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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6절 금식 후 광야의 시험

샤마임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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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6절 금식 후 광야의 시험

1. 본문 읽기

  • 마태복음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마태복음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마태복음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태복음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 마태복음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태복음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 마태복음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마태복음 4: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 마태복음 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마태복음 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 마태복음 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 마태복음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2. 강해

 

"그때에"

 

참으로 기이하고 놀랍습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다른 곳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때는 다릅니다. 우리가 보기에 완벽하고 완전한 때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통해 더 큰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사”

 

주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인간이 갖는 나약함과 무력을 극복할 수없다면 사역은 시작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었습니다. 삶이 불가능한 곳, 오직 자신과 만이 있는 곳 그곳에서 자신을 명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공생애를 하기 전 광야로 나아갑니다. 그것도 성령에 이끌리어 말입니다. 신학자들은 광야의 시험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받은 광야에서 받은 시험과 비유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성공합니다. 문제는 굳이 가셔야만 했는가를 질문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며 실패한 역사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의미해 보이는 고난을 통해 누군가를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며, 속성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린 종종 의도치 않은 곳으로 끌려갑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의도하지 못한 상황을 만납니다.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나? 묻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답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답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사십일은 완전한 시간이요 모든 시간이 채워진 시간입니다. 이 말은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는 적절합니다. 사단은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예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시간에 찾아옵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시간에 찾아와 유혹합니다. 시험은 항상 혼자 오지 않고 친구를 데리고 옵니다. 돈이 떨어지니 쌀 항아리가 덩달아 바닥을 드러냅니다. 사단은 인간의 숨겨진 약점을 절묘하게 찾아냅니다.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단의 첫 시험은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4절)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고난의 시간을 잘 보내고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갑자기 무너지기도 합니다. 시험은 언제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싶을 시간에 가끔씩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섰을 때 조심하라 경계합니다.

 

“기록되었으되”

 

광야의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사단을 이기는 무기는 바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는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먼저 사단을 이기는 무기는 누군가의 주장처럼 ‘레마’가 아니라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록된 말씀이 무능하거나 힘이 없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또한 ‘기록된 말씀’ 속에서 말씀은 언제나 현재화되어야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과거의 유물처럼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재해석되어 새롭게 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래된 말씀은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습니다.

 

'기록되었다'는 말은 명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록되어 있기에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기록되었다는 말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하여 살아 역사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갑니다. 한 번 기록된 말씀은 변치 않고 성취될 때까지 계속하여 역사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마귀는 우리를 떡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떡은 소유며, 세상에 속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주의해야 합니다. 떡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떡으로만'입니다. 즉 떡은 중요합니다. 돈도 필요하고 물질도 필요하고 관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신명기 8장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뛰어내리라

 

두 번째 시험은 높은 성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번에도 '만일 네가 하나님이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단 한 번도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시험하고 조롱합니다. 두 번째 시험의 핵심은 인기입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에게 인기는 생명과 같습니다. 인기 없는 연예인은 죽은 목숨입니다. 인기 없는 정치인 역시 힘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 너머에 숨겨진 저의를 하나님에 대한 시험으로 규정하십니다. 사단의 유혹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십니다. 마귀는 시편 91:11-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합니다.

 

  • 시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 시 91: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모한 곳에 던짐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게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만일 내게 경배하면

 

사단의 마지막 시험은 도전이자 유혹이었습니다. 헬라어 원어는 문장의 구조가 바뀌어 있습니다.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Ταῦτά σοι πάντα δώσω, ἐὰν πεσὼν προσκυνήσῃς μοι.

 

순서대로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에게,  것을 너에게 모두 준다. 만약 엎드려 경배하면 나에게

거짓말은 사단은 절대 주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세상은 사단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의 것인 양 거짓말을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거래하려 합니다. 자신을 경배하며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지만 믿지 마십시오. 마귀는 주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것도 아닙니다.

  • 신명기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마귀가 예수를... 데리고”

 

예수님은 놀라울 정도로 수동적입니다. 마치 욥기 서론에 나오는 하나님과 마귀들과의 대화와 별단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대적하며 싸워야 할 원수끼리 예수님은 철저하게 마귀에게 이끌려 다닙니다. 예수님의 무능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성령에 이끌림’의 결과이며,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제한된 허용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사처럼 강하시지만, 때로는 철저한 연약 속에 휩싸여 계십니다. 하나님의 연약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무능하심으로 강하시고, 패하심으로 이기십니다. 마귀에게 이끌리심으로 철저한 무능으로 일관하시지만 점진적으로 승리하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마침내 마귀는 멸망받을 것이고, 완전한 승자로 승리의 월계관을 쓰시고 나아오실 것입니다.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사야의 예언은 오래전 예언했습니다.

  • “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9:1-2)

이사야는 미래의 오늘의 관점에서 예언했습니다. 듣는 이들은 닫힌 미래의 비전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신 후 다시 갈릴리로 물러납니다. 예수님의 물러남과 나사렛을 떠나는 사건은 오래전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보았던 현실이었습니다. 화려한 유다와 예루살렘은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변방에 자리한 갈릴리 지방은 먼저 빛을 소게 됩니다. 역사는 언제나 반전이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오래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납니다.


역사는 임의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강자들의 먹잇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일하시고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예수님의 무능도 사단의 힘에 눌려 있는 듯하지만 약함을 통해 강함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우리는 단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힘이 세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을 단락을 나누어 주해하고 묵상한 글입니다. 각 단락에 대한 묵상으로 장별 순서에 따라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부분의 주해와 묵상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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