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상징] 바람(루아흐, 프뉴마)
[성경의 상징] 바람(루아흐, 프뉴마)
성경 속에서 바람처럼 흥미롭고 각양각색을 지닌 상징도 드물 것이다. 특히 레반트 지역은 바람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바람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번역되는 과정 속에서 바람은 다른 의미로 의역되거나 오역되면서 원어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성경 속에서 바람은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풍성하고 다양하다.
1. 신화 속의 바람과 바람 신들
단군 신화에도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올 때 우사(雨師)와 운사(雲師), 풍백(風伯)이란 세 신하를 데리고 온다. 세 신은 농사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가나안의 바알이 갖는 특징들을 고루 가지고 있다. 바람이란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발성상 목에서 바람을 내뿜어 낸다. 구약에서 ‘루아흐’는 ‘영’ ‘바람’ ‘숨’ ‘생각’ 등으로 번역된다. 문맥에 따라 번역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바람과 상관없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고대근동 신화에 의하면 바람은 삶과 끊을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바람의 신은 다양하게 존재했고,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하다두 또는 핫두 신은 퐁우신이며 그에 의해 바람은 통제된다. 이집트의 죽음의 신으로 세트(Seth)는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의 신이었다.
세트(Seth)는 죽음의 신 외에도 사막과 이방의 신이다. 사막을 지나는 캐러밴들의 수호신이다. 모래폭풍을 몰고 오는 무서운 신이다. 바다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그리스의 포세이돈(Ποσειδών)가 성향이 비슷하다. 후대에 이르러 세트는 난폭하고 잔인해진다. 머리는 자칼과 돼지를 닮아 있다. 때로는 그레이하운드의 모습이기도 하다. 실존하는 동물이 아닌 돼지나 자칼, 말, 악어 등을 합성하여 만든 신이 아닌가 싶다. 후대에 이르러 세트는 폭풍의 긍정적 측면은 사라지고 부정적 측면이 강조된다. '파라오의 힘은 곧 세트의 힘'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파라오는 세트의 힘을 빌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한다. 세트는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 태어난 5번째 자식이다. 모친의 자궁을 찢고 나와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고 싶었지만 오시리스에게 밀린다. 누이인 네프티스를 아내로 맞이한다. 세트는 종종 우가릿 신화에서 바알과 동일시된다. 고대 이집트의 슈(Shu)는 바람신으로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깃털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림으로 바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타히트의 테슙은 페니키아의 바알과 거의 흡사한 폭풍의 신이다. 아마도 두 신은 동일한 신이었을 것이다. 번개를 가지고 있고, 도끼와 철퇴를 사용한다. 종종 황소로 대변된다. 이것은 바알과 거의 동일하다. 바알 이전에 마르둑의 영향을 받아 용 일루얀카를 처단한다. 리그베다의 신 인드라와 동일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베다에 등장하는 미트라는 브라만교의 중요한 신이다. 바람의 신이며, 맹세와 저주의 신이다. 미트라는 계약 또는 친구를 상징하며 연합된 관계를 말한다. 그로 인해 종종 평화 조약의 수호신으로 그려진다.
그리스의 바람신은 아네모이(Άνεμοι)이다. 이 신은 실제로 넷이었다. 북풍이 신은 보레아스(Βορέας)로 겨울의 바람이다. 남풍의 신은 노토스(Νότος)로 여름의 바람이다. 동풍은 에우로스(Εύρος)이며 불행을 상징한다. 서풍은 제퓌로(Ζέφυρος)이며 봄을 뜻한다. 이들은 석양의 신 아스트라이오스와 새벽녘의 신 에오스 사이에서 난 자식들이다. 제우스는 네 신을 바람신인 아일로스에게 맡겨 통제하게 했다. 네 중에서 북풍의 신인 보레아스가 ‘바람의 임금’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잉카 문명에서 창조의 신이자 폭풍의 신 비라코차도 중요한 바람의 신 중의 하나이다. 바다와 친한 신이었고, 우주와 태양, 달, 별, 그리고 시간을 만들어 냈다. 아마도 모든 것이 가능한 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왕관은 태양을 눈에서 내리는 눈물은 비가 된다.
중국 신화에도 염소 모양을 한 궁기(窮奇)도 바람의 신이다. 원래는 오제의 한 명인 소호의 아들이었지만 규산에 머물면서 괴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궁기는 북풍을 일으키는 신이다. 조선시대의 청룡(靑龍)도 4신 가운데 하나이며 동쪽을 수호한다.
2. 성경 속의 바람 그리고 우상들
팔레스타인은 바람이 많은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사막 지대이고, 서쪽은 지중해가 자리한다. 동풍은 마르고 덥다. 서풍은 습기가 많고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중앙이 산이기 때문에 헤브론 산지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환경이 다르다.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하다. 세페라 평화를 중심으로 블레셋이 살았던 서부 해안 지역은 다양한 식물들이 잘 자란다. 이에 비해 여리고 주변은 사막이며, 유다 남쪽에 자리한 네게브(남방) 지역도 사막이다. 여름과 겨울에는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생명의 바람이다. 하지만 가을과 봄에 불어오는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죽음과 저주의 바람이다. 동쪽과 남쪽의 바람은 대체로 먼지가 많고 건조하고 뜨겁다. 성경에서 ‘동풍’은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한 바람으로 종종 소개된다.
1) 동풍
성경 속 바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가나안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의 지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나안의 동쪽은 사막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페르시아 만에서 앗수르, 하란과 가나안으로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가나안의 정동향(正東向)은 사막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뜨겁고 말라있다. 먼지와 모래가 뒤섞여 있어서 몹시 해로운 바람이다.
성경에서 동쪽에서는 저주 받은 곳이며 소외된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메마른 광야야가 있는 곳이다. 이와 더불이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말라있어 죽음의 공포를 몰고 온다. 요셉은 애굽왕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총리가 된다. 파라오가 꾸었던 꿈 중의 하나는 ‘동풍에 마른 일고 이삭’이 나온다.(창 41:6) 기근을 예시하는 꿈이다. 또한 출애굽 때 애굽을 심판하실 사용하신 바람이 동풍이다.(출 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들자 여호와께서 동풍을 보내 동풍과 함께 메뚜기가 들이닥친다. 메뚜기는 성경에서 동풍과 더불이 사람들의 먹는 식물을 먹어치우는 기근을 상징한다.
창세기 41: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출애굽기 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그 외에도 동풍을 통해 이스라엘을 종종 심판하신다.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며(시 48:7), 죄지은 이스라엘을 동풍으로 심판하듯 흩으신다.(렘 18:17) 동풍은 허무의 상징이기도 하다. 에브라임이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간다.(호 12:1) 동풍이 옴으로 수고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호 13:15) 요나를 교훈하실 때도 동풍으로 고통을 주신다.(욘 4:8) 어느 곳도 동풍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성경 구절은 발견되지 않는다. 동쪽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위험하긴 하지만 맥락상 동풍은 하나님의 징계의 수단이거나, 저주의 바람이다.
[성경 속 동쪽에대해서는 필자의 <성경의 동쪽>을 참고 바람]
2) 네 바람
네 바람은 신화나 성경이나 동일하게 등장하다. 방향이 네 방향이듯 바람도 네 방향에서 불어온다. 네 방향은 온 세상을 상징하는 완전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사방 바람’을 불러들여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신다.
예레미야 49:35-3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은 모호한 번역이다.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하늘의 네 귀퉁이에서 네 가지 루아흐(바람들)’을 오게 하여 ‘네 방향으로 흩으겠다’는 뜻이다. 네 방향으로 흩으신다는 말은 완전히 흩어 멸망시키겠다는 뜻이다. 다니엘 7:2에서도 ‘네 바람’이 불어와 큰 바다를 휘저었다고 표현한다.
[다니엘 7:1-3] 1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바다에서 부는 바닷바람은 대체로 서풍을 말한다. 하지만 다니엘 7장에서 등장하는 서풍의 개념이 아닌 혼돈과 파괴적 힘을 상징하고 있다. 곧이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단 7:9)가 등장한다. 바다는 혼돈과 원시적 시공성을 상징한다. 창조의 하나님(엘로힘)의 영이 바다 위를 운행(날아다니는) 모습은 창조의 전조 현상이다.(창 1:2) 바닷바람은 창조적 능력을 가진 바람이다. 출애굽 당시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릴 때 동풍에 메뚜기 떼를 몰고 오고, 서풍(바닷바람)은 메뚜기 떼를 홍해로 몰아넣는, 즉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출 10:19)
출애굽기 10: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이처럼 네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저마다의 특징을 갖지만 네 방향이 동시에 사용될 때는 ‘모든 곳’ 또는 ‘전부’라는 뜻을 가진다.
3) 하나님의 바람 날개
시편에는 독특한 표현이 등장한다. 구름으로 수레를 삼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사신으로 삼으신다는 표현이다.
[시편 104:3-4]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바람에 날개가 달여 있으며, 하나님은 그 바람을 수레처럼 타고 다니신다. 아니면 지니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처럼. 비슷한 표현이 삼하 22:1과 시편 18:11과 시편 104:3에 등장한다.
사무엘하 22: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시편 18: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시편 104: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날개는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자유와 독립적 존재를 상징한다.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신다는 말은 어떤 공간이나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신적 속성을 말한다. 성경은 고대근동신화와 상당히 닮아 있는 듯 하지만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고대근동신화는 바람이 곧 신이다. 그러나 성경은 바람은 하나님의 종 또는 수단에 불과하다. 성경 어떤 곳에도 바람을 경배의 대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바람을 사용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징계하시고, 뜻을 이루신다.
4) 하나님의 현현으로서의 바람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은 하나님의 현현으로 사용된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바람이 분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알고 아담과 하와는 나무 뒤로 숨는다.(창 3:8)
창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세벨을 피해 달아난 엘리야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왕상 19:11-13) 욥기에서는 폭풍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욥 38:1) 바람은 무형 무취한 존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바람 속에서 현현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드러낸다.
5) 생명의 바람, 호흡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으로서만 사용되지 않고 사람들의 영과 호흡으로 종종 사용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생기(루아흐)에게 예언하라 명하신다. 생기에게 사방에서 와 죽은 사람들 위로 불어 살아나게 하라 하신다.(겔 37:9) 그러자 생기(루아흐)가 그들에게 들어가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이곳에서 독특한 점은 사람에게 명령하든 생기에게 명령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생기(루아흐)를 보내 창조하신다. 그런데 안타깝게 개정개정은 생기를 ‘영’으로 의역했다.(시 104:30) 시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니고데모는 깨닫지 못한다. 예수는 니고데모를 향하여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영으로 난 사람 또한 그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곳에서 바람과 성령으로 번역된 두 단어는 동일한 ‘프뉴마(πνεῦμ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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