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 기니스의 저항 / 김진선 옮김 / 토기장이
오스 기니스의 저항
오스 기니스 / 김진선 옮김 / 토기장이
오스 기니스, 그는 똑똑하다. 그리고 다부지다. 또한 명징하게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필자의 기억에 오스 기니스라는 이름은 그의 책 <소명>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나보다 몇 살 어렸던 어떤 형제가 그 책을 읽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 형제가 신학을 하지 않았다면 오스 기니스는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신학대학원에 들어갔고,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오스 기니스는 잊혔다. 그리고 다시 나의 기억을 침범해 오는 사건이 있었다. 정연 출판사의 책을 판매하는 곳에 오스 기니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책의 이름은 C.S. Lewis의 사단의 편지인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와 너무나 닮은 <악마의 비밀문서를 훔치다>였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1983년에 출간된 <제 무덤 파기 작전>인데,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제목과 내용이 일부 바뀐 것이다. 교회를 전복 시키려는 사단의 전략 보고서라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 책뿐 아니라 필자가 경험한 오스 기니스는 세속화와 이슬람에 대한 걱정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현대교회가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세속화의 문제와 이슬람에 대한 깊은 염려를 안고 있다. 어쩌면 허물어져가는 서구교회를 부둥켜안고 살려 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저항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몸부림’이란 언어로 대치시켜도 될 성싶다. 오스 기니스의 능력은 <인생>과 <르네상스> 등에서 보여준 대로 세상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악과 교회를 점령하려는 세속화를 통찰력 있게 예견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가 추천한 문장일 것이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독자 자신 안에 인지하지 못한 채 종양처럼 피어있는 현대성을 드러내어 거침없이 수술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성, 그러니까 현대교회가 스스로 몰락하려는 근원적 원인이 바로 현대성이다. 이 책은 교회를 몰락으로 이끌고 가는 현대성에 대한 경고라 할 것이다. 저자는 현대교회를 진단하면서 유럽 교회처럼 미국도, 다른 세계 교회도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문과 맺은 글을 빼면 모두 7장으로 구분했다. 필자의 견해로 서문과 제1장은 서론격에 해당된다. 지금 당면한 교회의 위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2장부터 4장까지는 교회를 공격해 오는 악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집중한다. 마지막 5장에서 7장까지는 시선을 교회 안으로 돌려,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제안한다.
현대교회는 ‘발전된 현대성’에게 속고 있다. 그 현대성은 발전과 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한다. ‘지금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절체절명의 중대한 시기에 살고’(21쪽)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다니지만 참 삶은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무종교인‘으로 커밍아웃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현대 교회의 위기 네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유대교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두 번째는 진보 세속 주의의 거침 계속된 승리, 세 번째는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이 붕괴됨, 네 번째는 전반적인 상황이 서구의 모든 교회에 이중적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네 번째 위기는 뭘 말하는지 약간 모호하다. 어쨌든 저자는 현대성이 가져온 위기를 초대교회 3세기 동안의 로마의 핍박과 16세기 이슬람의 위협에 비길 만하다고 말한다.(23쪽) 저자는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려는 성향아 도드라진다. 이러한 성향은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특징들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러한 신앙적 성향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자 그럼 저자가 염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1장에서 그는 몇 가지의 이유를 밝힌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파이로 테크놀로지에서 바이로 테크놀로지로.
‘파이로 테크놀로지’(pyrotechnology)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불의 공학에 기초한 것으로 본다. 아마도 산업 시대를 지칭하는 듯하다. ‘바이오 테크롤로지’(Biotechnology)는 말 그대로 21세기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생명 공학을 말한다. 저자는 연사의 흐름을 짚어 내면서 ‘인간 근육의 힘에서 불의 힘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한다. 고대 또는 원시 시대에서 산업 혁명의 시대로 돌입한 것을 두고 말한다. 불의 시대는 참으로 위대한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제 ‘파이로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57쪽) 현대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시대로 돌입했고, 기술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을 전혀 필요 없는 꿈을 실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59쪽)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두 번째 변화는 산업 혁명을 기반으로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핵심은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정확히 인간의 상호 연결성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는 과정’(62쪽)이다. 저자는 곧장 세계화의 배후에 있는 ‘정보 기술’을 지적한다. 이것은 인터넷,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가져온 정보 혁명이다. 정보 혁명의 시대는 여유가 아닌 바쁨을, 소통이 아닌 악이 공적으로 성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발전된 현대 세계에서는 전 지구적 상호 연결성과 접근성이라는 선악의 개입을 차단한 차가운 가면을 쓴 악이 마음껏 스스로를 과시한다. 이제 악은 수백만 사람들에게 권리의 문제이자 자연스러운 소비자의 선택 문제이다.”(66쪽)
저자의 염려는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감추어지고 일부의 전용물이었던 퇴폐적인 것들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상품처럼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단일한 현대성에서 다양한 현대성으로
세 번째 변화는 다양성이다. ‘현대성은 서구적이고, 세계화는 서구화이자 미국화, 심지어 코카-식민화를 의미’(68쪽)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일한 현대성을 의미한다. 사무엘 헌팅턴이 예언한 것처럼 냉전의 종말은 민족과 문명의 발흥을 가져왔다. 즉 ‘현대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국가와 지구 상의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69쪽) 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을 세 가지로 진단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하게 신앙을 어떻게 파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는다. 2장 ‘지금까지 없었던 거대한 도전’에서 그는 좀 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한다. 모던이 아닌 모더니티, 즉 현대성이야말로 ‘교회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도전’(81쪽)인 것이다. 저자는 현대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지 않는다. 다만 ‘현대성은 사상이 문제보다 훨씬 광범위하다.’(80쪽) 필자의 독법에 의하면 저자가 말하는 현대성은 가치관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대성에 세 가지 왜곡이 일어났다. 하나는 ‘권위의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선호의 입장으로’(84쪽), 두 번째는 ‘종교가 통합이 아닌 분리의 입장에 서도록 부추기는 현대 세계의 경향성’(97쪽), 세 번째는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세속적 영영’(101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모호하다. 그러나 의도하는 바는 정확하다. 그것은 기독교가 공격받고 있으며, 진리가 개인의 취향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변한다. 그러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시대는 변화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변화라는 우상에 절하기를 거부해야 한다.’(257쪽) 변화는 허상이다. 기독교는 변화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보존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 맞서 싸울 때 필요한 도구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그분의 권위 있는 말씀인 성경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것’(277쪽)이라고 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영적 무기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상에 참여하기이고, 둘째는 세상을 분별하기이고, 셋째는 주의 진리와 부르심을 부정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기이다.”(285쪽)
신앙을 지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시대의 징조를 읽어 영을 시험하며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307쪽)이다. 역사는 변화하고 진보한다. 그러나 그 변화와 진보는 옳은 것도 있지만 진리를 훼손하고 도전하는 요소들도 공존한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서는 것,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에 천착하는 것이다. 근대 기독교는 늘 위기였다. 그것은 탈권위화로 인해 배타적 성향의 기독교에게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독교가 위기에 빠지지 않은 적이 있던가? 역사는 늘 변하고, 새 옷을 입는다. 가짜는 많으나 참은 단 하나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힘은 진짜를 바르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대성은 모든 것의 상대화와 모호함을 가져왔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 현대성은 기독교를 사막의 모래알처럼 찾기 힘든 선택해야 할 어떤 것으로 전락시켰지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생명은 반드시 성장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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