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생애 De vita Moysis
모세의 생애 De vita Moysis
닛사의 그레고리
*이글을 마이트웰브에 기고한 글입니다.
1. 닛사 그레고리의 생애와 저술
-간략한 생애
닛사의 그레고리는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부입니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형인 대 바질과 나지안주스 그레고리와 더불어 갑바도기아 삼대 교부로 불립니다. 그는 삼위일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 중 하나였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 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의 집은 갑바도기아의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열 명의 형제 중 셋째였습니다. 위로는 가이사랴 감독이 된 바질(Basil)이 있고, 누나였던 마크리나가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기도서 봉독자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스스로 수사학 교사가 되고 싶어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형 바질의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372년 경 형 바질은 그레고리가 닛사(Nyssa)의 작은 마을의 주교가 되도록 후원합니다. 안타깝게 형 바질은 379년에 죽고 맙니다. 그레고리는 형을 대신하여 아리안 주의에 대항하여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 짐을 맡게 됩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참가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도록 힘을 씁니다. 당시 황제였던 데오도시우스는 그레고리와도 상당한 친분을 가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리고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자들과 반대파들에 의해 온갖 비판과 질시를 받아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결국 그는 감독직을 내려놓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395년 이후 여생의 남은 십여 년을 감독직에서 물러나 칩거생활을 하며 지냅니다.
- 그레고리의 저술
<아가 강해> <기독교적 관습> <에우노미우스 논박> <주님의 기도에 관하여> <기독교 신앙 고백에 관하여> <전도서를 주제로 한 설교들> <완전에 관하여> <동정에 관하여> <성령에 관하여> <완전에 관하여> <완덕에 관하여> <찬가에 관하여> <영혼에 관하여> <지복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세례에 관하여> <셋이 아닌 하나님에 관하여> <마크리나의 생애> 등이 있습니다.
2. 책의 구조와 내용
이 책은 수도사들이 모였을 때 강독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어떤 논증이나 세세한 설명을 하기보다 모세의 생애를 성경적으로 살펴보고 2권에서는 영적 해석을 시도합니다.
- 구조
1권 덕의 완성에 대하여
2권 모세의 생애에 관한 명상
- 요약
1권 덕의 완성에 대하여
서언
사람은 완전함에 도달할 수 없다. 덕을 향해서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목숨과 방불하다. 하나님은 완전한 선이다. 신의 본성은 무한하며 무제한적이다. 참된 덕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님은 ‘온전하라’(마 5:48)하셨으니 온전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성장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완전이란 선 안에서의 성장과정 그 자체에 놓여 있는 것이다.’(45쪽)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을 통해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모세의 생애
모세는 위기의 시기에 태어났다. 부모는 죽일 수 없었지만 아이가 자라 더이상 키울 수 없어 역청을 바구니에 발라 나일강에 띄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보고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다. 친 어머니를 찾아 유모로 삼는다.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운다.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말리지만 그들은 모세를 거절한다. 결국 광야로 도망쳐 그곳에서 결혼한다. 모세는 광야에서 시끄러움을 벗어나 산에서 홀로 살았으며, 광야에서 양을 돌보며 살았다.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셨다. ‘모세는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현시를 통해서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그의 동족을 애굽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50쪽) 모세는 다시 애굽으로 내려갔고, 아론을 만난다.
바로 앞에서 모세를 지팡이로 뱀을 만든다. 애굽의 술사들도 뱀을 만들지만 모세의 뱀이 그들을 먹어 버린다. 모세는 ‘애굽의 전 지역에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큰 재앙을 내렸다.’(51쪽) 그러나 이스라엘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홉 가지 재앙에도 애굽의 바로는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닥쳤다. 모든 재앙은 피할 수 있었지만 장자의 죽음은 달랐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피를 뿌림으로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52쪽)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한다. 그러나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하여 울부짖는다.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드신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
물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다. 모세를 반석을 치자 물이 쏟아진다. 또한 만나가 내리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기적은 만나가 내일까지 먹을 수 없다는 것과 유일하게 안식일 전에는 이틀 동안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말렉과 전쟁하여 승리한다. 모세가 팔을 들자 승리한다. 팔을 내리면 패하자 두 사람이 아론의 팔을 붙잡아 준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서 생길 수는 고통을 막아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햇빛을 막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막으신다. 만나를 내리시고, 메추라기를 주신다. 시내 산에 도달하자 ‘자신들을 정결하게’(59쪽) 하라 명하신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시적인 것을 모두 초월하고 앞으로 나가야만 하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비가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게까지 끌어올려야 하며, 또한 자신의 이해력이 도달할 수 없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했다.”(61쪽)
하나님은 율법 안에 일반적인 율법과 특수한 율법을 모두 주셨다. 모세는 율법을 통해 더 높은 의식으로 인도된다. 산을 내려온 모세는 장인들을 고용해 성막 건축을 시작한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어둠 속에서 사십 주야를 영원한 삶, 즉 궁극적인 삶에 참여’(65쪽)한다. 이것은 자연의 상태를 초월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안에서 우상을 숭배한다. 모세는 분노하여 하나님께 받은 돌판을 깨버린다. 언약이 깨진 것이다.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가 돌판을 다시 받는다. 모세는 산을 내려와 성막 짓기를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나자 원망하며 무절제 속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목이 마르자 또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말았다.’(68쪽) 원망하자 불뱀이 와서 물었다.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치료한다. 백성의 한 무리가 다시 반역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대지가 갈라져 삼키게 하고 나머지 250명도 불로 태우신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아몬드가 열린다.
가나안 입성을 위해 모세가 이방 민족의 땅을 통과하려 하려 한다. 길만 쓰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다. 이스라엘은 승리하고 발람의 저주에서도 살아남는다. 미디안 족속들은 나중에 모두 죽임을 당한다. 결국 모세는 비스가 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죽임을 맞이한다. “이제 우리는 이 글에서 의도했던 목적에 모세의 삶을 적용시켜야만 한다.”(72쪽)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1권에서는 성경 속에 담긴 모세의 삶을 추적하면서 정리해 나갑니다. 그러나 종종 모세의 삶을 기술하면서 삶의 교훈보다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해석이 추가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제 2권을 통해서 그레고리가 제시한 삶을 배워 봅시다.]
제 2권 모세의 생애에 관한 관상
모세가 태어날 때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폭군이 저지하려고 했던 출생이 바로 고결한 삶의 시작’(76쪽)이었다. 바로는 고결한 삶의 산파 노릇을 한다. 모세의 부모는 지혜롭게 안전한 방주를 만들었다. 바로의 공주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여기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이방 학문’(78쪽)을 말한다. 모세는 친모를 통해 살아난다. 이것은 우리가 비록 ‘이방 학문으로 교육받는다고 할지라도, 교회의 법률과 관습이라는 모유를 계속해서 먹어야’(79쪽) 함을 말한다. 모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애굽인을 죽이지만 오히려 도망가야 했다.
진리의 빛은 삶의 영혼을 조명해 준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이 아닌 떨기나무로 빛을 비추신다. 이것에서 우리는 ‘동정녀의 신비를 배울 수 있다.’(81쪽) 이 빛은 우리가 진리 안에 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세의 아내는 이방인이다. 이것은 적당한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모세는 아론을 만난다. 하나님은 고결한 삶 뒤에 사람을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아론을 모세를 돕는 자로 사용하신다.
“고결한 사람은 물질적 삶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을 자유로운 삶으로 이끌어 내기를 원한다.”(93쪽) 모세는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려 한다. 이적들이 일어나자 시간이 갈수록 애굽인들은 낙담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을 갖는다.
바로는 징계의 고난에서도 돌이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내버려 두는 것이다.(롬 1:28) 바로는 스스로 강퍅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죄인들에게 일어난다. 이스라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장자의 죽임까지 간다. 장자는 모든 것이다. 모든 악은 제하여져야 한다.
드디어 애굽을 빠져나온다. 애굽은 죄의 삶이다.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의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 이것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받지 못한 품삯이다. 애굽의 재물처럼 세상 학문도 쓸모가 있다. 성막을 지을 때 이 보물들을 사용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속 학문이라는 은총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사용’(110쪽) 한다. 바로 바질( 대 바질로 그의 형)이다. 홍해를 건너가 아말렉과 싸운다. 만나는 하늘로부터 온 표적이다 하늘로부터 온 양식은 심지 않고 거둔다.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모세는 두 손을 들어 승리한다.
“여기서 높이 쳐든 모세의 손은 고매한 통찰력으로 율법을 관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면에 땅을 향해 내려온 그의 손은 율법에 대한 저급한 문자적 해석과 이로 인해 생기는 잘못된 율법 준수를 의미한다.”(123쪽)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나팔소리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성육신의 신비를 나팔을 불러 알렸다.(126쪽) 그러나 사람들이 귀가 멀어 듣지 못했다. 마침내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나온 소리는 그들의 귀를’(126쪽) 때려 듣게 한다.
3. 나가면서
닛사의 그레고리에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경 해석입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을 시도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형적인 성경 해석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이 안디옥 학파의 문법과 역사적 틀로 성경을 해석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유대인들이 신비로운 성경 해석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레고리의 <모세의 생애>도 유대 랍비인 필로의 <모세의 생애>를 모방해 만든 것입니다. 어거스틴 이전의 교부임에도 그레고리의 성경 해석은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은 문자 너머의 의미를 풍성하게 드러내 주는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성경에서 벗어나 왜곡된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를 해석하면서 종종 ‘문자적 해석’으로 부족하다고 말하며, ‘영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모세가 보았던 하나님의 등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등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틀림없이 잘못된 결론에’(153쪽) 빠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출 33:21에 기록된 ‘반석 위에 섰으라’라는 표현도 ‘동시에 계속해서 덕의 길을 걷도록 격려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해석들은 때론 깊은 의미를 캐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비록 교부라 할지라도 바르지 못한 성경 해석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존재로 삶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고백록이나 신국록 등에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교부 신학에서 이러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중요한 신학적 진술입니다. 그레고리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빛, 구름, 어둠이란 세 길이 있다고 말한다. 빛의 단계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발견합니다. 구름의 단계는 시내 산을 오를 때 구름에 휩싸인 사건을 통해 말합니다. 마지막 어둠의 단계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어둠 속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그레고리는 중세에 꽃을 피운 ‘부정 신학’의 문을 엽니다. 그는 말하기를 ‘열심히 노력해서 종교적으로 성장한 뒤 그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 실체에 대해선 관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128쪽) 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중요한 교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영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긴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따르게 됩니다. 또한 부정 신학을 태동시킴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풍성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비판적으로 그레고리의 책들을 읽는다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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