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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6 - 29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샤마임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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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6 - 29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한다며 박해합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며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아들을 공경하는 자가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말합니다.

 

본문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묵상]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고침을 받은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고 곧바로 유대인들을 찾아가 자기를 고친 사람이 예수라고 고자질합니다. 이 사람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교활한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고쳐 주셨을까요?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때 착한 사람만 고쳐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17절)며 응수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엄청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되게 말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곧 예수님을 신성모독한 자로 죄를 추가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개념을 전혀 새롭게 정의하십니다. 지금까지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날'입니니다. 모세로부터 지금까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돌로 쳐 죽였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의 의도는 탐욕을 막으려는 수동적인 방법입니다. 쉼을 통하여 안식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15:32-36
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15: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15: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15: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의 본래적 원의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지만 진정한 쉼은 '회복'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38년 된 사람의 안식은 병에서 놓임을 받고 이전의 온전한 회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에도 일을 하는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의 일을 말이죠.

 

관계: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보이신 일들을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부분은 철저히 삼위일체론적 표현이며, 분명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철저히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공관복음서가 순종하시는 아들을 강조한다면 요한복음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는 아들 하나님'(김회권_요한복음)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1:1에서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은 스스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며, 아버지께서 보이신 것을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철저히 아버지와 연합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큰 일을 보이시고 행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표현이라면 오직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님의 장자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면에서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시킵니다.

  • 출애굽기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호세아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권세: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표현이 유대인들에게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혁명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 어떤 유대인 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돌로 치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언은 미친 자의 헛소리든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거나 안 믿는 것은 듣는 청중의 몫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권세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며(21절), 심판을 행하며(22절), 아들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24절), 아들의 음성을 들은 자들을 살게 된다(25절)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능력을 아들을 통해 이루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 위임된 사역은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매일성경 묵상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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