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책은 마음의 고향(故鄕)이다
[독서칼럼] 책은 마음의 고향(故鄕)이다
‘책은 마음의 고향이다.’ 이 낯선 명제를 마음에서 끄집어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의 독서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빈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 형이 가져온 펄벅의 <대지>를 한 번 읽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서평가로 활동하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릴 적, 그러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한 유치원 시절이나 학창시절 많은 책을 읽었다는 분들입니다. 필자의 친구인 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당시에 유행했던 문고집을 즐겨 읽었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엔 ㅅ출판사 등에서 출간한 전집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3-40년 전에 우리나라는 전집이 유행했습니다. 서점이 많지 않았던 시절, 책을 팔러 다리는 외판원이 따로 있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가던 시절, 책은 그야말로 교양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이자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샀습니다.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결코 싸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할부로 구입했기 때문에 외판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수금하기 위해 판매한 집을 찾았고, 독서 지도를 겸했습니다. 사람들은 책장을 구입하고 그곳에 구입한 화려한 양장으로 된 책을 진열했습니다. 책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자신의 교양과 부를 자랑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놀이가 거의 없었던 시절 ㄱ는 장식장에 진열된 책을 하나하나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ㄱ가 읽었던 책들이 바로 그런 책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소설이었는데 읽기 쉬운 책도 있었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에도 읽기 힘든 책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순신> <을지문덕> <간디> <처칠> 등의 위인전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와 <허클베리핀의 모험> <잔다르크> <장발장> 등의 소설 등은 재미도 있고,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한비자> <존재와 무> 등의 철학서적 등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ㄱ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독서는 졸업했지만 유년 시절의 책 읽기는 평생을 갔습니다. ㄱ는 종종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베르그송의 <시간과 자유의지>은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말합니다.
책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반성과 성찰, 바름과 옳음을 배웁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혼의 만남이며, 새로운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책이 가지는 속성 때문입니다. 책은 한 사람의 영혼의 지도와 같습니다. 논문이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평론이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것을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남미영은 그의 책 <사랑의 역사>에서 ‘문학이란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삶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즉 책은 직접 체험할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관점을 가집니다. 그러나 책은 저자라는 한 사람이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합니다. 많은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카뮈의 눈으로 삶을 해석하고, 헤세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는 한 소녀인 도로시가 낯선 오즈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도로시는 여행을 가는 동안 뇌가 없는 허수아비와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 많은 사자를 만납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 결국 나쁜 마녀를 물리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얻은 것은 없습니다. 허수아비는 원래 지혜로웠고, 양철나무꾼은 원래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사자는 원래 용감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내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용기와 믿음이 생깁니다. 독서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독서는 남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읽게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 타인의 삶과 경험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책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고, 독서는 거울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중국 남송의 주희는 독서에 삼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구도(口到)이고, 또 하나는 안도(眼到)이며, 마지막 하나는 심도(心到)입니다. 구도는 책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말하고, 안도는 책을 보며 읽는 것을 뜻하며, 심도는 마음으로 읽는 것을 말하는데 정신을 집중하여 읽는 것을 말합니다. 독서삼도(讀書三到)의 목적은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다해 읽어야 함을 말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과 같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책을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책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봅니다. 책에서 뭔가를 얻고, 얻을 것이 없으면 가치 없는 책이라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책을 깊이 읽는 사람들은 책을 자신을 보는 거울로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필요하고, 이 말씀은 누가 들으면 좋겠고, 이 말씀은 누구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창조도, 타락도, 고난도, 심판과 용서도, 십자가 사건도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독서는 결국 자신을 보는 것이며, 자신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던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에서 삶과 인생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시간 동안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실패와 어리석음을 통해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굳건한 마음과 의지로 삶을 개척한 주인공을 통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책은 인생의 길이 되고, 거울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고 비추어 줍니다. 모호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지혜를 얻고, 용기를 줍니다. 책은 어머니처럼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래서 책은 마음의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유년시절의 추억 속에 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일 년에 수백 권씩 책을 읽고 서평 하는 서평가로 활동하지만 책이 없던 유년시절은 잃어버린 시절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 중의 하나는 독서입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생존을 위한 분주함으로 책 읽기는 잊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 살 수 없듯, 책을 읽지 않고 진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책은 언제나 우리는 기다리는 엄마이며, 마음의 고향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삶에 지쳐 힘이 없다면 다시 책을 집어야 합니다. 책은 고향처럼 따스하게 우리를 맞이할 것이며 쉼을 줄 것입니다.
'Book > [서평과 기고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의 성령론 / 로이드 R. 니브 / 차준희.한사무엘 옮김 / 새물결플러스 (0) | 2017.09.24 |
---|---|
[기독교영문고전읽기] 웨이크필드의 목사 (0) | 2017.09.21 |
[서평 기고] 십자가와 보좌 사이 : 요한계시록 (0) | 2017.09.16 |
[기독교영문고전 읽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 : 시대를 바꾼 성경 읽기 (0) | 2017.09.04 |
[기독교영문고전읽기] 걸리버 여행기 : 인간이 신이 된 시대에 인간을 고발하다. (0) | 2017.09.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