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7장 묵상과 강해
하나님을 잊은 결과
이사야 17장은 다메섹, 곧 아람의 수도와 에브라임, 곧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단순히 정치적 붕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힘과 동맹에 의지한 결과로서의 징계이며, 동시에 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회복의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도 여전히 구속사의 목적이 흐르고 있으며, 이 장은 하나님을 잊지 말고 의지해야 할 이유를 영적으로 깨닫게 해줍니다.
무너지는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영광
17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되리라"(17:1). 다메섹은 당시 아람 왕국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과 함께 남유다를 위협하던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다메섹의 멸망을 예언하십니다. 다메섹은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한 도시로 남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예언은 북이스라엘, 곧 에브라임 지파의 중심 지역에 대한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망하리니"(17:3).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대적했던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겉보기엔 강력한 연합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동맹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이 이룬 결탁은 결국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에브라임과 다메섹의 심판은 단순한 정치·군사적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사람을 의지한 결과입니다. 선지자 호세아도 북이스라엘의 죄를 끊임없이 지적하며 그들의 외교적 협상이 도리어 심판을 부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사야도 동일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등질 때, 아무리 화려한 성읍이라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인 영광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이 견고하고 군사가 많아도 그것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에브라임의 영광은 사라지고, 다메섹의 이름도 역사 속에 묻힐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자기들의 영적 상태를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자들에게 임하는 황폐함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으며 네 능력의 반석을 기억하지 아니함이라"(17:10).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는 번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밭에 좋은 씨를 뿌리고,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물을 주며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가지를 이식하였도다... 그날에 무성하게 자라지만,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수확이 없어지리라"(17:10-11).
하나님을 떠난 번영은 진정한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이사야는 '이방의 가지'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땅에 세상의 문화를 이식했음을 지적합니다. 그 결과는 겉은 화려할 수 있어도 속은 병든 나무와 같습니다. 그 열매는 결국 썩어 없어지고, 심판의 날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의 철학을 이식하고, 십자가 대신 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추구한다면, 교회는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있으나 능력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에 뿌리내릴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민족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백성
17장의 후반부는 놀라운 반전을 담고 있습니다. 심판으로 가득한 분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향한 보호의 손길을 약속하십니다. "열방이 많은 물 소리 같이 떠들며, 민족들이 포효함이 크나...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은 멀리 도망하며, 산 앞에서 겨 같이, 바람 앞에 굴러가는 티끌 같이 되리라"(17:12-13).
여기서 묘사되는 '열방의 포효'는 당시 국제 정세의 복잡함을 상징합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나라들이 연합과 전쟁을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아무리 열방이 으르렁거려도, 하나님께서 한마디 꾸짖으시면 그들은 티끌처럼 흩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참된 보호입니다. 하나님은 외부의 위협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신 분이시며, 단지 방패가 되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뜻대로 열방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안은 외교나 군사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날이 밤에 임하듯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주었더니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것이 우리를 노력한 자들의 분깃이요, 우리를 약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17:14). 하나님은 갑작스럽게 심판하시되, 그 심판은 결코 불의하지 않고 공의로우며, 그분의 백성을 건지시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외적으로 떠들썩한 세상 속에서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강한 나라, 부요한 사람들, 영향력 있는 집단들 앞에서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고, 반석 되신 구원의 하나님을 붙들 때, 우리는 요동치 않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사야 17장은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을 잊은 자들에게 임하는 황폐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열방의 요동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에게는 보호와 구원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돌보시며, 끝까지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능력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잊지 말고, 오히려 그분의 통치 아래로 피하는 자가 되어, 끝까지 남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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