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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로 뒤덮인 땅, 심판과 회복 사이의 메시지(이사야 34:13)

샤마임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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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로 뒤덮인 땅, 심판과 회복 사이의 메시지(이사야 34: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때로는 그 말씀이 따뜻한 위로가 되지만 어떤 때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우리의 내면을 찌르기도 합니다. 이사야 34장 13절은 에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를 묘사하면서, 가시나무와 찔레나무가 궁궐을 뒤덮고, 성읍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지 한 민족에 대한 심판을 넘어,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을 거절한 세상에 대한 구속사적 경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가시가 갖는 상징성을 구속사의 큰 틀 안에서 살펴보고, 심판과 회복의 진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가시로 변한 땅, 하나님 없는 삶의 풍경(이사야 34장)

이사야 34장은 하나님께서 에돔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 성경 전반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멸시하는 교만과 불순종의 상징처럼 그려집니다. 본문 13절에서는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찔레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시나무'와 '찔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곳에 필연적으로 자라는 영적 황폐함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가시나무(חֹחַ, 호아흐)'와 '찔레나무(סִרְפַּד, 시르팟)'는 폐허 위에 자생적으로 자라는 들풀로서, 인간의 손이 닿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철수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성한 생명이 아니라, 찌르고 해치는 식물들입니다. 이는 에덴에서 추방된 인류가 마주한 땅의 모습과도 연결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가시를 낳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심판은 단지 에돔이라는 한 나라의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삶이 반드시 맞이하게 되는 운명입니다. 가시는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한 인생이 마주하게 되는 영적 경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잊고, 말씀을 무시하며,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언제나 가시입니다.

2. 가시의 영성: 심판을 통해 드러나는 구속의 필요(이사야 34장 전체)

이사야 34장의 심판은 매우 강력하며, 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에돔의 도시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땅 전체를 죽음과 폐허로 덮으십니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자라나는 것이 바로 가시입니다. 가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단순히 물리적인 멸망이 아니라, 영적인 질서의 붕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가시에는 단순한 파괴의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의 장면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외칩니다. 주여, 이 가시를 제거해 주옵소서.

이 가시 위에서 하나님은 회복을 준비하십니다. 이사야 35장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거기에는 사막이 기뻐하고, 광야가 꽃 피우며, 연약한 손이 힘을 얻고, 맹인이 눈을 뜨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단절된 심판과 회복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구속의 흐름입니다. 하나님은 가시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그 가시 위에 다시 생명의 말씀을 심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구속의 전환점에서 가시관을 쓰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27장에서 군병들이 예수께 가시관을 씌우며 조롱했지만, 그 장면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죄와 교만이 정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가시로 찔리지 않고, 가시를 뚫고 핀 생명의 꽃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시는 구속사적으로 죄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구원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시를 통해 교만을 깨뜨리시고, 우리의 무능을 드러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회복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종종 오타가 보이시거든 너그럽게 넘겨주세여ㅎㅎ

3. 가시 위의 삶, 회개의 자리와 은혜의 출발점

오늘 우리 삶에도 가시는 존재합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실패일 수 있고, 용서하지 못하는 관계일 수 있으며, 쉽게 끊어지지 않는 죄의 습관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찌르는 가시입니다. 그러나 이 가시를 억지로 뽑아내기보다, 그 가시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가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 가시는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가시가 심장을 찌를 때 우리는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우리가 완전히 무너질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것이 구속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황폐한 땅에서 새싹을 틔우시고, 가시덤불 속에 복음을 심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고통 없는 예배가 아니라, 가시 위에서 울부짖는 자들의 고백이 모이는 자리. 가식이 아니라, 진실한 회개와 상처가 드러나는 곳. 우리가 예배 중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곁에 가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시가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가시로 인해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이면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쉽지 않고, 성도의 삶에는 고통과 시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시를 은혜의 현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이후에 회복을 준비하셨고, 찔림 이후에 치유를 계획하셨으며, 가시관 이후에 부활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결론

가시는 죄와 심판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회복을 갈망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사야 34장은 폐허 위에 자라는 가시들을 통해, 하나님 없는 세상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가시관을 쓰게 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가시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가시를 통해 우리를 일깨우시고, 다시 주님의 길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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