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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주해와 강해

샤마임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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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주해와 강해

공회에서 돌아온 사도들의 보고를 들은 교회는 더욱 하나가 되어 서로 물건을 통용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물건을 팔아 사도들에게 갔다 놓지만 거짓말을 합니다. 4장이 교회 외부로부터의 위기라면 5장 내부적 위기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도행전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의논하여 자신들의 소유를 팝니다. 교회에 바치려는 의도입니다. 그들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사도행전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런데 판 값의 일부를 감춥니다. 이것을 아내도 알았습니다. 왜 감추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여튼 그는 그 일부는 사도들 앞에 두었습니다. 감춘다는 헬라어 νοσφίζω는 횡령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베드로나 아나니야에게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을 감추었냐고 묻습니다. 4절과 5절 사이에 아나니야의 말이 빠져 있습니다.

"여기에 저의 전 재산을 다 판 돈입니다."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재산을 헌납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나니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려니 돈이 너무 아까워 일부를 숨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도 알았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도들에게 잘못 말한 것입니다. 명예도 잃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가식적 믿음이 이렇게 무섭니다.

사도행전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는 판 후에도 네가 임의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라 말합니다.

사도행전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이 말을 듣고 아나니아의 혼이 나가 죽임을 당하고 사람들은 놀랍니다.

사도행전 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사람들이 시신을 매고 나가 장사를 합니다.

사도행전 5: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잠시 후 아내 삽비라가 들어옵니다.

사도행전 5: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다시 아내게 묻습니다. 그런데 삽비라도 역시 거짓을 말합니다. 부부는 닮습니다. 슬프게도 좋게 닮아야 하는데 이 부부는 나쁘게 닮았습니다.

사도행전 5: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결국 삽비라도 죽임을 당합니다.

사도행전 5: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그녀도 죽어 남편 곁에 장사됩니다.

사도행전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일을 통해 교회가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존 스토트는 아나니아 부부의 일을 아간의 속임수와 비교합니다. 이 이일로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표적을 일으키다

사도행전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교회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사도들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민간에 표적과 기사를 많이 일으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입니다. 솔로몬 생각은 성전 내부에 있는 공간입니다. 

사도행전 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확연히 패가 갈립니다. 믿는 자들은 과감히 모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더 멀리 합니다. 하지만 멀리서도 백성들을 칭송합니다. 

사도행전 5: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께로'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들에게 가지 않고 주님께 갔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사람의 제자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5: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사람을 들고 옵니다. 베드로가 지나가다 그림자만 지나쳐도 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베드로를 통해 일어납니다. '덮이다'(ἐπισκιάζω)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로 덮이다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ἔτι ατολαλοντος, ἰδονεφέλη φωτεινπεσκίασεν ατούς, καὶ ἰδοφωνὴ ἐκ τς νεφέλης λέγουσα Οτός στιν Υ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ἐν εδόκησα· ἀκούετε ατοῦ.

사도행전 5: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세례 요한의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옵니다. 병든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이 나음을 얻습니다.

 

사도들이 능욕을 받다

사도행전 5: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행전은 바리새인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연합합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과는 충돌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두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기'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듯 제자들도 시기했습니다. 그들은 추악하고 더러운 자들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 로마에 빌붙어 민족을 버린 자들입니다.

사도행전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둡니다.

사도행전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하지만 하나님 간섭합니다. 천사를 보내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냅니다. 후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할 때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행 16:25-26) 하지만 옥에서 풀려나는 것만 형통이 아닙니다. 곧 스데반은 순교하고 야고보도 순교하고, 베드로는 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사도행전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천사가 베드로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합니다. 후에 바울에게 동일한 말로 사명을 줍니다.

  • 사도행전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5: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사도행전 5: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사도행전 5: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주의 천사가 사도들을 데리고 나간 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천사는 그들의 눈을 가렸고 보이지 않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럴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막으려 해도 때가 아니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옥은 잠겨 있고, 사람들도 그대로 망을 보고 있습니다. 자연적 원리가 아닌  기적을 통해 공간을 이동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5: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의혹- 당혹합니다. 미완료 시제를 통해 그들의 마음이 계속하여 요동치고 있음을 말한다. 너무나 기이한 일,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5: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사람들이 보고합니다. 사도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절의 천사의 지시와 동일합니다. 사람들-서서-가르치다. 를 따릅니다. 4:18절과도 비교해 봅시다. 말씀이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5: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또 그들을 체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사도들을 따르고 잘못하면 돌로 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사도행전 5: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공회로 모이고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웁니다. 그들은 지난번에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 엄금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예루살렘 가득하다며 흥분합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채웠다는 완료 시제로 이미 가득 찼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4:19-20절의 입장을 반복합니다. 즉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먼저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대표로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는 거침 없이 말합니다.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다. 나무에 달아 죽이는 행위는 공개적으로 처형했다는 말이며, 율법적으로 저주 받는 자의 표상입니다.

  •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려고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오른손은 능력을 임금은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 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예수를 시온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저주(십자가)의 죽음을 생명의 부활로 바꾸심으로 세상의 구주로 삼았습니다.

사도행전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입니다. 성령은 증인들을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과 방식은 증인이요 증언하는 것입니다. 입술로의 증언 삶으로의 증언입니다.

사도행전 5: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거침 없는 발언에 그들은 회개하기는 커녕 노하고 죽이려 합니다. 시편 2편의 열방들의 분노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5: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가말리엘은 바울의 스승이며 당대 최고의 명예와 존중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학자답게 공회에 일어나 사도들을 내 보내고 발언합니다.

사도행전 5: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가말리엘의 권고는 매우 상식적이고 이상적이다. 미쉬나에 의하며 가말리엘이 죽었을 때 '율법의 영광이 끝나고 순결함과 금욕이 죽었다'고 표현한다.(대럴 백_사도행전) 그는 힐렐의 학생이자 장로 가말리엘로 불렸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상식저인 인물이었다.

사도행전 5: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두 개의 사건을 언급한다. 하나는 드다의 사건이다. 그도 자신을 선지자처럼 생각했지만 결국 사라졌다. 이처럼 지금의 저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 말한다. 두 번째는 갈릴리 유다의 사건이다. 요세푸스가 말한 드다와는 시간 상의 차이가 있다. 굳이 요세푸스가 맞출 필요가 없다. 외부 증언이 전부가 아니다.

사도행전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가말리엘이 얼마나 상식전가를 보라. 하지만 그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만약 사도들의 일들이 사람에게 났다면 무너질 것이라 확신한다. '무너지다'의 카탈리오는 사도행전에 3번 등장하며 파괴된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5: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반대로 하나님께로 났으면 무너뜨릴 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다. 가말리엘은 매우 냉철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는 로마와 민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도들을 핍박하면  민중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렇다고 놔 두자니 그렇다. 또한 민중들이 봉기하면 권력을 잡고있는 이들은 난처하기 그지 없다. 한 마디로 가말리엘은 중도파이자 절충 주의자가 확실하다.

사도행전 5: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공회는 사도들을 다시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채찍질하여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한다. 가말리엘에 설득된 공회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전에 했던 말을 다시하고 채찍질로 다스렸다.

사도행전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1-42절은 공회에서 당한 것에 대한 요약이자 사도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오히려 능욕 받음을 기쁨으로 받았고, 복음을 위한 희생으로 받았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기쁘나 고통이 수반된다.

  • 마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눅 11: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 믿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이 돌아가서 멈추지 않았다. 성전과 집(카트 오이콘-집들)에서 가르쳤다. 복음의 공식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둘을 떼어 놓지 않는다. 풀어 내면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들과 성경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인 것이다.

 


사도행전 장별 요약 및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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