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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로강단-에바다(이성복목사)

샤마임 2010.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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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

(마가복음 7:31-37)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는 엄청 발달하였습니다. 핸드폰과 인터넷의 통신수단은 어디서나 우리의 의사를 서로 전달할 수 있도록 우리 손에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요? 열린 마음을 가진 따스한 사회라고 할까 아니면 닫히고 폐쇄된 사회라고 말할까요? 우리 가정은 어떠합니까? 가정은 열린 가정으로서 서로 충분한 대화가 오가며 듣고 말하는데 열린 가정입니까? 아님 일주일 동안 살면서 입 한번 열지 않고 대화 실종의 가정입니까? 그럼 교회는 어떠합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열린 대화로 교제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님 닫히고 폐쇄되어진 형식적 교제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시간 우리 귀와 입을 만져 주셔서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첫째로, 믿음의 고백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역의 갈릴리 호수로 가셨을 때 사람들이 귀먹고 말이 불명확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고쳐주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청년의 상태는 육적인 문제만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듣지 못함으로 복음을 들을 수 없고 말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9-10절에서 이러한 상태를 영적인 깨달음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며 스데반을 죽이려던 사람들도 귀를 막고 달렸습니다. 인간이 불행은 하나님과의 닫힌 관계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닫힘의 상태는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임하면 묶이고 닫힌 모든 상태가 열리고 풀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즉 자유가 주어집니다. 베드로의 귀와 입이 열리자 그는 곧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귀와 입이 닫혀 참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둘째로, 사랑의 고백이 열립니다.

에바다의 역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에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인간관계의 소통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귀와 입이 닫힌 상태에서는 참된 사랑을 할 수 없고 오해와 비판가운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귀먹은 자를 고칠 때 방법은 그들에게 익숙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타인의 다양성과 차이점을 수용하지 못할 때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 긍휼과 동정의 마음이 에바다 외침보다 우선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질 때 귀와 입이 열려 사랑을 고백하며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찬양과 전도가 열립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경탄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고백하기를 ‘그가 모든 것을 다 잘하였도다’고 말합니다. 창 1:31절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또한 이사야의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짐을 그들이 고백하게 됩니다. 데가볼리는 예수님을 배척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자 이제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도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에바다의 역사는 예수님을 배척하던 자에서 침묵하지 않고 예수님을 높이고 자랑하며 전도하는 자들로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영적 귀와 입이 열릴 때, 주님이 우리의 닫힌 귀와 입을 만져 주실 때 우리는 참된 믿음을 고백하며, 이웃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며, 찬양과 전도의 입술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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