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역사]를 읽고 몇 가지를 정리함
[책의 역사]를 읽고 몇 가지를 정리함
브뤼노 블라셀 / Historie du livre
시공사에서 문고판 형태로 나오는 '시공사 디스커버리' 시리즈는 작으면서 탄탄하다. 어떤 주제로 책을 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집어야 한다. 일단 간략하게 역사를 요약하고 정리한다. 또한 그림과 함께 적당한 해설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책의 역사를 다 읽었다고 하지 말기를. 이 책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사의 책의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수기에서 인쇄로 넘어가는 시가기 훨씬 빠르기는 하지만 발전하지 못했고, 불과 구한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수기로 책을 기록했다. 이 책은 서양사의 관점으로 책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간략한, 정말 간략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 Book)은 라틴어 liber에서 왔고, 다시 그리스어 biblos에서 왔으며, 파피루스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학자들은 여기에 동의하고 합의했다. 하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다. 고대의 문헌 속에서 그 근거들을 찾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지금은 글은 어디서 왔을까? 문자의 역사는 말한다. 초기는 그림과 기호였다. 그러다 그것이 점점 발전하고 체계화되면서 글자가 된다. 하나는 그림 문자로, 하나는 쐐기문자와 같은 행태를 취한다. 알파벳의 기원이 수메르였고, 쐐기 문자였다. 그러나 쐐기 문자도 초기에는 그림이었다. 한자의 경우는 그림문자가 한자에 아직도 남아있다. 간자로 탄생하지 않았다면 한자는 영원한 난제로 남았을 것이다. 간자는 한자를 알파벳의 형태로 바꾼 혁명이라 할 만한다.
고대는 엄밀하게 책이라 부를 수 없는 형태의 기록들이다. 토판이나 그림, 가죽으로 만든 것들은 두루마리다. 저자는 '코텍스'를 책으로 부르는 최초의 발명품으로 소개한다.(16쪽) 그것은 맞는 말이다. 코덱스는 둘둘 말아 놓은 두루마기가 아니라 그것을 잘라 현재의 책처럼 종이를 겹겹이 쌓아 놓은 형태이다.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의 변화는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일단 보존이 용이하고 휴대성이 좋아진다. 또한 단을 나누기 쉽고, 두꺼워도 괜찮다. 수십 쪽에서 수천 쪽이라도 가능하다. 이러한 혁명은 앞으로 전개될 책의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 아직 사직으로'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코덱스로의 변화는 책을 사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기원이 되고, 낭독에서 묵독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부분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읽어 보자.
중세로 접어들면서 책은 또 다른 변화를 한다. 고대에서 책은 저가였다. 토판이나 파피루스 등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문서나 중요한 책은 가죽에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대가 발전하면서 파피루스와 같은 저가의 기록들은 사라지고 중세는 온통 양가죽과 같은 고가의 기록물에 의존한다. 한 권이 지금의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책 하나에 양 15마리가 든다고 치자. 양 한 마리에 30만 원 한다면 가죽 값만 오백만 원이 넘는다. 가공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양피지 가공 술은 다른 책을 참고하라. 아래 링크한 동영상도 괜찮다.
(BBC https://www.youtube.com/watch?v=2-SpLPFaRd0)
중세 수도원은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수도원에서 책들을 필사하고 만드는 작업을 한다. 책 필사는 수도원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시대에 현대와 같은 대소문자 구분이나 띄어쓰기도 없던 책을 쓴다는 것은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책이 비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귀족들은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소장하느냐에 따라 부와 권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읽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우리나라도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서 소장하는 기쁨을 누렸다. 특히 브리태니커 사전을 보라. 그때 당시만 해도 이백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였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서 소장했던가?
책이 고가라는 말은 불가피하게 종교적이다는 말이 된다. 한 권에 수십만 원하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부터 살까? 가장 가치 있고,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터넷 소설을 백만 원 주고 구입할 이들이 있을까? 중세에 종교적인 책들이 필사되고 전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경이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은 글뿐 아니라 그림, 장식,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진다.
구텐베르크의 등장은 제2의 혁명이다. 코덱스를 통해 책이 간소화되었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사본의 출현이 가능해진다. 인쇄하지 않는 모든 책은 사람이 직접 수기로 기록했기 때문에 사본이면서 원본이다. 또한 책마다 글자도 모양도 오타도 다르다. 그러나 인쇄술은 이 모든 것을 일거에 바로잡는다. 지금의 책값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비쌌지만 기존의 코덱스에 비하면 인쇄된 책은 한없이 낮아진다. 또한 굳이 코덱스 형태의 책이 아니더라도 팸플릿 형태의 저가 인쇄물이 공급될 수 있었다. 루터의 반박문도 팸플릿 형태가 아니었던가?
사실 책의 역사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인해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전자책이나 인터넷 글을 뺀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책은 크게 코덱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인쇄술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인쇄술이 가져온 몇 가지의 변화를 보자.
먼저, 책값이 하락한다.
즉 누구나 책을 살 수 있다. 정보가 귀족이나 왕족을 넘어 평민에게도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책은 곧 지식이며 정보다.
귀족들이 누린 정보를 평민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혁명이 일어난다. 그렇다 혁명이 준비된다. 종교개혁, 또는 종교혁명은 바로 인쇄된 책 때문이다.
셋째, 공적에서 사적으로 변화된다.
이제 책값이 싸다. 그러므로 정보도 고급 정보나 꼭 필요한 것만을 책으로 내지 않는다.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출판한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음란한 소설이나 재미난 여행기 같은 내용들이 널리 읽혔다. 독서는 은밀하고 사적이며 고독한 어떤 것들이 된다. 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도 책에 기록하여 은밀하게 유통한다. 그래서 독서는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고, 공적 낭독에서 사적 묵독 형태로 변화된다.
넷째, 출판업자가 탄생한다.
수도사들이 주도했던 출간이 이제 일반 인쇄업자가 만들어져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책은 곧 돈이다. 인쇄술은 한 책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다섯째, 작가의 탄생
책을 쓰기 위한 작가들이 필요해졌다. 루터를 작가의 측면에서 본다면 성공하지 않았는가? 종교개혁 당시 성경을 해석하고 교리를 만들어낸 사람들도 작가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여섯째, 불온한 책의 시대가 열리다.
혁명은 불온한 것이다. 음란한 소설을 누가 장려할까? 단속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검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책들은 수거되고 불태워지고 출판은 통제된다. 4장에서 그것을 다룬다. 베르너 폴트의 <금서의 역사>(시공사)나 주명철의 <서양 금서의 문화사>(길)를 읽어보자. 금서에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금서의 역사는 곧 사상의 역사다. 성경도 금서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기독교가 주류가 되면 이단들이 쓴 책들도 금서가 된다. 이단이란 말도 금서의 의미에 포함된다.
불온한 독서는 금서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불온하지 않는 독서, 즉 책이 있는가? 성서도 불온하고, 이단의 책들도 불온하다. 특히 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이들이라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불태우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할까? 그것은 곧 통제요 억압이 아닌가? 만약 진정 진리를 확신한다면 이단들이 서적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약 바른 정치를 한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왜 두려운가?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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