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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혁명적이고 위험한 호칭!

샤마임 201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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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가수(나는 가수다)가 인기다. 무모한 도전이다. 획기적인 발상이다 등의 극단의 관점이 있기는 하지만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가수'를 보지 않는다. 주일 저녁시간에 방송하는 것이기고 하거니와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가수를 알게된 것도 불과 몇 주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가지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은 나가수를 녹화한 동영상을 다음에 들어가 보곤 한다.


8월 21일 방영되었던 인순이의 아버지는 감동이었다.(동영상 바로보기가까이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아버지라는 묘한 관계를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노래로 풀어냈다. 특히 노래 앞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풀어낸 멘트는 아버지에 대한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었다.

인순이 아버지 가사

멘트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앝의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부디 사랑한단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한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점점 멀어져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울 때가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외출하시고 집으로 들어오실 때면 언제나 '허험'하고 헛기침을 하고 들어오셨다. 그러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벌여놓은 일들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우리의 어설픈 장난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가 저질로 놓은 일에 대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곧바로 큰 방으로 들어가시거나 소마굿간에 가셔서 여물을 주곤하셨다. 시간을 번 우리는 긴장을 하면서 벌인 일을 마무리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들어오시는 아버지 앞에 일렬 행대로 늘어서서 "아버지 들어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올렸다.

가까이 있지만 단 한번도 가까이 가지 못했던 아버지다.  이런 아버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육성회비나 학교에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찾아가서 부탁했고, 불평도 고마움도 엄마에게 늘어 놓았다. 엄마는 친구처럼 다정스러워웠고 때로는 격식이 없이 대하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인순이 말했던것 처럼 넘을수 없는 산이었다. 그러나 나의 나이도 마흔이 넘어가면서 아버지는 작은 둔덕이 되었고, 나도 머리가 세어가면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상상할 수 없는 혁명적 언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아버지'이다.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존귀하고 엄위로운 분이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엄위로우신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종용하고 있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는 혁명적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는 온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어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아이가 황제에게 달려가서 그 품에 안기는 것이다. 그러면 대신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입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 놀라움은 부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모든 격식과 절차를 훨씬 뛰어넘는 단어가 바로 '아버지'라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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