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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교회의 신비를 되찾아라!

샤마임 201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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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교회의 신비를 되찾아라!

김기현목사의 <예배,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읽고


 

위기가 찾아왔다. 90년대가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불길한 미래 안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이곳저곳에서 '교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대안이 없다'는 등의 많은 말이 횡횡했다. 곧이어 마이성장이라는 초유의 일이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이즈음에 한국교회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의 ‘잘나가는 교회’들을 탐방하는 ‘미래교회 탐방’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가지고 들어온 것이 바로 ‘구도자 예배’ 또는 ‘열린 예배’이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열광했고, 한국교회는 적절한 대안을 찾아낸 듯싶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양심적인 한국 기독교 숫자는 더욱 줄어들었고, 목사의 인기도도 현저히 떨어져 어떤 해는 이발사보다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대안을 잘못은 찾았고, 오히려 차가운 냉대와 비판만이 한국교회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이마트를 시작으로 90년대 들어선 대형마트를 본따 한국교회도 대형화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최첨단의 기기와 연출 전문가들에 의해 예배는 ‘쇼’가 되었다. 예배는 상품처럼 팔려나가 잘 만들어진 쇼는 많은 눈요깃거리를 제공하여 많은 소비자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였다.

 

필자는 80년대 말 십대 후반에 신앙을 갖게 되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정체기와 마이너스성장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몸으로 느껴야 했다. 벌써 25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한국교회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계시는 들리지 않고, 환상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비전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지만, 오히려 미래는 칠흑 같은 어둠이 짚게 깔려 있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위기가 찾아온 것일까? 필자는 그것이 한국 교회가 예배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배 회복을 위한 가장 단초적인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 이러한 때, 장로교가 아닌 침례교의 김기현 목사가 <예배, 인생최고의 가치>라를 책을 통해 예배에 대하여 간략하고 명쾌한 기준과 이해를 가져다 주었다.

 

왜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일까? 많은 교회사가들은 한국교회가 한국경제의 역사와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으며, 닮아 있다고 말한다. 교회의 부흥은 근대적 정신이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 일제 강점기와 새마을 운동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순수하고 순교적 열정은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기독교인 대통령 시대가 개막되면서 변질되어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순수하지 않다.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교회의 봉사와 섬김을 바라보고, 오도된 마음으로 교회의 집회를 매도한다. 더 이상 교회는 신비로운 곳도 아니고, 신성한 곳도 아니다. 이익과 욕망을 위한 수단화된 집단이 된 것이다. 이것이 마이너스 성장의 진짜 이유다. 교회의 매력인 신비가 사라진 것이다.

 

교회의 신비를 어떻게 회복할까? 예배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모든 가치를 드리는 것이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그분께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23) ‘주일에 마치 출근부 도장 찍듯이 교회 예배당을 왔다 가기만 하는 성도는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다고 말할 수 없’다.(27) 예배는 삶의 중심이어야 하고, 목적이어야 한다. 잘 드려진 예배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거짓된 우상숭배이다. 토저는 예배가 쇼로 전락했다고 탄식했다. 예배가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된 것이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온갖 프로그램과 연예인을 동원하며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보기 민망’함을(133) 넘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다시 거듭 말하지만 예배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세상에 예배를 맞춰 인기를 얻으려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세상을 예배에 맞추게 해야 한다. 교인들은 대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는 이야기를 교회가 세상에 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차세대는 교회에 극장식 예배나 대형마트와 같은 편리함, 쇼핑광고와 같은 화려함을 바라는 것’이(165) 아니다. 오히려 ‘세상 한 복판에서 거룩과 신성을 호흡하고 싶어’한다.(165) 예배를 세상에 맞추는 것은 세상의 요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신비롭지 않는 교회에 매력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론은 ‘세상의 틀에 순응하지 말고 오히려 변화 시’(167)키는 것이다. ‘세상이 설정한 패러다임에 자신을 끼워 넣지 말고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라는 것이다.’ 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화려한 쇼가 아니다. 자기죽임의 고백과 배타적 헌신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즉 세상의 기준을 초월한 교회의 신비를 되찾아야 한다.



예배, 인생최고의 가치 - 10점
김기현 지음/죠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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