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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16-29 예수님을 찾은 이유

샤마임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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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16-29 예수님을 찾은 이유

[본문]

  • 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 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 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 6: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 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묵상]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헬라어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서술로 '나다'라는 뜻입니다.

20 ὁ δὲ λέγει αὐτοῖς 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요한복음에서는 Ἐγώ εἰμι 기법을 7번 사용하여 '나는 생명의 떡이다'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언합니다.(참 요한복음 7가지 나는 ~이다) 구약의 여호와라는 호칭은 '나다'라는 의미으로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과 타자성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헬라어를 사용해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기적 이후 배를 타고 바다는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십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때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납니다. 노를 저어 가보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오고 계신 것을 봅니다. 처음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놀랄 때 예수님께서는 '내니 두려워 말라'(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하십니다.

 

폭풍과 바람을 정복하신 예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의 길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광야에서 만나라면 폭풍 위를 건너오신 사건을 홍해 도하 사건과 연결됩니다. 요한은 철저히 예수님의 행적은 구약의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천하와 만물과 자연을 다스리고 계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에 상응하는 모세보다 더 큰 자인 예수님의 유월절이며,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표적은 홍해 도하에 상응하는 표적인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대신하여, 유대인들의 홍해 도하를 대신하는 구원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하려는 목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김회권_요한복음)

 

제자들이 놀라고 두려워한 것은 폭풍이 아니라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마태복음(14장)과 마가복음(6장)을 보면 예수님은 새벽 3-4시경에 찾아왔습니다. 저녁부터 7시간 가까이 폭풍과 씨름했지만 고작 4km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해도 되지 않는 일은 예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자연을 압도하고 발로 밟으시는 예수님의 권세 앞에 제자들은 날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주님의 우리의 주님이시니까요. 주님께서 배에 오르자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라고 말합니다.

 

나를 찾는 까닭

사람들이 예수님과 일행을 찾아 다녔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말합니다.

  • "랍비여 언제 여기에 계셨나이니까?"(25절)

그들은 왜 그렇게 예수님을 찾을까요? 주님은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한 번 재미?를 봤습니다. 예수님만 잘 따라다니면 밥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다닐까요? 사업 때문에? 명예 때문에? 혹시 우리의 속내를 주님은 아실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썩을 양식 영생하는 양식

주님은 이들의 마음을 간파하시고, 한 마디 충고하십니다.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경건한 척 주님께 묻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게 뭘까요? 떡을 보지 말고 떡을 주시는 예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바른 것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의 일을 한다 하면서도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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