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신비/박영선 / 무근검
성화의 신비 /박영선 / 무근검
성화는 내 안에 주님을 채우는 과정이다.
최근 들어 구원의 서정 가운데 ‘성화’의 문제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처럼 마음을 괴롭히고 성가시게 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삼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화의 신비’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박영선 목사의 글은 단단하다. 명료할 뿐 아니라 단호하고 치밀한 주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인간적인 추론이나 사변으로 지어낸 글이 아니다. 성경에 천착한 저자의 주장들은 성경의 의미를 잘 드러낼 뿐 아니라 깊은 은혜의 세계로 이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성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성화를 살핀다. 2부에서는 1부의 정의를 근거로 성경 속의 인물들과 성화의 관련된 주제들을 연관지어 살핀다. 저자는 성화를 과정이며 ‘이루어가야 할 구원’으로 바라본다. 구원 받았으나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야 할 과정’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이것을 1장에서 상세히 다룬다. 바울은 빌립보서 2:12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구원은 받지 못한 것일까? 저자는 이것을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서의 구원을 얻은 자들이 그 신분에 걸맞는 수준이 되라는 말’(14쪽)이라 주장한다. 오래전 유행했던 구호처럼 ‘왕의 자녀답게’ 행동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인 셈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은 과정으로서의 성화론은 뛰어넘는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자녀로서 거룩함의 완성을 요구받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주께서는 아직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16-17쪽)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며 받아들이는 아들이라면 당연히 채찍질한다고 말한다.(히 12:6) ‘출생은 순간적’(39쪽)이지만, 성화는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영적 전쟁인 것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양자 삼으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날마다 거룩하게 하신다. 저자는 이것을 ‘그리스도와 묶여 하나님의 특별하고 강력한 인도함을 받고, 보호를 받고 있어서 기어코 승리와 완성의 자리로 가게 되어 있음’(41쪽)으로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 의존적인 동시에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즉 성화는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47쪽)진다.
“우리의 신분의 구원은 단번에 끝나고 완성되는 데 비하여 수준의 구원인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점진적이라는 말은 성화가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또 믿음의 현실 속에서도 실패를 맛본다는 의미입니다.”(47쪽)
성화는 과정이며, 넘어지고 또 일어서는 삶의 연속이다. 이러한 넘어짐과 일어섬의 연속은 성도 안에 남겨진 ‘자기의’를 빼고, 오직 하나님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 안에 담겨진 ‘스스로의 의지하려는 본성을 뽑아내’(176쪽)야 한다. 타락한 심성을 완전히 벗지 못한 인간은 자기비하의 겸손을 가진 동시에 사단이 뿌린 자기 의의 씨가 뿌려져 있다. 하나님은 성도 안에 남겨진 자기 의를 벗겨 내기 위해 ‘신자들에게 실패를 경험하게’(77쪽) 하신다. 성화는 이렇게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나약함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의지할 분 하나님 밖에 없음을 반복적으로 교훈하신다.
저자는 성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성령의 중요성을 두 번에 걸쳐 다룬다. 성령의 타락한 인간의 이성을 조명하심으로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을 절대 조종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의 영이시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소육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갈 5:16) 성령은 성도를 강제하지 않지만 인도하신다. 또한 깨닫게 하시고 설득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령을 좇아 행하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말고, 또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면 우리는 다 납득합니다.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소원하며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고 소원합니다.”(236쪽)
조직신학을 즐겨 읽고 공부하는 편이지만 저자처럼 성령을 설득하는 개념으로서의 성령의 역할은 무척 낯설다. 그러한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설득이란 표현은 성화의 문제를 다룰 때 지성의 기능적 측면보다는 인격적 관계를 통해 성화를 이루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연습’하여 성령의 충만한 단계에 나아가게 만든다. 성령 충만을 기나 에너지의 충전으로 이해하려는 어설픈 생각들을 수정하여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와 향유의 문제로 끌고 나간 점은 놀랍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성도간의 관계로 이어진다.
“우리는 부부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상전과 종의 관계에서, 사람이 사는 인생의 모든 정황 속에서 우리의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쉽게 결론을 내고 싶은 죄의 발작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해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져야할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256쪽)
성화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로서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로서의 과정이다. 살아가는 것은 관계 맺음을 벗어날 수 없고, 성화는 관계 맺음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인 셈이다. 하나님은 ‘작정하시고 시작하시고 간섭하시고 이루시는’(286쪽) 분이시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를 ‘써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완성시키는 것’(272쪽)이다. 그 완성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요 완성’(17쪽)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화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살고, 그 길을 걷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실패와 환난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을 따라가게 하신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우리의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 없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말이다. 그렇기에 성화는 과정이며, 전쟁이며,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인 셈이다. 짐을 하나 덜었다. 도무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못한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율법적 왜곡된 정신에 함몰되어 있음을 본다. 다시 힘을 내보자. 다시 십자가를 지고 나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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