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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Sumer)의 역사

샤마임 202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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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Sumer)의 역사

 

역사 시간에 인류의 4대 문명을 배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황하문명, 이집트 문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을 말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최초 인류가 자리 잡은 곳이며 가장 오래된 문명과 신화가 깃든 곳이다.

 

수메르 문명과 역사 중요한 이유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상들의 기원이 수메르이기 때문에,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메르는 문명을 빼놓고 구약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필자는 수메르 역사와 문명, 그리고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 구약 성경을 쉽게 하도록 돕고자 한다.

 

수메르 역사 개요

수메르 역사는 선사시대와 초기 왕조시대, 아카드 왕조 시대, 수메르 3왕조 시대, 이신-라르사 시대, 대제국들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B.C.(기원전)이다.

 

선사 시대(5500?-2900)

초기 왕조 시대(2900?~2350?)

아카드 왕조 시대(2350?~2150?)

우르 제3왕조 시대(2150?~2000?)

이신-라르사 시대(2017-1893)

대제국들의 시대(1894-539)

 

성경의 우상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메르 신화를 살펴봐야 한다. 이시기는 선사시대와 우르 제3 왕조 시대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아카드 이후 시대는 이전 시대의 신화를 변형시키고 발전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고 우르를 떠난 시기는 아카드 왕조 말기와 우르 3왕조 시대 어느 시기로 본다.

 

1) 선사 시대(?-2900)

 

모든 역사를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고고학을 통해 신화의 시대가 역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앗수르와 아카드의 발견, 그리고 수메르의 발견은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단지 신화로만 취급했던 사건들이 고고학을 통해 실제로 존재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1) 우바이드기(5000-4000)

Ubaid period

 

1919년 대영박물관과 펜실베니아박물관의 합동조사단에 의해 이라크 남부 텔 알우바이드에서 수메르 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벽돌로 된 집들과 신전, 도자기 등이 나왔다.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인 5000-400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 하류에 자리한 이곳은 에리두, 우르, 우르크 등이 근처에 자리한다. 이 시기는 수메르의 정체성이 불명확하다. 몇 번이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의 유물들은 수메르 문명 초기 단계로 알려진다. 수메르 문명이라고 확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그냥 ‘우바이드(Ubaids)’로 부른다.

 

농업과 목축을 병행한다. 유프라테스 강과 걸프만에서 어업에 종사한다. 관개시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농업이 무척 발달한 지역이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은 없었다. 부족이나 작은 소도시 형태로 존재했다.

 

(2) 우르크기(4000-3200)

 

우루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 시기이며, 도시가 발달한 시기다. 우루크는 우누그, 와르카, 에렉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가장 초기의 수메르 문명에 속한다. 창세기 10-11장에 기록된 도시들과 상관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의 특징은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급격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우르크의 하얀 신전 지구라트는 도시화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 시기부터 수메르는 주변의 어떤 지역이나 부족보다 월등한 기술과 문명을 자랑한다. 한 마디로 ‘도시 혁명’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다.

 

지구르트(Ziggrrat)는 계급의 발생과 사회적 분업 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났을 보여준다. 또한 범신론적 특징이 강했던 초기보다 신화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특별한 신에 대한 숭배 사상은 왕권을 정당화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보인다. 당시 지어진 가장 유명한 신전은 ‘하얀 사원(Whate Temple)’로 불린다. 이 신전은 당시 가장 큰 신이었던 아누(Anu)에게 바쳐진 것이다. 지구라트라는 말은 ‘놋이 솟아오른 물체’란 뜻이다. 이때의 문자는 그림과 거의 흡사한 상형문자이며 사제들만 사용했다.

sumerian white temple

 

(3) 젬뎃 나스르기(3200-2900)

 

우르크기와 다르지 않으나 도시화가 더욱 확장된 시대이다. 우르크 외에도 슈루팍, 에순나, 키쉬, 우르 등의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석기시대가 거의 끝나고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는 창세기 6-10장까지 이어지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일어난 때가 아닌가 추측된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노아의 홍수 사건은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이 시기의 유물이나 건물들에서 홍수의 흔적이 나타난다.

 

2) 초기 왕조 시대(2900?~2350?)

막강한 권력의 등장과 왕권의 등장, 세습왕조가 시작되는 시기다. 다분히 신화적인 표현들이 대거 등장한다.

 

(1) 키쉬 제1왕조(2900-2600)

대홍수 이후 왕권이 키쉬에 내려오며 23명의 왕이 2만 4510년간 다스린다. 키쉬의 왕이라는 호칭은 수메르 전체의 지배자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부의 학자들은 노아의 후손 구스가 키쉬가 아닐까 생각한다.

 

13대 왕인 에타나(Etana)는 다른 기록에 최초 등장한다. 그는 영생을 주는 탄생 식물을 구하기 위해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하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자 겁을 먹고 추락한다. 후에 알렉산더 대왕도 전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엘리야 역시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20대 왕 엔메바락게시 엘람 쪽 영토를 정복했고, 니푸르 최초의 엔린의 신전을 건설한다. 다른 문헌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기원전 2600년경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키쉬 제1왕조의 마지막 왕인 악가는 엔메바락게시의 아들로 우르크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세력을 확대하자 군대를 보내 우르크를 위협했다. 당시 우루크를 지배한 왕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 왕이었다. 길가메시에 의해 수메르의 왕권은 우르크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우르크 제1왕조(2700-2600)

 

신전의 이름을 따라 에안나 왕조로 불리기도 한다. 에안나는사랑의 신인 이난나(인안나, 바벨론은 이쉬타르)에게 봉헌된 대선전이 자리한다. 우르크는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도시가 된다. 이안나 신전이 위치한  신성한 쿨랍(kullab)지역에서 대령의 설형문자들이 발견된다. 우루크는 이전의 도시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최초의 문명 도시국가이다. 에안나 신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건축들이 들어섰다.

 

태양신 우투의 아들로 불리는 메스키악가쉐르가 우르크 왕조를 건립했다. 12명의 왕들이 2,310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대 왕 메스키악가쉐르

2대 왕 엔메르카르

엔메르카르는 에리두에 엔키의 바다 신전인 아브주를 짓기 위해 금속과 암석이 풍부한 아라타를 정복하여 했다. 엔메르카르는 아라타에 에안나의 여왕 이난나가 자신에게 아라타를 굴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는 말과 함께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한다. 이후 아라타는 우르크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3대 왕 루갈반다

아카드판 <길가메시 서사시>에 길가메시는 루갈반다와 닌눈 여신 아들로 언급된다. 길가메시는 반인반신이다.

4대 왕 두무지

두무지는 목자, 또는 어부이다. 도무지는 홍수 이전 바드티비라의 왕이었다. 홍수 이후 도무지는 우루크의 왕으로 소개된다. 그는 이난나 여신과 결혼했고, 이난나를 대신해 지하세계로 내려가 죽임을 당했다고 부활한다. 이 부분은 성경의 바알 신화와 거의 일치한다. 또한 성경에는 두무지를 위하여 슬피 우는 날도 등장한다.

  • 에스겔 8: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5대 왕 길가메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이며, 실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길가메시 이전까지 수메르는 키쉬 왕조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길가메시에 의해 주도권의 우루크로 옮겨진다. 길가메시는 거대한 성벽을 쌓았고, 수많은 건축사업을 했다.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영웅과의 전쟁과 우정, 집을 떠나 방황하고, 악마를 무찌르고, 영생을 찾으러 길을 떠나 실패하고 돌아온 이야기들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은 <길가메시 서사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헬라클레스와 오딧세이, 일리아드 등의 신화도 결국 길가메시 서사시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엔키두와 길가메시, 서로 적이었으나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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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왕 루갈키둔

이 왕 때에 왕원이 우림(다른 말로 우르 Ur)으로 넘어간다.

 

(3) 우르 제1왕조(2600-2450)

키쉬와 우루크가 대립할 때 우르의 메스안네파다가 세력을 키워 두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수메르의 지배자가 된다. 우르 왕조는 177년간 5명의 왕이 지배했다.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이라 더욱 유명한 곳이다. 고고학 발견에 의하면 우르는 문화적으로 굉장히 융성했다고 한다. 우르의 왕릉에서는 사제와 시녀들이 함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순장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안타깝게 우르 1 왕조는 아완에게 패하여 왕권이 아완으로 넘어간다. 아완 왕조는 엘람족이다.

 

엘람 왕조는 3명이 왕이 356년 통치한다.

아완 왕조는 초기 수메르 왕조인 키쉬 왕조에게 패하여 키쉬의 두 번째 왕조가 시작된다. 키쉬 왕조는 8명의 왕이 3195년 동안 통치한다.

이후 하미자 왕조에 넘어간다. 하미지는 한 명의 왕이 360년 통치한다.

하마지는 다시 우루크 왕조에게 패한다.

 

(4) 우루크 제2왕조(2450-2350)

엔샤쿠샨나(Enshakushanna)가 하마지, 아카드, 키쉬, 니푸르 등을 정복하고 수메르 전채 왕으로 등극한다.

엔샤쿠샨나 이름이 들어간 파편

[사진출처 위키디피아 엔샤쿠샨나]

 

모든 땅의 왕 엔릴에게, 수메르 땅의 군주이자 국가의 왕인 엔샤쿠샨나 신들이 그에게 명령했을 때, 그는 키시를 해고했다 (그리고) Kish의 왕 Enbi-Ishtar를 사로잡았다. Kish의 지도자와 Akshak의 지도자, (때) 두 도시가 모두 파괴되었을 때 ... (누락) (?) [..]에서 그는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동상, 귀금속, 청금석, 목재와 보물을 [N]ippur에 있는 Enlil 신에게 바쳤습니다. [출처 "CDLI 발견 텍스트"]

엔샤쿠산나는 6년 동안 통치했고, 이후 두 명의 왕이 127년을 통치한다. 이후 우르에게 왕권이 넘어간다.

 

(5) 라가쉬 제1왕조(2500-2350)

라가쉬는 현재 이라크 남부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이 합류하는 지역이다. 오래된 수메르의 도시인 이곳은 한 때 수메르 전체를 지배할 만큼 강력한 왕이었다. 하지만 후대에 왕조 목록은 라가쉬 왕들을 모두 누락시켰다. 의도적으로 보인다. 라가쉬 왕조는 기원전 2500년경 우르난쉐애 의해 창설된다. 그의 손자 에안나툼(Eannatum)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다.

라가쉬 왕조를 창건한 에안나툼 1세

에안나툼은 먼저 동쪽 엘람족을 정복하고 움마를 정복하고, 우루크, 우르, 아크샤크, 키쉬를 정복하여 수메르의 전체 지배자로 올라선다. 움마와의 잦은 국경 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다. 우루카기나가가 시도한 개혁은 아직도 기록에 남아 있다. 라가쉬 지배 아래 수메르 왕국에 키쉬의 세 번째 왕조인 쿠그바우 또는 쿠바바라는 여왕이 등장한다. 수메르 전 역사에서 유일한 여왕이다.

 

아카드 왕조 시대(2350?~2150?)

 

(1) 사르곤 제국의 건설(2334-2279)

(2) 나람신(2254-2218)

 

구티족의 지배

구티인은 수메르 북동부 코카서스의 자그로스 산맥지대에서 내려온 반야만족들이다. 일부의 학자들은 현대의 쿠르드족으로 본다. 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쿠티족은 기원전 2100년 우루크의 우쿠헤갈의 연합군에 의해 쫓겨난다. 쿠티족은 문자를 쓰지 않았다. 마치 중국이 금나라에 지배당한 시기와 비슷하다. 우투헤갈이 구티족의 마지막 왕인 티리간과 그 가족들을 발로 목을 밟았다.

 

수메르의 재 전성시대

수메르 민족의 재 부흥 기간이다. 

(1) 라가쉬의 구데아

구에다는 쿠티족에 의해 무너진 신전을 재건한다. 바벨론 포로 후 유대민족과 비슷하다.

(2) 우르 제3왕조(2112-2004?)

이 시대에 지구라트가 지어진다. 우르헤갈(Utu-hegal)이 쿠쉬족을 쫓아내고 수메르를 재건한다. 하지만 우르헤갈의부하였던 우르남무가 후르헤갈의 왕위를 쿠테타를 일으켜 찬탈하여 자신의 왕조를 세운다. 이것이 우르 제3왕조이다.

우르남무 법전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보다 최소한 3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1950년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연구교수인 크레이머가 해독했다. 우르남부 법전의 일부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실명시켰다면 1/2 세켈의 은을 내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발을 잘랐다면 10세켈의 은을 내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렸다면 2세켈의 은을 내야 한다.

 

왕명 / 전통 연표 / 근년 연표
우트-헤갈(Utu-hegal) 2119-2113 / 2055-2048
우르-남무(Ur-Nammu) 2112-c. 2095 / 2047-2030
슐기(Shulgi) 2094-2047 / 2029-1982
아마르-신(Amar-Sin) 2046-2037 / 1981-1973
슈-신(Shu-Sin) 2037-2027 / 1972-1964
이비-신(Ibbi-Sin) 2026-2004? / 1963-1940

 

슐기(2094-2047)

슐기 왕 시대에 우르남무 왕조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이 한다. 48년의 집권기 동안 태평성대를 이룬다. 슐기는 두무지와 이난나의 결혼을 재현한다. 그는 뛰어난 군통솔력과 행정가인 동시에 문화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가 시작한 지구라트를 완성한다.

슐기가 완성한 지구라트 현 이라크 소재

[사진출처 위키디피아]

3대와 아마르 신은 슐기의 아들로어서 북쪽 산악지대 이란계 부족에 대해 정복 전쟁을 일으킨다. 앗수르를 정복하고 자리쿰을 총독으로 세운다. 에리두에 지구라트 건설을 시작하지만 이 때 토양의 염분화가 일어나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리두를 떠난다. 이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곳으로 보인다. 이후 이민족의 침입으로 세력이 약회된다.

4대 왕 슈신은 서쪽으로부터 아모리인들을 막기 위해 마르투 장벽을 세우지만 허사였다. 그의 아들 5대왕 이비신은 우르와 나푸르에 요새를 쌓고 방비하지만 식민상태의 나라들이 독립하기 시작한다. 동쪽의 엘람족도 독립하고, 이비신의 신하였던 이쉬비 이라가 남쪽 이신에서 독립 왕조를 세운다. 이비신왕 때 우르는 최악의 상태였다. 이민족의 침입과 기근으로 인해 곡물가격이 60배나 뛰었다고 한다.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전지역에 기근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신-라르사 시대(2017-1893)

(1) 이신 왕조(2017-1794)

이비신 왕의 부하 이쉬비 이라는 이신에서 이신 왕조를 세운다. 그는 힘을 길러 우르를 정복하고 엘람인들을 쫓아낸다. 우루크와 라가쉬, 니푸르를 정복하여 수메르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여 패권국가가 된다. 이신왕조는 220년 동안 15 왕이 지배했다. 하지만 에순나와 앗수르의 저항에 부딪혀 우르 제3왕조 만큼은 넓지 않았다.

(2) 라르사 왕조(2025-1762)

라르사는 태양신 우투를 섬긴다. 기원전 1930년 5대왕인 궁구눔이 이신에게서 독립한다. 기원전 1800년경 림신 1세 시대에 전성기를 구사한다. 이신, 우루크, 바빌론 연합 군대를 격파하고 1794년 이신왕국까지 멸망시킨다. 림신은 이신왕조를 정복한 후 연호를 새롭게 한다 하지만 30년 후인 1764년 그 유명한 바빌론이 함무라비 왕에 의해 멸망 당한다.

 

대제국들의 시대(1894-539)

(1) 바빌로니아 제국(1894-1595년)

림신이 이신을 정복할 때 북쪽에서 셈족 계열인 아모리 부족의 수무아붐이라는 왕이 1894년 바빌론니아를 창건한다. 아카드가 수도로 삼은 지역에서 새로운 아모리인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6대 함무라비

창세기 14장 시날왕 아므라벨을 함무라비로 보는 이들도 있다.

바빌론 사람들은 마르둑을 주신으로 섬기고 발 또는 벨로 불렀다. 가나안의 바알이 마르둑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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