교>, 정요석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삶을 읽다 상>이다. 이것으로 새물결플러스의 '여교역자' 시리즈는 완성된 걸까? 2015년 8월에 <여교역자 입을 열다>로 입을 열었으니 이제 '살다'로 마무리 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책을 기획 중일까? 출판사에 직접 물어보고 싶어진다. 


 

<여교역자 입을 열다>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 미리 몇 곳을 들추어 읽어 봤는데 내용이 의외로 신선하고 힘이 있다. 필자는 착하게 살자. 담임목사에게 순종해라. 교인들을 사랑해라.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을 망치로 깨부수는 느낌이다. 여 목사, 페미니즘, 소외와 도전. 등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아프게 그려져있다. 사뭇 기대가 되는 책이다.







 

폴 모리스의 <신약성서와 유대인 선교>는 유대인 선교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신약이 말하는 유대인 이야기다. 원제는 분명하게 'Jewish Themes in the New Testament: Am Yisrael'라고 적혀있다. 저자는 신약이 말하는 유대인들을 추적해 들어간다. 로마서 11:1-10에서 바울이 유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말씀을 통해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폴 모리스의 주제는 약간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고, 영적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무력화 시키는 두려움도 살포시 넣어 준다. 그러나 굳이 반감까지는 아니더라고 바울의 서신을 정경으로 받는다면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요석 목사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삶을 읽다 상>은 일단 제목이 좋다. 현재 정요석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해설집을 새물결플러스에서 이미 상.하권을 출간했다. 이번에 다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해설집 상권을 출간했다. 앞으로 하권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안다. 해설집을 읽어보면 깜짝 놀랬다.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고를 잘 알지 못한다. 단편적인 내용만을 두고 왈가불가하지만,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상상외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잘 알진 못하지만 아마도 정요석 목사는 책을 쓰기 위해 몇 번의 몸살을 비롯해 병원 신세를 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목회사역도 병행하면서 책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요석 목사의 집요한 책쓰기에 박수를 보낸다.


웨민 소요리 문답에서도 '삶을 읽다'를 붙였다. 이번에도 역시 '삶을 읽다.'를 담았다. 성경에서 교리가 나오지만, 교리는 절대 성경이 아니다. 교리는 서사가 누락된 일종의 엑기스와 같다. 딱 필요한 것만 이란 효율성으로 인해 성경이 의도했던 많은 삶의 맥락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그런 측면에서 교리가 다시 삶을 비추어야 하는 것은 지당하다. 교리는 관념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삶을 위해 교리가 만들어졌으니 다시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삶에서 재해석되지 않는 교리는 관념의 오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에 비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일상의 용어를 사용해 보통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 고단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하며 참된 위안으로 안내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교리문답입니다."(16쪽)


결국 삶이다. 성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리는 교리가 아니다. 말씀은 삶을 향하여 한 것이지 하늘에 외친 공허한 공기의 진동이 아니다. 비가 내려 식물을 자라게 하듯,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인간의 삶에 응한다. 말씀은 삶, 즉 역사에 대한 선언이다. 그 외에 무엇 때문에 말씀이 필요하단 말인가? 교리를 다시 삶으로 반환 시키려고 발버둥 치는 정요석 목사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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