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여행 가볼 만한 곳
목포 여행 가볼 만한 곳
목포를 항구로만 정의하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목포를 정의하면 항구+근대가 함께 사용될 때 목포다움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처음 목포를 여행하는 분들은 유명한 그대화 거리나 유달산 등을 가면 됩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목포를 알고 싶다면 몇 가지를 더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래는 근대화 거리에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목포를 잘 드러내주는 건물들입니다.
신미화 이용원
전남 목포시 마인계터로 22-4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가는 94년 전통의 이용원이다.
유달동 일본식 가옥(적산가옥)
유달동 일원의 일본식 가옥. 유달초등학교 앞에 자리한다.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나옴
유달초등학교 강단
일본식 건물
옛 호남은행(현 목포문화원)
목포시 해안로 249번길 34
목포 청년회관(현 남교소극장)
차범석길 35번길 6-1
1925년에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청년회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의 본산지였다. 임마누엘 목포제일교회 사용되었다. 2002년 등록문화재로 등재된다.
동본원사 목포별원
주소 목포시 영산로 75번길 5
개장시간 월요일 일요일 공휴일 휴관. 일본식 전통 사찰이다. 코롬방제과 옆에 자리한다.
목포의 첫 불교사원인 동본원사 목포별원으로 정식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이다. 이 건물은 1904년 현재의 부지를 매수하여 1905년 11월경에 목조 단층 사원으로 세워진 건물로 자방향의 단층건물로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양식을 띄고 있으며, 정면 중앙에는 출입구로서 별도로 넓게 포치(정면 출입구 돌출부분)를 두었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사용한 팔작 지붕이며, 포치부분은 단을 낮게 처리한 원형의 장식적 지붕을 설치하였다. 석조 단층건물로 평면은 Y측 긴 장방형에다 전면 중앙에 진입부를 덧붙였고, 후면 좌측으로는 부속실을 덧붙였다. 벽체는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벽체 모서리에는 목조처럼 원형으로 다음은 석조 갓기둥을 두었고 그 상부에는 주두까지 두었다. 그리고 진입부 모서리와 양측면의 수직띠 중간 중간에는 직경 15cm의 양각 원형장식을 두었다. 한편 창호 위아래는 동출된 수평띠를 건물 전체에 들렀다. 창호는 우물천장이며 내부바닥은 마루바닥으로 되어있다. 이 건물이 위치한 곳은 현재 목포 원도심에서 중심지인 오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당시 일본인 조계지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 만나는 접경지에 해당하여 사찰이 입지하기에 좋은 곳이엇던 것으로 여겨진다. 해방이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목포 중앙교회에서 1957년부터 사용한 건물로, 절이 교회가 된 이색적인 약력을 가지고 있다.
출처 목포시청
조선인 마을
개항기에 조선인들이 모여 살 던 곳이다. 현재 남교동, 만복동, 죽교동이다.
북교초등학교
목포 개항기에 개교한 곳으로 100년이 넘은 학교다. 박화성, 이난영, 남진, 김대중 전대통령이 졸업한 곳이다. 학교 옆 느티나무는 학교 역사보다 오래되었다.
양동교회
목포시 호남로 15
미국 선교사 유진벨이 최초로 설립한 교회이다. 기장측 교회이다. 이 교회에서 통합측인 양동제일교회, 합동측인 새한교회가 갈라져 나갔다. 세 교회 모두 자신들이 원조라고 말한다.
정명여학교 선교사 사택
목포시 삼일로 4
1903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교회 본교로 설립된 호남 최초의 여학교이다. 1911년 목포정명여학교로 개명된다.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폐교된다. 이곳에 자리한 선교사 사택은 1912년에 건축된 것으로 목포의 석산에서 캐온 화강석으로 세워진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다.
동명동 77계단과 신사
주소 전남 목포시 동명동 87
목포역역 남서쪽으로 바라보면 작은 동산에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삼학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의 원래 이름은 송도(松島)였다. 소나무가 많다하여 송도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이곳의 소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벚꽃을 심고 동산 중앙에 신사를 만들었다. 아직도 신사터가 가정집 안에 자리하고 있고, 신사로 올라가는 77계단은 아직도 남아있다. 보수하여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형태는 그대로다. 목포사람들은 송도라는 섬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목포 사람치고 목포 역사를 아는 아는 사람의 희귀할 만큼 적다.
북교동 성당과 김우진 생가
목포의 오빠로 불린 김우진의 생가터에는 북교동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 내 수녀워 옆 잔디밭에는 김우진 문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북교동 성당 주변으로 김우진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유부남 김우진과 처녀였던 윤심덕의 러브스토리는 <사의 찬미>를 비롯 현해탄에서 몸을 던진 이루지 못한 서글픈 사연을 담고 있다.
노라로 미술관
목포 원도심에 마인계터로가 있다. 이곳은 만인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인계는 일종의 복권으로 부푼꿈을 안고 찾아온 이들이 이곳에서 복권을 샀던 곳이다.
정광 정혜원
목포시 노정복길 26
연중무휴
노적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다. 고은 시인과 불교계의 큰 스님인 법정이 만난 곳이다. 당시 고은은 아직 승려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은은 성추행으로 재판중이며 2심에서도 패했다.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이다. 곱게 늙어야 한다. 자랑스운 장소가 될 뻔 했지만 고은의 성추행 사건으로인해 목포는 이전에 가진 추악한 면을 또 하나 드러낸다. 개항 초기 목포는 노름과 색이 즐비한 곳이었다. 유난히 성적으로 문란한 곳이 목포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유달유원지
주소 전남 목포시 해양대학로 59
전화 061-270-8374
온금동에서 목포 해양대 사이에 작은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목포시 안에서 바다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이다.
목포 유적
목포시사(木浦詩社)
구주소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 330-3
지정사항시도기념물 제 21호
삼층석탑
전남 목포시 유달동 4-1
이훈동 정원 안에 있다.
목포 공립 심상 소학교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8
개항 다음해인 1898년에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해 목포에 처음 설립한 학교로 당시에는 교사가 없어 동본원사 별원에서 승려 스스로가 임시교원 1명을 두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방 이후 목포 유달 초등학교가 된 이 곳에는 옛 본관 교사는 훼철되고 현재는 1929년에 신축된 2층 철근 콘크리트조 강당 1동만 남아 있다. 건물은 장방형이며 지붕은 우진각형의 함석지붕으로 되어있다. 입면상으로 특별한 장식은 없고 다만 2층은 폭이 좁은 아치 창을 두었다.
김지민, 1995, <목포시의 근대건축>,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 옥암동 선돌(木浦玉岩洞立石)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
옥암동 부주두 마을 입구에 2기가 있다. 1기는 마을 입구 약 150m 못 미친 길 옆에 위치하는데 크기는 140×40∼30cm이며 하부는 삼각형, 상부는 원형에 가깝고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 놓았다. 다른 1기는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크기는 150×60×20cm인데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어떤 특별한 의식을 행하지는 않고 있다.
참고사항
조경만·이경업, 1995, <목포시의 민속자료>,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 유달산 봉수지(木浦儒達山烽燧址)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 271
유적설명
고려 충정왕(1349∼1351)때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변방에서 왜구의 침입을 중앙에 조속히 알리기 위하여 봉수대가 전국적인 규모로 설치되었는데 이 때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달산 봉수대가 기록상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로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무안현조(務安縣條)에는 “(무안현에는) 봉화가 둘 있는데 하나는 유달이봉화(儒達伊烽火)로 현의 남쪽에 있으며 남으로 영광 황원봉화(黃原烽火)와 연결되고 북으로 나주 군산봉화(群山烽火)와 연결된다. 다른 하나는 고림봉화(高林烽火)로…”라하여 목포의 유달산 봉화는 황원봉화→유달봉화→군산봉화→고림산봉화로 연결되는 봉화로에 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사항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김경옥, 1995, <목포시의 역사유적>,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木浦高下島李忠武公遺蹟)
구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230
지정사항시도기념물 제 10호
시대 조선
종류유적. 건조물-유적
유적설명
고하도 유적지는 충무공 이순신이 1597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08일 동안 주둔하였던 곳으로서 특히 이 곳은 이순신이 군량미를 저장하였던 곳이며 현재는 그 사적(事蹟)을 기념하는 비(碑)가 있다. 이 비와 비각(碑閣)은 조선 경종 2년(1722) 8월에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건립하였다. 고하도는 일명 “고로도(高露島)”라고도 하며 목포 대안(對岸)에 길게 누워 마치 함선과도 같다.
참고사항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92, <<문화재도록>> ; 이해준, 1995, <목포의 역사-개항 이전사->, <<목포시의 문화유적>> ; 김경옥, 1995, <목포시의 역사유적>, <<목포시의 문화유적>>
문서 발행일2020-06-22 22:24
1차 수정일 2021-05-28
2차 수정일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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