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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의 책인시공

샤마임 201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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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정수복/ 문학동네


사람마다 책 읽는 공간이 따로 있을까? 개인의 특성과 삶의 패턴을 따라 다른 공간이나 장소를 달리할까? 가끔씩 드는 생각이다. 정수복의 책인시공은 독서에 대한 시간과 공간의 고찰이다. 이를 넘어 독서할 권리장전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양도할 수 없고 박탈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기본권'(9쪽)으로 정의한다. 독서는 지독한 종교적 행위다. 신성한 작업이며, 순교적 열정이다. 책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낭만, 장소와 시간의 역학구조가 독서광들에게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책 속에 묻히는 것이 꿈이다. 아마 내가 죽을 때 무덤은 책으로 장식하라 할 것이다. 이건 나의 특권이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절대 해서 안 되는 나만의 특권이다. 독서광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저자도 이러한 꿈을 가지고 있기 바란다. 책에 미친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 비슷한 생각을 한다. 만약 그들이 같은 동네에 산다면 무리지어 다니는 기러기 때를 연상시킬 것이다. 아니면 백로의 군무(群舞)든지. 하여튼 좋다. 그들은 닮아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자.

 

필자가 이 책을 접할 때의 느낌이 딱 그랬다. 어쩜 나와 이리도 닮았을까. 그가 나의 상상 속에 들어와 집을 짓는 것 같다. 생각의 집, 사유의 집, 사고(思考)의 집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닮았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턱은 없다. 알고 싶은 마음은 조금 있지만 생각의 여분으로 남겨 두고 싶다. 왠지 모를 신비감 같은 것 말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법이니.


"서재는 정신적 삶의 공간이다.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책을 쓰는 공간이기도 하다."(105쪽) 독서행위는 공간과 시간을 차지한다. 삼차원에 사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다. 그러나 독서는 현재에서 미래를 살고, 과거 속에서 현재를 예언할 수 있다. 그곳이 집이든, 서재이든, 부엌이든, 카페이든, 사무실이든 숲 속이든 상관 없다. 그들은 그곳에서 작가들이 까다롭게 고른 단어와 문장을 파고들어 오즈의 나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책은 종이에 문자가 잉크로 인쇄 된다. 문자는 장, 쪽, 문단, 문장, 단어, 그리고 글자로 세분화 된다. 저자의 책에 대한 묵상이 고매하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요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31쪽)

 

예술이라고 부르는 저자의 심정이 이해 간다. 누구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사소함이 아닌 예술로 승화 시키고 싶다. 나도 그렇지 않는 가. 이해된다.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물 수 없다.(82쪽) 예리하게 간파한다. 지식을 위한 독서는 2-30십대가 좋다. 40대가 넘어서면 지식 축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성철을 통한 삶의 깊이 있는 사색과 담론이 필요하다. 체험을 통해 심화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청년이 강임함이라면 중년은 지혜로움이어야 한다.

 

가을이 깊다. 웅숭한 삶의 고독이 깊이를 요구 한다. 책인시공으로 길을 밝히자.

 

문장 담기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무를 수 없다.(82쪽)


더러운 세상 책 밖에 믿을 게 없어!(83쪽)


작가들은 집에서 철저히 혼자가 된다. 어휘를 고르듯 까다로운 눈으로 고른 자기만의 공간에서, 영감을 얻고 문자와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승리자가 되어 글을 완성한다.(113쪽)


책갈피에는 습기와 더불어 오랜 세월의 이야기가 잠자고 있었다.(119쪽)

 

골방, 고곳은 혼자만의 내밀한 독서가 가능한 환상의 공간이다.(155쪽)


그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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