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 박흥용 2012년 12월 17일, 엘레브(4층)
북토크 박흥용 작가
2012년 12월 17일, 엘레브(4층)
<검(劒)> 참 특이한 제목이다. 하여튼 이번 북토크는 김기현 목사님이 강조 또 강조를 한 덕에 글쓰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다음 북토크에 참석했다. 박흥용,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만화 원작가라는 말에 아~라는 탄성이 나왔다. 왜냐하면 2년 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란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가 특이하고 이상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이 영화가 동일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전체적인 뭔가 2%로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왜이리 어설플까?'라는 생각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원작 만화를 찾아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만화는 전3권으로 되어있고, 플롯도 영화와 약간 다르게 설정되어 있었다.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긴 이야기를 담으려 하고, 영화로서의 갈등구조를 만들려하다 보니 억지로 꽤 맞추고 왜곡시킨 부분이 적지 않게 된 것이다.(이 부분은 다음의 글을 참조바람. http://littlefinger.tistory.com/35)
만화로 북토크 하는 건 처음 경험한다. 북토크는 대체적으로 인문학이나 신학 등의 소위 어느 정도 깊이 있는 대화나 이슈가 되는 주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글쓰기 학교 회원은 강제참석(?)하라는 김기현 목사님의 어명에 의해 피곤한 가운데서도 졸음을 이겨내며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다. 김기현 목사의 사회로 저자와의 간단한 소개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김기현 목사님의 질문과 박흥용 작가의 답으로 이어갔다. 그러기를 한 시간쯤 지나 청중들의 질의문답을 하는 형식을 취했다.
북토크가 진행되면서 느린 말투 때문에 몰입에 약간 지장을 받기는 했지만, 몇 가지의 사실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한 캐릭터를 완전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작은 방 절반은 A4용지로 습작하여 채워야 어느 정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된다고 한다. 박작가는 만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잡지의 모델들을 보고 그대로 그리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라고 말했다. 하다보면 손이 기억하는 단계가 오고, 나중에는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그것을 그리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한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그리는 날! 기가 막힌 말이다. 예전에 어떤 군사 다큐를 본적이 있다. 특수요원을 키우는 이야기였다. 특수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조건이 충분히 맞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혹독한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적이 총을 겨누는 모습을 보면, 머리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피하게 되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적을 제압(制壓)할 때까지 훈련을 받는다. 만화가 역시 거의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이도록 연습 또 연습을 해야 한다. 말콤 글래드 웰은 그의 책 <아웃 라이어>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 하면서 한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문적인 일을 일만(萬)시간 동안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박작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목사로서 부끄러웠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각고의 노력과 훈련을 말씀 연구와 기도에 투자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견(偏見)도 벗겨졌다. 만화는 가벼운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만화는 무거운 것이었다. 박작가는 20대 초반에 회심하여 신앙을 갖게 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복음을 광신도처럼 전했다고 한다. 그는 복음을 온전히 알고 싶은 욕망에 주석서까지 집어 들고 5년의 세월을 미친 듯이 성경을 파고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만화는 신학적인 바탕이 깊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만화로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각오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검>이다. 검은 이번에 발행되었지만, 근래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1992년 국민일보에 연재한 것을 다시 책으로 낸 것이다.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하는 갈망은 박작가로 하여금 두 가지의 과제와 하나의 대안을 찾게 된다. ‘이현세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면 전도가 잘 될 것’이라는 도전과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깊이 있는 작품성을 함께 아울러야 하는 과제였다. 박작가는 그 답을 사도바울이 사용했던 ‘로마 시민권’에서 찾았다. 로마 시민권! 복음은 이 시대의 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통해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았고, 그 권리 안에서 복음을 전했다. 박작가는 만약 ‘우리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복음 전하기가 수월해 진다’고 말했다. 즉 이런 식이다. 어떤 만화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언어를 먹어야 한다.’고 적었다고 하자. 강의나 북토크 시간에 그러한 말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는 기회를 실제로 가졌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만화가 좋아 박작가의 만화를 사서 보는데 그 안에 담겨진 간접적 진리로 인하여 진리를 갈망하게 되고 결국 예수를 영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마 시민권은 전문성과 복음 전도의 접촉점으로서의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멋진 대안으로 보인다.
로마 시민권은 그의 구상과 고증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배어 있어야 한다. 어우동이 살았던 시대에는 물레방아가 없었다. 미루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점 등은 전문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에게는 중요하게 다루어야할 부분들이다. 만화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정도는 훨씬 넘어 플롯 구성과 고증 등의 학문적인 부분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만화는 쉽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하여튼 이번 북토크는 만화에 대한 시각을 넓혀줌과 동시에 편견을 바로 잡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한 만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 주었다. 특히 세상과 소통하려는 박흥용 작가의 그리스도인다움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만화 작가로서의 훈련과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 겸손함 또한 도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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