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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인가?

샤마임 201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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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인가?


조선닷컴 블로그에서 퍼온 글이다.

 

"내가 14세 때 아버지는 무식하셔서 옆에 계신 것도 참기 힘들었다(be so ignorant I could hardly stand to have him around). 그런데 21세가 됐을 때는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유식해지셨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은 아버지의 지혜를 몰라봤던 자신의 무지를 역설적으로 한탄(paradoxically bemoan his ignorance)했다.

▲4세: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다
▲7세:엄청 많은 것을 아신다(know a whole lot)
▲12세:저것도 모르시네
▲14세:고리타분하시다니까(be old-fashioned)
▲21세:구제불능 구닥다리이셔(be hopelessly out of date)
▲35세:결정하기 전에 아버지 의견부터 여쭤봐야겠어
▲50세: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60세:정말 많은 걸 아셨던 분이야
▲65세:한번만 더 아버지랑 상의해볼 수 있다면" = 작자 미상(Author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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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한번 부르고 싶지만 그리 편하지 않았던 이름이다. 친구 중의 한명은 아버지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싫어했다. 난 아직도 그 친구가 왜 아버지를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전혀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를 듣을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의 소리가 큰 현대의 시류  속에서 아버지 신학을 운운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가부장적 이미지로 왜곡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신약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순수함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 우린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여 하늘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육신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를 인지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다.

나에게 두 아들이 있다. 아홉살과 열한살 두 명의 아들을 둔 엄연한 아버지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특히 둘째 녀석은 내가 뭘 시키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면 으례히, "아빠는 머리만큼 싫다"라고 외치곤 한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마음이 머리 끝, 즉 정말 싫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아들은 아버지인 내가 보이지 않으면 늘 찾는다는 것을...... 아들의 꿈은 목사이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외식을 자주 하기 때문에 목사를 하면 외식을 자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먹보인 아들다운 이유이다.


아들은 아빠를 닮아간다.

아들이 아빠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어쨋든 닮아간다. 나 또한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딱딱하고 엄하고 불친절했다. 그래서 속으로 '난 절대로 아빠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다짐! 난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있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아들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왜 부모를 닮아가는 것일까? 무명의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영원한 '신'이다. 철이 들면 들수록 아버지를 닮고 싶어하고, 아버지의 의중?을 묻고 싶어한다. 


왜 아버지를 원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나보다 앞선 사람이다.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가신 분이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옳게 처리하거나 판단하지는 못하고, 않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인생의 지혜를 담지한 분이다. 먼서 사셧기에 먼저 아파하고, 먼저 슬퍼하고 먼저 실패해 보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로 남는다. 인생은 늘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원천이요, 꼭 필요한 조언자인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자.

결론은 이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란 어떤 아버지일까? 하나님을 닮은 아버지이다.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버지가 최고의 아버지인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으니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닮아야 할 것이고, 아들은 나의 모습을 보며 하늘 아버지를 닮아갈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버지가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는데 게으를 수가 있겠는가? 당치도 않는 일이다.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기 위해서 나는 몇 가지의 다짐을 한다.


먼저, 날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

성경은 하늘 아버지의 말씀이다. 자주 읽어야 아버지의 뜻을 알 것이고 뜻을 알아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연히 날마다 말씀을 읽고 순종하는 삶이야 말로 가장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두번째는  하늘 아버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말씀을 많이 안다면... 단순한 정보가 아닌 순종을 통한 앎으로 말이다... 아버지의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성경 속에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알았다. 그리고 선지자들이다. 특히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이끌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되자. 그리고 그 관점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참 나는 부족한 존재이다. 말씀에 대한 게으름, 용서과 관용에 대한 속좁은 견해들 하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족함이 넘쳐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여튼 어쨋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아버지를 더 닮아가도록 하자. 그 것 말고는 답이 없으니 말이다.


사랑하면 닮는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지고, 더 닮고 싶어지고,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한다. 사랑하면 말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자. 모두를 사랑하자. 늘 사랑을 대하자. 우리 인생의 모든 원리를 사랑의 원리이다.(고전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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