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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묵상] 고전 1:18 십자가의 도

샤마임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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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음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철학과 논리가 발달한 지역이었고, 헬라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적과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십자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도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로마 제국이 죄인과 반역자에게 내리는 가장 치욕적이고 잔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능력으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헬라인들은 논리와 철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십자가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가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라고 선포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패배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로 복음을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지혜를 뒤엎으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논리와 판단을 내려놓고, 오직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다

바울은 십자가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구원의 능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며, 죄인이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하신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양한 제사를 명하셨고, 그중에서도 속죄제와 번제는 죄를 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레위기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흘려져야 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의 대가가 사망이며,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 제도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매년 반복해서 짐승을 잡아야 했으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임시적인 방법에 불과했습니다. 히브리서 10:4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결국 모든 제사는 완전한 속죄를 위한 예표였으며, 참된 속죄를 위해서는 영원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 영원한 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제사의 성취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고 증거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단 한 번으로 모든 속죄를 이루셨으며, 더 이상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패배라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승리를 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단순한 종교적 상징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논리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매일 붙들어야 하는 생명의 길이며, 죄에서 자유케 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

십자가를 지는 삶은 단순히 고난을 감수하는 삶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그분의 희생과 순종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매일 실천해야 하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도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희생과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낮아져서 섬기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는 삶은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고난만이 아니라, 영광을 향한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세상과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을 추구하지만, 십자가는 낮아짐과 희생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 성공이라 말하지만,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승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비웃고, 때로는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고민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편한 길을 가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의 승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십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18은 십자가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임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 여기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죄에서 자유하게 하며,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길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에서 나아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고난주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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