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독서일기]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2017년 10월 30일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거두절미하고 딱 한 종류를 택하라면 역시 '고전'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고전 읽다 고전하면 책 맛을 잃고 만다. 고전은 범위를 정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어거스틴의 <고백록>의 경우는 쉬운 책이다. 내용이 쉽다기보다는 그냥 읽어도 좋은 책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론>이나 <신국론>의 경우는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니 읽어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책이다. 만약 책을 잘 읽지 않는 어떤 사람이 '우선순위 독서'라 하여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다면 그는 영원히 책을 읽다 자신을 책하며 살 것이다. 말이 고전이지 독서 고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고전의 바다에 빠져 순교하기 십상이다.
고전은 좋은 책이다. 그러나 고전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필자의 의견으로 몇 가지 점에서 좋은 책을 선정할 수 있다. 아래의 책을 통해 좋은 책의 기준을 제시해 보자.
1. 기본이 탄탄한 책
기본이란 기초이며, 앞으로 읽어 나갈 또는 공부할 영역의 전반적인 방향이나 기초적인 지식을 제시하는 책이다. 박우택의 <Rofo500 성경해설-역사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성경의 본문에 천착하면서도 보수적 성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 정서와도 맞아떨어지고 무모하게 어지러운 비평학의 정글 속에서 기준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책을 조금만 넓게 읽게 되면 기본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금세 깨닫는다. 기본서는 내용상의 기초나 개요만을 말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의미도 포함합니다. 책이란 어떤 기준이 필요한데 그 책이 바로 기본서다. 기본서를 읽지 않고 곧바로 난해하고 복잡한 책을 읽게 되면 기준이 모호해져 길을 잃는다. 내가 동으로 가는지, 서로 가는지 알고 읽어 나가야 한다.
필자의 경우, 신학 책을 읽어 나갈 때 반드시 얇은 기초 조직신학 책과 교회사(교리사)를 읽기를 권장한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책도 교회사를 통한 신학 서적 추천 도서들이다. 성경 신학도 마찬가지다. 곧바로 톰 라이트의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를 읽지 말고,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이나, 정성욱의 <스피드 조직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런 책들은 조직 신학이 무엇인지, 신학이 어떤 흐름을 따르게 되는지 등을 알려주는 책들이다. 좀 더 나아가면 벌코프 조직신학이나, 웨인 그루뎀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서는 엷은 것에서 깊은 것으로, 기초에서 종합적인 것으로 넘어가야 된다. 그러니 모든 독서의 시작은 기본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기본서에 정통하면 앞으로 읽게 되는 책들이 방향과 성향들을 파악할 수 있다. 기본서를 보수적인 책으로 잡았다면 약간 진보적인 책을 읽어도 되고, 극단적 성향의 책들을 읽어도 비평할 수 있는 안목과 기준을 제시해 준다.
2. 깊이 있는 책
기본서에 종속되면 안 된다. 독서는 그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다음 단계는 깊은 책이다. 깊다는 표현이 난해하긴 하지만 이런 책들을 두고 말한다. 정성욱의 <스피드 조직신학>에서 신론에 대해 배웠다면 신론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이 담긴 책들을 한 주제로 읽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존 프레임의 <신론>도 있고,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주의 신론>도 있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도 신론에 포함 시킬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개요가 아닌 한 주제를 깊이 다룬 책들을 읽어 주어야 한다.
베일리의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의 경우를 깊이 있는 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선택할 때 전문가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책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독서량이 많아지면 당연히 안목이 깊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 '저자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케네스 E. 베일리는 이미 정평이 난 학자이다. 그는 조직신학 분야가 아니라 성경신학자이다. 특히 그는 아랍어와 아랍 문화에 능통한 학자이기에 성경 신학에 문화적 배경까지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한 분야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의 책은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3. 독특한 관점의 책
독서의 깊이가 더해진다면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쓴 책이다. 예를 들면 헤르만 셀더하위스의 <루터 루터를 말하다>(세움북스)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루터 전문가의 손에서 빚어진 책이기에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신학자 루터가 아닌 '인간 루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관점은 기존의 생각들에 대해 도전하고 의심하도록 촉구한다. 의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이면 생각을 틀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책들이 한 가지의 관점에서 폭을 넓혀 간다. 그러나 가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존의 주장들에 대해 도전한다면 읽는 독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독특한 관점은 기존의 관점에 딴죽을 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사유의 폭을 넓혀 주는 역할도 한다. 예전에 자끄 엘륄의 <인간 예수>를 읽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더 많은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초대교회 안에서 예수라는 한 인물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정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를 신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초대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신학적 논쟁, 특히 삼위일체 논쟁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말이다. 편협적인 시각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독특한 관점의 책들은 읽는 재미를 더할 뿐 아니라 생각의 폭도 넓혀 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4. 세상에 없는 책
세상에 없는 책이란 없다. 왜냐하면 책이란 있기 때문에 책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표현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있으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희소한 책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새물결 출판사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도신경 강해설교>와 같은 책들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문헌총서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다음 책이 출간되지 않고 있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쨌든 이런 책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다. 분도출판사의 교부문헌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교회사나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어느 출판사도 시도하지 않는 책들을 번역해 내고 있다. 이런 책들은 기존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해 준다.
5. 현시대를 진단하는 책
좋은 책에 넣고 싶은 또 한 권이 있다. 바로 현시대를 진단하는 책들이다. 비록 논쟁 거리도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현시대를 진단하는 책들은 꼭 읽어야 한다. 포이에마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이 그런 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심각할 정도로 교회 밖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나안은 교회 '안나가'를 바꾼 말이다. 교회는 나가지 않으나 스스로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다른 교회 홈페이지 동영상 설교를 드리기도 한다. 아니면 교인들 몇이 목사 없이 예배드리기도 한다.
이런 책들은 지금 여기의 우리는 무엇이며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책들이다. 시간이 지나 진단이 엇나기도 하고 오류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상황을 바로 보게 해주는 책들이다. 그러나 주의를 요하는 책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출간된 김요한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도 사실은 기도 책이 아니라 현시대를 진단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기준도 제시할 수 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좋은 책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한 것 같다. 신앙에 도움이 되는 <예수님처럼>과 같은 책도 좋은 책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책이란 책을 통해 나 자신이 도움을 얻고, 바른 신앙을 갖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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