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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의 죄사하는 권세 / 마가복음 2:1-12

샤마임 201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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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의 죄사하는 권세

마가복음 2:1-12

 

마가복음 2장은 ‘수 일 후에’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본 사건이 있기 전 며칠 전에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1:40-45에서 나타난 대로 나병환자를 고치신 사건이었습니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로 와서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1:41에 기록된 대로 ‘불쌍히 여기사’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당부합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입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나병환자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치유함을 받은 나병환자는 ‘나가서 많은 이 일을 많이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수 일 후가 흐른 것입니다. 마가는 주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에서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는 내용을 접하는데 다시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는 ‘소문’이 들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계신 집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도를 말씀하시는 주님

2절에 보니 주님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에게 ‘도’를 말씀하셨다고 마가를 기록합니다. 바로 그 때 한 중풍병자가 네 사람에게 들려져 주님 앞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님 앞으로 갈 수 없어서 주님이 계시는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집 안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나 그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5절에 보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6-7)라고 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하)는 것이 그의 신학이요 신앙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의 생각은 전혀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적이고 가장 합당한 추론입니다.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은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두 가지 예를 주시면 질문합니다.

하나는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둘째는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질문을 읽고 우리 주님께서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질문의 의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두 가지 질문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입니다. 즉 중풍병자의 죄 사함의 문제와 중풍병자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심으로 제사장들 앞에서 그것을 증명한 것처럼 중풍병을 고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성경주해자요 목사였던 메튜헨리는 이렇게 본문을 주해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중풍 병자"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써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증명하였다(9-11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일을 못하셨다면 병을 고쳐 주시는 일도 못하셨을 것이다.”

 

자 성경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바로 두 가지를 풀어주십니다. 10절에서 인자가 땅에서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바로 그 다음 11절에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는 그가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다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비판했던 시기관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지금 자신 앞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 앞서서 주님의 많은 치유의 기적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직접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귀로 들어서 족히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앞에 수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아냐 저건아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 주님은 놀라운 이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숨겨진 메시야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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