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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유혹하는 사회...

샤마임 201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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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일탈'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 나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일이 쌓였을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
하는 일 없이 피곤한 일상 나른해 난 기지개나 켜 뭐 화끈한 일 신나는 일 없을까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모두 원해 어딘가 도망칠 곳을 모두 원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두 원해 모두원해 나도 원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뭐 화끈한일 뭐 신나는일 없을까



                                                                                    자우림의 '일탈' 공연 모습


 

   이 노래가 말하는 내용은 이렇다. 우리의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모두가 반사회적인 일들이다. 이 공연을 보러온 청중은 대부분은 학생들이며,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처럼 살면 어떻게 될까? 이런식이다. 시험전날 여행을 떠나고, 수능 전날 피시방에서 야근?을 하고 학교를 가지 않고 다른 나이트에 가는 것이다. 인생을 아무렇게나고 되는 대로 살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그런데도 순진한 십대들을 유혹하여 일탈하도록 유혹하는 일반 미디어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일탈을 부르는 자우림은 과연 일탈자들인가? 그들의 본업인 노래에 충실하지 않고 연습도하지 않고 신곡도 발표하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 속아서는 안된다. 그들의 부르는 일탈은 일상에서의 도피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일상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가끔.. 정말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 쉬고 싶다는 것이다. 별식과 같은 것이지... 주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 순진한 학생들은 그것이 전부인양 쉽게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십여년이 흐른 후 그들은 울며 후회한다. 속았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일탈을 유혹하는 것은 대중매체뿐 만이 아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작은 '일탈' 수용하지 못하고, 자숙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퇴학을 시키고 강제전학을 시킨다. 작은 일탈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적경쟁'이 가져온 결과이다. 교사들에게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야하는 부담이 있다. 소위 일류 대학을 많이 보낼 수록 자신에게 많은 점수가 주어진다. '좋은대학진학=좋은점수'라는 공식이 지배하는 학교는 학생들을 점수제조기나 성적기계로 보게 만든다. 이곳에 치유나 회복, 도전과 열정이란 단어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실수 없는 끝없는 생존경쟁만이 그들을 돌아올 수 없는 치유 불가능의 일탈의 세례로 던져버린다. 교회에서 권사의 직분은 어느 중학교 교사도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를 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작 한다는 말이 '그러다 좋은 대학 못가면 어쩌려고 해요?'하며 다그치는 실정이다. 이러한 크리스찬들이 교사로 있는 한 세상의 소금이나 빛이라는 의미는 찾을 수 없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성적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참된 인간, 참된 크리스찬으로서의 양육할 기독교적 교육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 

다음기사도 참고해 보자.
 성적경쟁’ 내몰린 공립고, 가벼운 일탈에도 ‘퇴학’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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