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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묵상] 3. 2:1-9 내가 너희를 왜 불렀다고 생각하느냐?

샤마임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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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묵상] 3. 2:1-9 내가 너희를 왜 불렀다고 생각하느냐?

  

가다보면 방향을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했지만 한 참 가다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 잊어버리고 난처해하기도 합니다. 삶 속에서 이런 종종 일어납니다. 그 때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깊이 생각해 해야 합니다. 더 멀리 가는 것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정확하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구원해 주시는 감격이 너무나 커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어 합니다. 교사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이것저것 봉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처음 가졌던 감격은 사라지고 일만 남습니다. 쉼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무턱대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왜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면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미 저주가 시작되었는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벌써 ‘마음에 두지 아니’(2절) 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마음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새들이 날아들어 주워가버립니다. 말씀이 자랄 수 없습니다. 이해의 싹도 트지 않고, 떡잎도 나오지 않으며, 줄기도 자라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의 마음의 상태는 길가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말은 소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소중한 것보다 더 소중하며, 심지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뜻입니다. 목숨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두는 것은 심는 것이고, 말씀이 마음속에서 잘 자라나도록 모든 삶의 중심을 말씀에 두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2절) 하는 것이고,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는 것,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영화롭게’는 여호와의 이름을 가진 자들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즉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은 저주받은 지파였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야곱의 아들 레위이며, 디나로 인해 분노로 세겜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살인했습니다. 디나의 친오빠였던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심에 불타 그들로 할례를 받게 하고 제삼 일에 칼을 차고 들어가 그 성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하몰과 그의 아들까지 죽입니다.(창34장) 이 사건으로 야곱은 처음 약속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벧엘로 돌아가지만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 49:5-7)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안정적인 땅을 얻지 못하고 흩어지게 됩니다. 시므온 지파는 제대로 온 땅을 얻지 못해 유다 지파 남단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유다와 근처 지파들에 흡수되고 맙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출애굽의 과정 속에서 비느하스의 충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는 지파로 구분되어 섬기게 됩니다. 일반 지파들은 6개의 도피성에 흩어지고,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가 제의를 주관하기에 이릅니다. 가장 미천한 저주받은 자리에서 가장 존귀한 제사장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하는 일은 성전에서 제의(祭儀)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삶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끊임없이 지도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입술에 ‘지식’을 지켜야 하고,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7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8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의 입술은 하나님의 입술이며, 그의 혀는 하나님의 혀입니다. 율법을 그들에게 주었고, 속죄의 제사를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그것을 보는 모든 백성들의 제사장의 어그러진 길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 않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으니 백성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리라. 백성들이 제사장을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멋있어서? 똑똑해서? 무엇 때문에 존경할까요?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이 있고, 여호와께 나아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제사장들에게 더 이상 율법도 없고 길도 없다면 공경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멸시를 받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존경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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