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본원사 목포별원(목포중앙교회)
동본원사 목포별원(목포중앙교회)
목포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다는 것을 너머 항구의 특생과 근대 문화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 이번에 알아본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침탈의 선봉에 섰던 동본원사 목포별원 건물이다. 간략한 역사는 아래와 같다.
일제의 조선침탈에서 선봉에 섰던 불교종파로 동본원사와 서본원사가 있다. 당초 두 사원은 ‘본원사’라는 하나의 절이었는데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사원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둘로 나눈 것이다. 동본원사는 부산에 별원을 설치한 이래 각 개항장에 별원을 설치했는데, 인천에는 1884년, 목포에는 1898년에 이를 세웠다.
동본원사는 포교 외에 개항장에서 생활하던 일본인 자녀를 교육하는 소학교와 복지시설도 운영했다.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목포지역 최초의 일본불교사원으로 현존하는 석조건물은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1957년 7월 1일 목포중앙교회에서 이 건물을 인수하여 교회로 사용함에 따라 일본불교사원의 당파풍 지붕에 십자가가 걸리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때 철거위기를 맞기도 했던 이 사원은 현재 리모델링을 거쳐 목포시가 운영하는 ‘오거리문화센터’로 쓰이고 있다.
최근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보수하여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전용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부족한 지역문화예술공간을 확대한다는 측면과 낡고 용도가 폐기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현대생활로 끌어들인다는 관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그 건축물의 용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어느 지자체나 으레 근대건축물은 전시관이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가 있다. 건축물과 지역특성에 맞는 용도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 질곡의 역사 속에 탄생한 근대건축물을 우리의 관점에서 재창조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동본원사 목포 별원의 경우 내부를 그대로 두고 전시공간으로 활용해도 좋을 일인데, 전시만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다보니, 내부가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동본원사 목포별원(목포중앙교회)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건물보다 특이하고 이색적인 느낌이다. 1930년 어느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본원사는 교토에 본사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부산에 최초로 지어졌다. 초기에 교토 본사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되다가 신도수가 늘면서 자립하기에 이른다. 목포별원은 포교자를 먼저 보내고 후에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오거리 문화센터로 운영중이다.
동본원사 목포별원(목포중앙교회)
히가시 혼간지(동본원사 東本願寺)는 일본 정통 불교인 ‘혼간지’(本願寺)에 뿌리는 두고 있다. 일본을 재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2년 혼간지를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와 ‘니시혼간지’(西本願寺) 2개로 분리시킨다.
정토진종(浄土真宗)은 일본 불교 종파로 가라쿠라 시대 초기에 호넨(法然: 1153~1212)의 제자인 신란(親鸞: 1173~1262)이 창설한 종파이다. 신란 사후에 신란의 제자들은 왕성한 포교할동을 통하여 교단으로 성장시킨다.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한국의 불교처럼 출가하지 않는다. 결혼과 육신을 거부하지 않으며 대부분 승려들을 가정을 꾸린다. 이런 탓에 일본 절들은 산 속에 있지 않고 대부분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한 곳, 또는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안에 승려들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둔다. 승려는 대를 이어 물려주는 세습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그려낸 일본 드라마가 있다. 2015년 10월 12일부터 그해 12월 14일까지 후지TV에서 방영된 <나를 사랑한 스님>은 이시하라 사토미와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멜로 드라마이다.
한국전쟁 후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던 불교계가 절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마침 죽동에 있던 목포중앙교회가 새 예배처를 찾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매입한 것이다. 얼마 전 교회는 건물을 시청에 팔고 옥암동으로 이전했다. ... 용마루 상단 부분은 일본 황실 문양인 국화꽃무늬 막새기와를 올렸고, 지붕을 덮은 구리기와는 일본에서 만들어 가져온 것이다. 경사가 특히 심한 곳은 구리선으로 묶어 놓았다. .. 건물 중앙 현관 지붕은 카라하우 양식이다. 카라하우는 지붕 처마 가운데 부분을 둥글게 솟구쳐 올렸다가 슬며시 내려 앉히는 장식으로 가마쿠라 막부시대(13-14세기)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다.
[구본선,장석철 <한국교회 처음예배당>]에서 인용하여 정리한 것임
1932년 목포는 전국 6대 도시 중 하나였다.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급 건물이라 보존이 필요하지만 뒷맛이 씁쓰레 하다."[구본선,장석철 <한국교회 처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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