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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5. 2:1-4 하나 되어 사랑하라

샤마임 201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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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1-4 하나 되어 사랑하라

 

1. 말씀 읽기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 묵상

 

대체로 2:1-11절까지 다루지만 1-4절을 먼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동일한 그리스도인의 겸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1-4절에서는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삶으로 드러내야할 겸손의 행위를 말합니다. 5-11절까지는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겸손을 배우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1-4절과 5-11절은 그리스도인의 겸손이란 주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1-4절을 통해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겸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 상황

2-3()~하지 말라

3()-4~을 하라


1) 그리스도인의 언어 사역

 

바울은 1장 후반부에서 빌립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특히 고난에 동참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할 의무를 지녔다고 말합니다. 이제 외부적인 핍박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겸손에 관한 것입니다. 1절을 분석해 봅시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τις ον παράκλησις ν Χριστῷ)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Χριστῷ)의 무슨(τις ) 권면(παράκλησις)은 교리 교육이나 삶을 말합니다. 즉 복음으로 인해 파생된 그리스도다운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랑의 무슨 위로(ετι παραμύθιον γάπης)

 

위로(παραμύθιον)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영어성경은 대부분 ‘comfort’로 번역하여 한글성경을 따릅니다. 기본형은 파라뮤세오마이(παραμυθέομαι)’상담하다’ ‘조언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구절은 언어를 통해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교제(ετις κοινωνία πνεύματος)

 

성령의 교제(κοινωνία)는 나눔을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긍휼이나 자비(ετις σπλάγχνα καοκτιρμοί)

 

긍휼(σπλάγχνα)은 애착이나 보살핌(affections)의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1:78에서는 하나님의 긍휼로 번역되었고, 1:18에서는 ‘intestines’ 창자로 번역되었습니다. 긍휼이란 단어는 고대 히브리어로 창자였습니다.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자신의 창자가 뒤틀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긍휼이란 단어입니다. 자비(οκτιρμοί)라는 단어 역시 내장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감정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이로보건데 긍휼과 자비는 다른 두 단어가 아니라 비슷한 단어를 반복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1절에서 두드러지는 주제는 입술언어의 사역입니다. 가르침과 교훈, 위로의 말과 권면과 자비까지도 언어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내용이든, 사랑의 위로든지 언어가 불가피하게 사용되지만 잘못 사용될 것을 염려합니다. 내용이 좋다고 전하는 방법을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 봅시다.

 

2) 마음을 합하여

 

2절은 1절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2절에서는 한 마음같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 잘난 체함으로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다르지만 동일한 권면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고, 뜻이 다르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라진 마음은 다른 목적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다른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1절에서 말한 타인을 향한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 마음을 말합니다. 겸손은 갈라진 마음을 합하게 하지만, 교만은 분열과 적의를 갖게 합니다. 교만은 오직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어리석음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으며, 타인의 허물을 용납하고 용서하지 않고 비판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필멸(必滅)의 이유입니다. 교만한 자와 절대 마음을 합할 수 없으며, 교만한 자들은 타인을 절대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분열하는 교회는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바른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서로 격려하며, 세워나갑니다. 빌립보 교회의 치명적인 약점은 하나 되지 못한 갈라진 마음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의 불필요한 세속적 경쟁과 비교는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분열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이듯 그리스도인들도 한 몸이어야 합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의 방법입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πληρώσατέ μου τν χαρν)

 

헬라어 성경에서 2절의 시작은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입니다. 이 구절은 2-4절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은 한글문법의 순서상 어쩔 수 없이 4절 후반부에 있지만 헬라어는 문장의 가장 앞에 두었습니다. 즉 모든 것들로 인해 바울이 마음이 행복해 질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하나가 될까?

 

이제 ‘~하지 말라가 아닌 ‘~하라로 넘어갑니다. 하지말라는 궁극적인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을 하라입니다. 우리는 종종 부정적 언어에 함몰되어 실행력을 상실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정적 존재가 아니라 말씀에 자신의 삶을 엮는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죄를 짓지 말라보다 선을 행하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바울은 가장 먼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충고합니다.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길 수 있을까요? 야고보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1:9-10)

 

이 구절은 타인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주님 안에서 어떤 존재로 여겨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 구절은 낮은 형제는 주님 안에서 높고부한 형제는 주님 안에서 낮아진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타인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할 때 하나가 됩니다.

 

하나 된 빌립보 교회는 고난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사랑한 바울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일로 인해 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낫게 여기다(ἡγέομαι)’는 말이 셈하다’ ‘판단하다를 갖고 있습니다. 13:7에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지도하는 자들을 언급할 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을 이웃을 대할 때 자신보다 신분적으로 높고, 자신을 지도하는 지도자처럼 대하라는 말이 됩니다.

 

.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볼뿐더러

 

두 측면을 갖습니다. 먼저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특징은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이 수고하여 얻으려하지 않고 타인이 수고하여 얻은 것을 훔치고 빼앗아갑니다. 훔치고 빼앗기 위해 악인들은 거짓으로 연합하고, 간교함으로 규합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꾀를 내며, 의인의 틈을 노립니다. 잠언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소개합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6:16-19)

 

정확하게 일곱 가지 입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 , , 마음, 발이 상징하는 것은 온 몸입니다. 이제 증인()’를 통해 전인으로 악을 행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악인은 중심뿐 아니라 온몸으로 악을 행하고,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악합니다. 악은 본질적으로 이웃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타인은 바라볼 때 속이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내야 할 몫에 집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은 부지런합니다. 바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13:23)

 

.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사랑은 능동적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한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눈감는 자들은 이웃이 아닙니다.

 

천성적으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불가능한 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완전한 존중은 화합이 보장되고 풍요롭게 하는 사회 안에서 신자들을 결속시켜 준다.(제랄드 호든 <WBC-빌립보서>)

 

나가면서

 

빌립보서 2:1-4절은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선포한다고 해서 강압적이거나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온유와 친절함을 견지(堅持)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됨의 방법은 겸손과 사랑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형제의 짐을 덜어내는 사랑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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