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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샤마임 201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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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차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다.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이었던 장자의 죽음을 피해가는 유일한 방법으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서 쓴풀과 함께 고기를 구워 급히 먹어야 했다. 뿌려진 피와 먹히는 음식으로서의 어린양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저주를 이겨냈다.

 

1500년이 흐른 뒤에 죽음당한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림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얼마나 될까?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온 인류가 구원받고도 남는다.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 어두의 권세를 단박에 깨뜨리셨으며, 모든 것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 역설이다. 믿기 힘든 아이러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비로움으로 가득찬 하나님 나라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죽음으로 생명을 선물로 주고 있다. 난 주 보혈 아래 있다. 즉 죽음 아래 있다. 죽음으로 숨겨진 생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네 저 어둠의 권세는 힘이 없네 주 보혈의 능력으로 원수가 날 정죄할 때도 난 의롭게 설 수 없네 난 더이상 정죄함 없네 난 주 부혈 아래있네 난 주 보혈 아래있네 그 피로 죄사사했네 하나님의 긍휼 날 거룩케 하시었네 난 주보혈 아래있네 난 원수의 어떠한 공격에도 더이상 넘어 지지 않네 난 주보혈 아래있네

 

 

 

 

물과 피를 함께 쏟으신 십자가 위의 어린양, 그분은 시간의 강을 가로지르며 구속사의 심장을 뛰게 하신 분입니다. 유월절 밤, 이스라엘 자손의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는 단순한 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넘게 하는 표식이자, 앞으로 올 참된 구원의 그림자였습니다. 찬양의 고백처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네”라는 이 문장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영적 세계의 열쇠이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의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어린양이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시고, 정죄받을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 온 인류의 정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 보혈은 단지 속죄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갈라졌던 장막을 찢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은 어둠의 권세를 무너뜨리며, 죄와 사망의 정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찬양의 고백처럼 “저 어둠의 권세는 힘이 없네 주 보혈의 능력으로”라는 선언은 단지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자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보혈 아래 선 자는, 원수가 정죄할 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피가 법정에서 의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날 정죄할 때도 난 의롭게 설 수 없네”라는 절망 뒤에는 “난 더이상 정죄함 없네”라는 확신이 이어집니다. 이 묵상의 깊은 수면 아래에는 로마서 8장의 진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보혈 아래 있는 인생은 남성적인 강인함과 여성적인 우아함이 함께 스며있는 삶입니다. 강인함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근거 위에 서는 힘이며, 우아함은 그 피의 은혜를 아는 자의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강하게, 사람 앞에서는 부드럽게. 그 피가 만든 정체성은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은혜 앞에서는 무릎 꿇는 자의 심장을 가집니다.

 

“난 주 보혈 아래있네” 이 반복적인 고백은, 마치 전쟁터에서 방패 아래 몸을 숨긴 전사가 매순간 되새기는 생존의 진리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신부가 신랑의 품에 안겨 평안을 누리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피는 우리를 정죄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은 단지 죄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난 원수의 어떠한 공격에도 더이상 넘어지지 않네”라는 이 고백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뒤따르는 자들의 노래입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유, 주의 피가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피는 과거의 죄를 씻었을 뿐 아니라, 현재의 싸움에 승리를 주며, 미래의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보혈의 구속사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능력이 되며, 앞으로도 영원히 찬란한 구속의 증거로 우리 삶을 이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그리고 이 고백은 피로 새긴 언약의 노래이며,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습니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는,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정죄에서 의로움으로, 절망에서 영광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강입니다. 그 강 속에 잠기운 자는 더 이상 예전의 자아가 아니라, 새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담대히 고백하십시오. “난 주 보혈 아래 있네.” 그 고백이 곧 생명이며,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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