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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5언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샤마임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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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5언 내가 목마르다(19:28)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마태복음에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인간으로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목마름은 당연한 것입니다.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몸에서 피와 수분이 빠져나갔습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하셔야 합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워하시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었고, 율법 아래에서 나셨습니다. 자기를 비하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주님의 피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자들과 같은 이단들은 예수님은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가현설이라는 주장을 통해 육신이 아닌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이 악한 육신을 입을 수 없다는 것들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이들의 주장은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먼저 참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대표하는 속죄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고통은 가짜가 됩니다.

 

정말 주님은 가짜 몸을 가지셨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실제로 목말랐습니다.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주님의 고통을 거짓으로 만들려는 악한 자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요한은 주님의 목마름을 강조하여 우리를 위하여 친히 고통당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53:5) 주님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며, 주님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목마름을 묵상하면서 잊지 말아야한 진정한 목마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육신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그동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구속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육신의 목마름을 넘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죄인들이 주님 당신을 통해 구원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기대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목마름입니다. 첫 사람들이 범죄 했을 때, 주님은 가죽옷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셨습니다. 또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목마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이 구원 받기를 갈망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헤아릴 수 없는 목마름이셨습니다.

 

 

가상칠언

가상칠언

정현욱

가상칠언(架上七言) 묵상성경을 묵상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고난 주간을 보낼 때는 여느 때보다 더 깊이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의 다양한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를 묵상할 수 있지만 가상칠언 말씀도 많은 유익을 줍니다. 가상칠언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셨던 일곱 가지 말씀입니다. 일관성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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