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3)
[팔복]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3)
[개역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표준새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NA28]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복이 있도다(Μακάριοι)
마태가 제시하는 복은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언문과 같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마태는 세상의 가치관과 천국의 가치관이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전개될 복은 철저히 영적이며, 기독론적이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복은 『팔복 서론』을 참고 바람]
마음(τῷ πνεύματι)
심령 또는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τῷ πνεύματι,'인데 대부분 성령, 영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왜 마음으로 번역했는지 의아한 단어이다. 차라리 '영혼'으로 번역되면 더 좋을 단어이다. 그런면에서 마음이 아닌 '심령'으로 번역한 한글성경이 원어에 가깝다 하겠다. 그러나 영혼이란 단어는 우리나라 정서상 상당히 모호한 단어이다. 아마도 이러한 모호함을 제거하기 위해 의역하여 '마음'으로 번역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타깝게도 바클레이는 '마음(πνεῦμ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곧장 '가난함'에 집중한다. 도날드 헤그너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주해한다.
첫번째 '복'의 주어인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문구는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마태(또는 그 이전의 전승)는 '심령이'라는 문구를 첨가함으로써 누가복음(또는 원래의) 약식을 정신적인 의미로 전환시킨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역시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지만, 단지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조차도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스라엘-트히 포로기 이후의-에서는 가난과 경건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믿음밖에 없었다."[도날드 헤그나 <WBC 마태복음 213>]
왜냐하면(ὅτι)
선언에 대한 추가 설명이다. 팔복 전체에서 반복된다. 이 구절은 '왜냐하면'의 의미로 받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로 해석 가능하다. 즉 '심령이 가는한 자는 복이 있는데, 그 이유를 그 가난함 때문에 천국이 너희의 것이 되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문법적으로 '천국이 이미 너희의 소유다'는 뜻이다. 현재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ἐστιν(동사, 현재, 직설법, 능동태, 3인칭, 단수)
ἐστιν은 현재 그들 안에 천국이 '있다'의 뜻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이미 그들 안에 천국이 있다. 천국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들어가거나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소망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화된 미래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산 소망' 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천국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은 '하늘의 나라'인데, 왕이 다스리는 왕국(Kingdom)이다. 마태복음 안에서 천국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복이 임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제자들 안에 있기 때문에 심령히 '가난'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부유한 자들이다. 산상수훈은 역설로 시작하여 역설로 마무리 된다.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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